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사망자 발생 후 100일간의 기록
지난 8월 15일 국내에서 신종플루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이후 신종플루 감염 공포가 전국을 휩쓸었다. 일명 ‘신종플루의 난(亂)’이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6천여명 이상이 신종플루로 사망했다. 국내 사망자수도 88명이나 된다. 신종플루가 확산되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동이 날 지경이다. 예방접종 사전예약도 ‘필수적’이 아닌 ‘필사적’이 됐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10월 추석 이후 증가세를 보이던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 투약건수가 이달 첫 주를 정점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신종플루 발생 이후 현재까지 경기도의 대처와, 신종플루에 맞서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차례 나눠 싣는다.<편집자주>
ⓒ G뉴스플러스 이광조
항바이러스제 투약건수 감소 뚜렷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보건장관회의에서 “신종인플루엔자가 11월 초·중순 거의 정점을 지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플루가 아직 확실하게 수그러든 단계가 아닌데다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으며 정부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유럽에서 신종플루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나온 터라 일각에서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전 장관에 앞서 국내 신종플루 확산이 진정되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김 지사는 17일 도내 신종플루 거점병원인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을 찾았다. 신종플루 임시진료소를 찾아 환자와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다. 외래환자가 거의 없었던 것.
이날 하루 임시진료소를 찾은 환자는 150여명이었다. 전 주에 비해 4배가량 줄어들었다. 김 지사는 “격려하러 왔다가 기분 좋게 허탕쳤다”며 “환자가 없다는 건 그만큼 도내 신종플루 환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료진의 어깨를 다독였다.
신종플루 발병 추이를 알 수 있는 척도는 항바이러스제 투약건수다. 경기도의 경우 11월 첫 주를 정점으로 감소추세가 뚜렷하다. 요일별로는 월요일 기준으로 2일 4만2천762건에서 9일 3만633명, 16일 2만4천508명으로 줄었고, 주별 평균 투약건수도 9~15일 2만여건에서 16~22일 1만여건으로 감소했다.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는 증상 발현시 48시간 내 투약해야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 ⓒ G뉴스플러스 황진환
전국 대비 도내 투약건수 비율도 줄어들고 있다. 8월 2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전국 62만4천850명 중 20만3천425명으로 32.6%를 차지하던 도내 투약건수가 23일 현재 전국 232만7천642명 중 61만8천66명으로 26%까지 떨어졌다. 인구밀집지역이 많은 도내 신종플루 발생은 줄고 타 지역에서 발병률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플루 확진을 받거나 의심증상을 보여 등교하지 않은 학생과 교사도 지난 6일 1만822명에서 16일 5천380명, 23일 2천720명으로 감소했고, 휴업중인 학교도 전체 2천100개교 중 12일 144개교에서 16일 22개교, 23일 4개교로 대폭 줄었다.
사회복지시설 내 신종플루 발생도 3일 426명에서 16일 144명, 23일 72명으로 감소했고, 도의료원 6개소 내 신종플루로 인한 입원환자수 또한 11일 57명에서 23일 14명으로 줄었다.
이 같은 감소세는 도의료원 등 거점병원 외 일반의원에서도 확진없이 타미플루 처방이 가능해졌고, 신종플루 환자가 학교를 중심으로 급증함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가 휴교(휴업) 조치를 신속히 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류영철 도 보건정책과장은 23일 “학교 중심의 집단 발병이 많이 감소하고 있다. 인구밀집지역 내 유행은 지난 것으로 보인다”며 “내달 16일까지 신종플루 예방접종이 이뤄지면 접종효과가 2~3주 뒤에 나타나고, 게다가 내달 말부터는 겨울방학이다보니 지금은 학생들보다 영유아, 노인 등의 발병이 걱정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8월 국내 신종플루 첫 사망자 발생
신종플루는 1918년 전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을 떠올리게 한다. 스페인 독감은 호흡기에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는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당시 전세계에 걸쳐 적게는 2천만명, 많게는 1억명이 숨졌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때 14만명이 사망했다.
