[인터뷰] 최홍철 경기도 행정2부지사

최홍철 경기도 행정2부지사 ⓒ G_life
인구집중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엄격히 금지됐던 경기 북부지역에 처음으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시설이 들어선다. 이화여대는 그동안 주한미군 기지였던 파주시 캠프 에드워드와 주변지역에 올 12월부터 건물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의선 전철 개통으로 서울 신촌에서 파주까지 40분 안팎으로 가까워진데다 주변지역 시설물 철거와 환경 정화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돼 국방부 소유의 토지매매 절차가 끝나는 대로 착공이 가능해졌다는 것.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과 김문수 지사가 파주캠퍼스 부지를 둘러보기 위해 7월1일 개통한 경의선 첫 열차를 타고 현장에 갔다는 뉴스도 눈길을 끌었다. 착공 10년 만에 완공된 경의선 복선 전철 개통에 이어 이화여대 파주캠퍼스 건립부지 설명회가 열려 경기 북부지역은 개발 훈풍이 불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경기 북부지역의 행정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최홍철 경기도 행정2부지사는 “미군이 철수한 지역에 대학을 유치한 것은 경기 북부 발전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며 “파주가 군사도시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는 것은 물론이고, 명문 대학이 들어오면서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대학 신증설을 막는 근거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이 법 제8조에는 ‘인구집중을 초래하지 않도록 학교의 신설, 증설이나 그 허가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런데 2006년 3월 제정된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은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반환공여구역 주변지역에 이전하거나 증설하는 행위를 허가 승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미군이 떠나고 난 자리에 서울 소재 대학의 캠퍼스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화여대 파주캠퍼스는 주한미군 반환 공여지에 들어서는 첫 번째 대학이 된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에 들어서는 4년제 대학
이화여대는 파주시 월롱면 일대 85만㎡(약 26만평)에 교육 연구 의료시설 국제연구센터 등을 단계적으로 신축할 계획이다. 특정 단과대학이 통째로 옮겨가는 다른 대학들의 제2캠퍼스와는 달리, 이화여대는 모든 재학생이 일정기간 집중적으로 해야 할 외국어 교육이나 인성 리더십 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 연구 복합단지로 조성할 방침이다. 최 부지사는 이와 관련해 서울의 대학들이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캠퍼스만으로 안 되고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기도로 올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10년 만에 완공된 경의선 전철
특히 착공 10년 만에 완공된 경의선 전철은 이러한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도권의 몇몇 대학이 경기 북부지역의 옛 미군기지를 활용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철 개통이 단순히 교통난 해소를 넘어 지역발전의 기폭제가 된다는 뜻이다.

경의선 복선 전철 개통은 경기 북부 지역 발전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 G_life
경기도가 의정부에 북부출장소를 둔 것은 1967년이다. 이어 2000년 2월 제2청을 발족하고 제2행정부지사를 신설했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인구가 700만명이 넘으면 행정부지사(부시장)를 2명까지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최홍철 부지사는 지난해 12월 이 자리를 맡았다. 1978년 행정고시 합격 후 경기도 근무만 25년째인 그는 남부지역에 비해 북부지역은 너무 낙후돼 있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 실급하다고 했다.
“이곳 북부지역은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습니다. 산업인프라가 취약하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생력을 키운 섬유산업과 가구산업 등을 중점적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경기 북부지역은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2000년대 이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섬유업체가 증가한 곳이다. 최단기 납품,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앞세워 세계 최고의 의류집산지로 성장한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공프복, 레저웨어 등은 이미 세계시장 매출액의 40%를 점유할 정도다. 경기도가 북부지역을 발전시킬 대안으로 섬유산업을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섬유산업의 중심지는 대구 경북이었따. ‘밀라노 프로젝트’등의 이름으로 정부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반면에 경기 북부지역의 섬유산업은 임진강 수계를 보호한다는 명분에 막혀 정부의 도움은 커녕 생산조차 원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구 경북을 누르구 경기 북부가 뜨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최 부지사는 이에 대해 “대구 경북의 업체는 대규모 공장으로 기동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노조도 있고, 공휴일 다 챙기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서서히 시장을 놓쳤다는 것이다.
