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현장]②박준조 道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장
“동물 살리는 수의사지만 구제역 종식위해 죽여야 하는 고통”
“천국 못 갈거다” 악담에도 소임 다하며 5개 시·군서 방역 총력

박준조(50)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장은 전 직원과 함께 지난달 24일부터 24시간 출퇴근 없이 근무 중이다. 이천, 여주, 하남, 광주, 양평 등 도내 5개 시·군의 구제역 현장을 누비는 그는 가족처럼 키운 소·돼지를 살처분한 농민들의 아픔과, 생명을 죽이는 고통을 참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 G뉴스플러스 황진환
“구제역이 종식되면 도지사님께 건의해서 저희 직원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으면 합니다. 아무리 동물이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게 보통 (심정으로) 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우울해하는 애들(직원)도 있고요. (마음) 약한 애들을 살처분 현장에 보낼 때는 내 딸 같으면 보낼 수 있을까 생각도 하고…”
박준조(50)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장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끝내 주체하지 못했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보는 사람의 마음도 착잡해졌다. 소·돼지에게 사신(邪神) 노릇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갔다. 굳이 눈물의 의미를 캐묻지 않았다.
방역복을 입고 살처분 현장을 누비는 그에게 궁금했던 건 농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도, 구제역과의 사투가 언제쯤 끝날지도 아니었다. 다만, 그로부터 원했던 대답은 수의사이자 공무원으로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무게와, 소·돼지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까지 매몰시키는 구제역의 악랄함에 대한 그만의 소고(小考)였다.
박 지소장과의 인터뷰는 3일 이뤄졌다. 그를 만나러 직접 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를 방문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날 기자는 동부지소 앞에서 박 지소장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현재 동부지소는 외부인 출입이 차단된 상태다. 구제역 현장에서 활동하는 직원들이 들락거리는 지소 내부에 외부인이 출입했다가 구제역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온 박 지소장과 차 안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격무 중에 짬을 낸 터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지만,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수의사로서 박 지소장의 자부심과 진솔미를 엿볼 수 있었다.
박 지소장은 올해로 공직생활 23년째다. 전남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부터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로 옮겨 분석팀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2월에 동부지소장에 부임했다.
동부지소는 이천, 여주, 하남, 광주, 양평 등 도내 5개 시·군의 가축방역 업무를 관할한다. 지난달 24일부터 전 직원 22명은 구제역 현장을 누비며 출퇴근 없이 24시간 근무 중이다. 박 지소장도 여느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구제역 방역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식구들 얼굴을 못 보다가 1월 1일에야 박 지소장은 수원에 있는 집에 갔다 왔단다. 마침 그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오랜만에 부인과 마주 앉아 맥주 한잔을 마시는데 초등학교 6학년생인 늦둥이 막내아들이 옆에 오더니 “누구세요?”라고 농을 걸더란다. 아빠 얼굴 보기가 너무 어렵다는 막내아들의 애교 섞인 투정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 박 지소장의 얼굴에 씁쓸함이 배어났다.
늦둥이 아들이 많이 보고 싶겠다고 묻자 “그럴 겨를도 없다. 보통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드는데 잠시 아들 생각이 스치다가도 금방 떨어져 나간다”고 박 지소장은 말했다.
연말연시도 만끽하지 못하고 새해를 맞았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재치있게 답했다. “친구들이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해피’는 아니고, ‘올드(Old)’하다라고 말했어요. 작년부터 죽 이어져 왔다는 얘기죠. 종무식이 없으니 시무식도 없죠.”
인터뷰가 시종 유쾌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박 지소장은 인터뷰 동안 두 차례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한 번은 구제역 탓에 가족처럼 애지중지 기른 소·돼지를 사지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농가들을 위해, 또 한 번은 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의학도가 됐음에도 악역을 자처하면서 집단 매몰 현장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 수의사들을 위해.

구제역 방역은 그동안 살처분 조치에서 현재 예방 백신접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주군 한 농가에서 백신을 예방접종하는 모습. ⓒ 여주군청 제공
▶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의 구제역 방역 업무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시·군에 신고 접수되면 저희에게 넘어옵니다. 예찰조가 현지 예찰활동을 해서 임상 증상이 나타난 소가 있으면 시·군에 통보합니다. 시·군이 매몰지를 선정하고 정리해 놓으면 저희 직원들이 가서 살처분합니다.”
동부지소 관할 내 구제역 발생 건수는 공식적으로 여주군 1건, 양평군 1건이다. 3일 현재 발생농가 500m 반경 내 40농가의 소·돼지 1만4759두가 살처분됐다. 발생지에서 반경 10㎞ 이내 농가의 소에 대한 예방백신 접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주군의 경우 접종률이 99%에 이르렀다. 박 지소장은 “현재 구제역 방역 방향은 예방 백신접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구제역 발생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처분 현장을 직접 가서 보시는데 마음이 어떠신지요?
“가슴 아프죠. 직원들이 가서 살처분하면 축주(농장주)들이 그렇게 많이 울어요. 직원들 마음도 아프죠. 30년 키운 소를 살처분한 분도 있으니까요. 소 두 마리로 시작해서 30년 동안 50마리로 만들어 놨으니 가족 같죠. 특히, 낙농하시는 분들은 정말 고생해서 그만큼의 유량이 나오게 소를 키워놨는데 그걸 살처분하려니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저희도 그 아픔을 아니까 많이 울어요. 저희 직원 중 일부는 올망졸망한 송아지는 도저히 살처분하지 못하겠다고 통곡하기도 합니다.”
▶축주 중에 기억나는 분이 있나요?
“지난해 봄에 살처분할 때 한 분이 그러대요. ‘당신들은 천국 못 갈 거요.’라고요.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번 구제역의 강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구제역은 국가 재난이에요. 다른 1종법정전염병이나 인수공통전염병은 전파 속도가 느려 색출해서 도태하면 되는데 구제역은 전파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기 때문에 재난이라고 봐야죠. 그래서 국제무역사무국(OIE)도 1종법정전염병 중 최고 무서운 질병으로 구제역을 분류합니다.”
박 지소장은 2002년과 지난 봄에도 구제역을 경험했다. 2002년 당시의 구제역도 전파 속도는 어마어마했다고 그는 말한다. “발생지 반경 3㎞를 잡고 나서야 잦아들었어요. 그때는 증상이 3~5일마다 나타났는데, 이번 구제역은 7~10일 단위로 증상이 나오니까 전국적으로 퍼지는 거 같아요.”