이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1세기만에 출현했다. ‘신종인플루엔자 A(H1N1형)’, 이른바 신종플루다. 지난 4월 15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신종플루에 감염된 환자를 처음 공식 확인했다. 돼지인플루엔자에서 생긴 새로운 형태의 이 바이러스는 곧장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1월 현재 전 세계에서 6천200명 이상이 신종플루로 사망했다. 국내에서도 88명이 숨졌다. 설상가상 우크라이나에서는 변종플루가 발생했다는 풍문도 나돈다.
하지만 신종플루는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와 같은 계통이긴 하나 같은 바이러스는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치명도가 덜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경계의 끈을 늦춰서도 안 된다. 현대사회는 변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에 이어 근래에는 1997년 조류독감까지 바이러스는 우리 가까이에서 늘 침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침입자’는 신종플루다.
도는 지난 11일부터 12월 16일까지 도내 학생 166만여명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23일 현재 66만6천명이 접종해 접종률 40.1%로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11일 수원 화양초등학교 학생들이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 G뉴스플러스 황진환
국내에서 첫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 5월. 미국에서 첫 바이러스 감염환자가 확인된 지 불과 한 달만의 일이다. 멕시코를 방문했다 귀국한 수녀였다. 이 수녀는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병원격리 7일 만에 완치 퇴원했다.
국내 첫 환자발생 후 정부는 ‘주의’ 단계를 선포하고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등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했다.
공항입국자를 대상으로 발열감시 대상을 확대해 검역을 강화했고, 위험지역 입국자 94만명 및 확진환자 동승객에 대한 전화추적 조사도 5월부터 7월까지 실시했다. 학교 등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7월 21일 ‘경계’ 단계가 발동됐고, 경기도 등 각 시·도 및 시·군·구도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도 대책본부는 일반인과 학생, 임신부 등에 대한 개인행동요령을 마련하고 홍보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고위험군 조기 치료를 위한 대응체계 구축에 주력했다. 항바이러스제, 진단장비, 열감지카메라를 추가 확보하고 치료거점병원 및 약국도 확대 지정했으며, 예방백신 접종계획도 수립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8월 15일 신종플루로 인한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8월초 태국여행을 갔다 온 56세 남성으로 사망원인은 신종플루에 따른 폐렴, 패혈증이었다. 이후 신종플루 공포가 국내 전역을 휩쓸었다. 8월 한 달 동안 3명, 9월 10명, 10월 38명, 11월 48명 등 총 88명이 사망했다. 도내에서도 9월 2명, 10월 9명, 11월 10명 등 15개 시·군에서 21명이 숨졌다.
11월 3일에는 신종플루 의심증상을 보이는 환자와 확진환자, 투약환자, 집단발병 등이 급증함에 따라 전염병 위기경보 수준이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됐다. 이에 도는 7월말부터 가동돼오던 ‘신종인플루엔자 경기도대책본부’를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본부장으로 한 ‘경기도 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운영하고 있다. 도교육청, 경찰청 인력을 포함한 4개반 9명이 24시간 비상대응체계로 근무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수습대책본부도 도 보건정책과 내에 별도 가동 중이다. 31개 시·군도 524명으로 구성된 시·군별 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는 도의료원 6곳을 포함해 아주대학교병원,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등 센터병원 13개소, 치료거점병원 80개소 등 총 99개 거점병원을 지정해 권역별 종합협력네트워크체계도 구축했다.