섬유산업, 그중에서도 염색은 3D업종에 속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다. 불법이민자가 태반이다. 수시로 법무부, 노동부 등에서 단속이 나오고 이들이 숨으면 공장이 가동을 멈춘다. 인권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최 부지사는 단속업무를 맡은 공무원과 공장 사장, 불법체류 근로자 간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보는 자리였는데, 그 뒤 단속을 하더라도 강도(强度)가 달라졌다고 한다.
의정부에서 포천시로 들어가는 초입에 가구 점포가 많이 있다. 한때는 서울에도 소문이 나 손님이 꽤 있었으나, 중국산 저가 가구가 들어오면서 타격이 심하다. 대신 경기도와 포천시는 한과를 특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한과를 일본의 화과(和菓)나 중국의 월병에 버금가는 인기상품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집에서만 먹는게 아니라 커피숍이나 고속도로휴게소, 어린이집 또는 군부대의 간식으로 한과를 애용하게 만들 아이디어를 짜고 있다.
경기 북부 지역의 발전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의 대부분이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사는 집은 고사하고 축사 하나 고치려 해도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하니 발전은 남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경기 제2청은 이런 군사 유산을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발상의 전환이다. 먼저 비무장지대(DMZ).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의 상징을 평화, 생태, 환경의 보루로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 과거의 부담을 미래의 자산으로 삼는 것이다. 최 부지사는 DMZ야말로 경기도 혹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DMZ 관련 행사로는 먼저 8월29일 파주시 파평면에서 열리는 통일염원 임진강 수영대회가 있다. 장깨도하훈련장을 출발해 전진교 상류 방향으로 500m를 올라간 뒤 돌아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분단 60년 만에 임진강을 처음 건너는 행사다.
9월13일에는 평화통일마라톤대회가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다. 임진각을 출발해 통일대교-남북출입국사무소를 거쳐 임진각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민통선 구간을 달리는 ‘청정마라톤’이므로 선도차도 친환경 저탄소 차량과 자전거 등을 사용한다. 평화통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터민, 다문화가족, 외국인근로자, 장애우, 군장병등 다양한 사람들을 참여시킬 계획이다.
군사 유산을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10월21일부터 26일까지는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와 출판단지에서 ‘DMZ다큐영화제’가 개최도니다. DMZ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방안인데, 생태환경과 평화공존이 주제다. 30개국에서 100여 편의 작품을 초정해놓고 있다. DMZ 내의 마을인 대성동에서 전야제를 가질 예정이어서 비상한 관심이 모을 것으로 보인다.
최 부지사는 영화, 뮤지컬, 게임 등 DMZ를 소재로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군(軍)과의 협의를 전제로 내년에는‘6∙25 60주년 기념 DMZ 평화음악회’를 열고, 여기에 참전용사를 초청하면 멋진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최근 관광업계에 평화생태(PLZ ; Peace & Life Zone)관광이 히트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PLZ관광은 훼손되지않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의 생태 또는 역사, 문화를 관광자원화해 평화와 생태의 소중함을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테마관광이다. 산천어 맨손으로 잡기, 카누트레킹, 한옥체험, 갯벌체험 등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체험여행이 이에 해당한다.
DMZ의 활용방안에서도 이 PLZ가 본격 추진되고 있다. 비무장지대 및 접경지역의 자연생태계를 평화 생태 관광지로 조성하고 주변지역에 역사 문화자원을 활용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관광 개발사업으로 문화부와 경기도, 강원도가 적극적이다. 현재 한국관광개발연구원이 용역작업 중인데,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수익창출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 프로젝트는 군의 협조가 절대적인데 최근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군이 다소 보수적이어서 실행은 늦어질 수 있다.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 기지 중 하나인 캠프 케이시 모습. ⓒ G_life
경기 북부지역에 가장 흔한 것이 군부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제로 조금 한적한 도로변을 달리다보면 민가보다 부대가 더 많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경기도가 도내의 많은 소하천 정비에 군부대의 협조를 얻을 계획으로 현재 군 사령부와 협의 중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1부대 1하천 정비’로 하천 퇴적물 제거와 하상정비, 외래식물 제거 등을 내용으로 한 MOU를 곧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지사는 ‘효순이, 미선이’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미군부대도 참여시킬 생각이다.