살처분하는 축산위생연구소 직원들은 축산농민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준조 지소장은 한 농민에게 “당신들은 천국 못 갈 거요”란 말까지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여주군 농가에서 예방접종하는 모습을 한 축주(농장주)가 지켜보고 있다. 뒷모습만으로도 근심이 그득하다. ⓒ 여주군청 제공
▶축산농가 처지에서 볼 때 축산위생연구소 직원들이 악역으로 맡았는데요. 심경이 복잡하실 거 같습니다.
“그렇죠. 공무원이면서 수의사가 아니면 이 짓을 안 하죠. 억만금을 줘도 안 합니다. 다른 공무원들은 ‘펜’으로 일하지만 저흰 몸으로, 기술로 일합니다. 수의사로서 책임감, 의무감이 있으니까 참고 견뎌내는 겁니다. 수의사는 ‘면허’가 없으면 못 합니다. ‘면허’가 있으니까 해야 합니다. ‘내’가 아니면 못 합니다.”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하면 활활 타다 재가 될 날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재가 될 시간이 오니까 그때까지 격려하면서 잘해 봅시다.”
말을 마치고 박 소장은 눈물을 삼켰다. 그 이유를 찬찬히 밝혔다. “저희 직원들이 만날 죽이는 일만 하는데 원래 동물을 살리는 법을 배웠어요. 그런 걸 공부했는데 지금 하는 일이 어찌 험하고 힘들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참 아픕니다.”
“구제역 방역현장을 가면요. 구덩이를 파거든요. 판 데서 물이 나오면 옮기고, 옮기고 하다 밤에 일(살처분)을 시작해요. 저녁 6시부터 하면 꼬박 밤새고 다음날 6시까지, 아니면 그 다음날 오전, 많은 경우엔 오후까지 해야 해요. 1박2일 잠 한숨 안 자고. 엊그제 이천시 장평리에 갔을 때 그랬거든요. 오후 1시에 들어갔는데 그 다음날 5시에 나왔어요. 얼마나 사람이 피곤하겠어요. 그걸 참고 다 하고 잠깐 눈 붙이고 나서 또 나가야 되고…”
업무 중 가장 힘든 일이 뭐냐는 질문은 사족이 돼버렸다. “살처분이 가장 힘들죠. 가장 괴롭죠. 이런 재난이 다시는 안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해 소망은 무엇인가요?
“물론, 구제역이 끝나는 게 소망이죠. 다른 소망은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앞으로 구제역 확산을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소에게 예방 백신접종을 했으니까 안정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돼지가 또 걱정입니다. 돼지는 백신을 안 해서요. 옛날엔 축산농가가 소규모여서 커 봐야 몇 천두였는데, 요즘에 돼지의 경우 1만두 이상 하는 곳이 많아졌어요. 기업인 거죠. 그런 기업을 하루 아침에 문 닫게 하는 게 바로 구제역입니다. 폐업시키는 거죠.”

인터뷰 내내 박 지소장은 부하직원들을 향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그는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하면 활활 타다 재가 될 날이 있다. 조금만 더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재가 될 시간이 오니까 그때까지 격려하면서 잘해 보자”고 직원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겼다. ⓒ G뉴스플러스 황진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박 지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사에 첨가해 달라며 축산농가에 당부의 말을 남겼다. 구제역 조짐이 보이면 즉시 방역당국에 신고해야 피해와 확산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축주들 간 모임이나 접촉을 삼가라고 했다. 12월에 구제역 전파가 빨라진 이유가 축주들 간 연말 모임 등이 잦아지면서 인간에 의해 전염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박 지소장의 생각이다. 따라서 축주들끼리 최대한 접촉을 해선 안 되고, 대책회의 등을 위해 따로 만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러고도 박 지소장의 전화는 한 차례 더 걸려왔다. 직원들 얘기였다. 직원들이 업무가 힘든데도 자신의 짐을 덜어주려 서로 현장에 가려고 한다, 남한테 미루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자기가 가겠다고 솔선수범한다는 얘기를 꼭 실어달라고 했다. 연독지정(吮犢之情)이라고, 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듯 부하직원을 향한 박 지소장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동물을 살리려 수의학을 배운 이들에게 살처분이 수반되는 구제역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다. 오늘도 뉴스에선 구제역 확산이 속보로 전해진다. 대체 얼마나 많은 소·돼지를 죽여야 이 광풍은 끝날까. 누구보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건 수의사이자 공무원인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