경기도, 신종플루 확산 차단에 총력
11월 3일 전염병 위기경보 수준이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됨에 따라 도는 ‘경기도 재난안전대책본부’를 24시간 비상대응체계로 운영중이다. 대책본부 상황실장을 맡은 류영철 보건정책과장을 중심으로 23일 오전 9시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 G뉴스플러스 황진환
국내 첫 사망자 발생 후 100일. 일부 국민은 국가방역체계가 전염병에 속수무책이라며 혀를 끌끌 차고 있을지 모른다. “대체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데 정부와 지자체는 뭘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바이러스 발병을 사전에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은 지구상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미국 내 신종플루 사망자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정부 또는 지자체가 행정력을 총동원해 할 수 있는 일은 질병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게 아니라 질병확산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경기도의 신종플루 대처는 돋보인다. 도가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은 학교유행 차단이다. 도는 먼저 5억원을 투입해 고막발열기, 손세정제, 마스크 23만2천개를 배포했다.
무엇보다 지난 11일부터 12월 16일까지 도내 학생 166만여명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23일 현재 66만6천명이 접종해 접종률 40.1%로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도는 97만7천명분의 백신을 확보한 상태며, 예방접종팀도 군의관 40명 등을 추가투입해 267팀을 운영함으로써 당초 1팀당 500명 이상 접종에서 350명으로 접종인원을 줄였다.
노인, 아동, 장애인 등 사회소외계층 시설 입소자들에 대한 치료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23일 현재 2천286개소 3천881여명이 타미플루 처방을 받았다.
도는 또 항바이러스제 투약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도에 배정된 리렌자,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는 80만1천697명분으로 이 가운데 52만3천명분을 사용했다. 남은 27만8천명분은 도내 부족한 시·군에 조금씩 배분할 계획이다. 도는 따로 10만1천명분을 비축해놓은 사태다.
도내 신종플루 치료거점병원으로서 도의료원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도의료원 6곳은 현재 신종플루와 관련해 21만명 이상을 진료했고, 1만8천여명에게 타미플루를 처방했다. 또한 신종플루 중증환자를 위한 병상 116개소를 확보해놓고 있다.
수원병원의 경우 3일 경기도의료원 본부건물 2층을 신종플루 전담진료소로 전환했고, 신종플루 사각지대인 수원역 주변 노숙자 및 행려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1회 출장진료도 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도는 11월 이후 도내 민방위교육장에서 실시할 예정이었던 민방위 보충교육훈련도 중지하고, 운수종사자 직무보수교육도 잠정중단토록 했다.
신종플루로 영업이 부진해 일시적 자금난을 겪고 있는 생계형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는 경기도중소기업육성자금 중 특별경영자금 500억원을 긴급 지원하는 등 도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학교가 휴업해 급식이 중단된 아동들에게는 휴업기간에 직접 가정으로 중식을 제공해 굶은 아동들이 발생치 않도록 조치했다.
류영철 도 보건정책과장. ⓒ G뉴스플러스 황진환
또한 신종플루 여파로 국내 전시행사들이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도는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신종플루 확산이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 12~15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제7회 경기국제박람회는 신종플루와 관련된 단 한건의 감염사례도 발생하지 않은 ‘신종플루 ZERO’ 박람회로 기록됐다.
행사장 출입구에 설치된 ‘전신살균기-손소독기-체온계 통한 발열확인’ 등 3단계 시스템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그 결과 신종플루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34개국에서 361개 기관 및 업체가 참가해 981개의 부스가 운영됐으며, 5만7천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등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현재 도내 신종플루 확산이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도는 기존의 대응 방침대로 예방접종과 항바이러스제 투약관리, 입원병상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위기경보 수준이 ‘심각’에서 ‘경계’단계로 하향조정되면 상황실 운영도 종료된다. 그러나 도는 경계의 고삐를 한시도 늦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도 대책본부 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류영철 보건정책과장은 “그동안 도의료원, 경기도의사회, 거점병원 등과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져 신종플루 확산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었다”고 자평한 뒤 “앞으로 학교예방접종을 비롯해 영유아 예방접종 등을 거쳐 전 국민이 면역체계를 갖게 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신종플루 차단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