주한미군의 87%는 경기도에 주둔해 있다. 이 중 80%는 경기 북부에 있다. 원래는 2012년까지 평택으로 모두 이전하기로 했으나 현재 자꾸 지연되고 있다. 동두천의 경우 시면적의 42%를 미군이 차지하고 있는데, 미군부대 이전을 전제로 한 도로공사 등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반환 미군기지와 주변지역 개발에 경기도와 서울시를 차별대우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김문수 지사는 지난 1월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용산 미군기지는 특별법까지 제정해 국비 1조5000억원을 지원하고, 267만3000㎡의 땅을 무상 제공해 국립공원으로 만드는 반면, 경기도내에서 반환되는 60㎢의 미군기지 땅은 무상양여는 커녕 개발보조금까지 축소하려 한다”고 차별지원 시정을 촉구했다.
최 부지사는 이와 관련해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명시된 미군기지 반환기한(2012년 12월31일)을 준수하고, 동양 최대의 미군전용 훈련장인 영평훈련장이 소재한 포천 등 경기 북부지역에 미군기지 이전지역인 평택시 수준의 피해보상대책마련을 주문했다. 최 부지사는 국가안보 명분으로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만 강요할 수 없다면서, 쓰레기 소각장, 발전소, 팔당댐 등 국가필요시설 주변 주민들이 모두 보상을 받고 있는데, 유독 사격장 인근 주민만 보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발전도 이제는 아이디어 싸움이다. 누가 색다른 발상으로 여론을 선점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양주시가 장흥관광지 일대 모텔 2곳을 리모델링해 신예작가들에게 아틀리에로 대여한 것은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 후 이 주변에 난립했던 12곳의 숙박시설 중 5곳이 미술관련 시설로 탈바꿈하면서 장흥관광지는 새로운 미술명소로 떠올랐다. 양주시는 올해 안에 10억여 원을 확보, 음식점 1곳을 미술관으로 꾸미는 등 장흥관광지 주변에 남아있는 나머지 7곳 숙박시설도 연차적으로 매입해 서울 인사동에 버금가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꿀 계획이다.
“행정에도 감동이 필요합니다”

경기도 제2청은 의정부 가능역에 식탁을 차려놓고 노인들에게 품위있게 식사를 대접한다. 최 부지사(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가 식판을 나르고 있다. ⓒ G_life
감동은 문화예술에만 있지 않다. 최 부지사는 행정에도 감동이 필요하다며, 일례로 경기제2청이 시행하는‘119 한솥밥 프로그램’을 들었다. 경기 북부지역에는 의외로 밥 굶는 노인이 많은데, 지금까지는 길거리에서 배식해 보기에도 딱했던 것이 사실이다.
경기 제2청은 이들을 품위있게 대접하기로 했다. 의정부 가능역에 식탁을 차려 놓고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경기도가 예산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금품제공은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제2청은 경기북부상공회의소에 이런 사정을 말했고, 상공회의소는 선뜻 경비지원을 약속했다. 부엌일은 경기도부녀의용소방대가 기꺼이 맡았다.
식사 대접은 다른 데서도 많이 한다. 제2청은 식사하러 온 노인들에게 건강검진, 이발봉사, 심리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때로는 민요공연도 벌인다. 소문이 나면서 돈이 있어도 혼자 밥 먹기 싫은 노인들까지 찾아와 점심시간에는 400∼500명이 북적인다. 어려운 분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도민들에게는 더 큰 만족을 드리는 감동행정이 최 부지사의 희망이다. /김일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