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의 건원릉에서 조선의 시조 이성계를 만나다.
동구릉 내에 위치한 동구릉 역사박물관 ⓒ 서민호/꿈나무기자단
1926년 4월 25일, 조선 27대 왕이자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가 승하하면서 길고 긴 조선의 500년 역사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조선 왕릉은 500년 조선이 21세기의 우리에게 전하는 생생한 역사이자 이야기이다. 그곳이 바로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번지에 위치한 동구릉이다.
[세계유산 동구릉]
세계유산은 세계가 함께 보존하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에겐 세계유산을 후손에게 잘 전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구리시의 동구릉은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이므로 우리는 세계유산인 동구릉을 잘 보존해서 후손에게 그대로 전해줘야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동구릉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우리 힘으로 동구릉을 지켜야 한다.
동구릉에서 건원릉의 위치를 확인하는 서민호꿈기자 ⓒ 서민호/꿈나무기자단
[동구릉에는 누가?]
동쪽에 있는 아홉릉이란 의미를 가진 동구릉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왕릉군이다.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인 `건원릉`, 제5대 문종과 현덕 왕후의 능인 `현릉`, 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 제18대 현종과 비 명성왕후의 능 `숭릉`,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 `휘릉`,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 이렇게 총 6 개의 능이 있을 때에는 동오릉이라고 불렸다. 6개인데도 오릉이라 부른 것은 짝수를 사용하지 않는 관례 때문이었다.
그 이후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 제24대 현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 왕후의 능인 `경릉`,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인 `수릉`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동구릉이 되었다. 이번엔 그 중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에 대해 소개 해 보겠다.
[동북면의 호랑이, 조선의 용이 되다]
고려의 뛰어난 무장이었던 태조(1335 ~ 1408) 이성계는 우왕의 명령에 따라 명나라를 공격하러 가지만 이성계는 4대 불가론을 내세우며 출병을 반대한다. 4대 불가론의 내용은 이렇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둘째, 여름 철은 농사로 군사 소집이 불가하다. 셋째, 수도를 비운 사이 왜구가 침입 할 수 있다. 넷째, 여름철이라 활의 아교가 녹아 쓸 수 없고, 병사들은 병든다.
결국 이성계는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서 회군(군사를 돌린다는 뜻)을 단행하는데 이 사건을 `위화도회군(1388년)`이라고 한다. 이성계는 고려로 돌아와 우왕(고려 32대왕)을 폐하고 창왕(고려 33대왕)에 이어 공양왕을(고려 마지막왕) 세우고 마침내 1392년 7월 17일, 57세의 나이로 개경에서 왕위에 올라 새 시대를 연다. 동북면의 호랑이가 조선의 용이 되는 순간이었다.
건원릉의 모습 ⓒ 서민호/꿈나무기자단
[제1대 태조의 건원릉]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이다. 이성계는 7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건원릉은 동구릉에서 가장 중앙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원릉은 봉분이 억새풀로 덮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는 자신을 고향인 함흥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함흥의 흙과 억새로 봉분을 덮는 것으로 아버지의 유언을 대신했다. 한양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개국 시조(나라를 세운 조상)를 모실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태조가 진정으로 묻히고 싶었던 곳은 두번 째 부인인 신덕왕후 옆이었다. 하지만 신?왕후의 아들인 태종 이방원은 계비인 신덕왕후을 무척 미워했다. 어쩌면 태종이 태조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안 이성계는 차라리 자신의 고향에 묻히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태조가 승하하자 태종은 도성 안에 있던 신덕왕후의 능을 파헤쳐 정릉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때 파헤쳐진 병풍석은 광천교 홍수공사에 마치 던져지듯 뒤집혀서 사용 되었다. 이 모습을 본 태조 이성계의 마음은 어떠 하였을까?
황진영 해설사에게 인터뷰 중인 서민호꿈기자 ⓒ 서민호/꿈나무기자단
아래에 일문일답은 황진영 해설사와 본 기자의 대화 내용이다.
Q:왜 건원릉은 다른 능의 비해 터가 크나요?
A:아무래도 조선을 세우신 분이니까 터가 더 크고 태조 이성계 임금님의 큰 권력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능과 달리 능을 혼자 두어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습니다.
Q:작년 5월에 `동구릉 문화제 어가 행렬` 이 열렸는데 올해도 열리나요?
A:네. 올해도 내년에도 해마다 열립니다.
- 동구릉 문화제 어가 행렬이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9릉 17위의 능이 있는 동구릉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문화유산인 동구릉을 널리 알리고자 구리시 주최로 해마다 5~6월 사이에 열리는 행사다. 동구릉에 있는 모든 왕들의 성은 전주이씨인데 2003년까지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관으로 `건원릉친향기신제`가 열리다가, 2004년부터 구리시가 문화축제를 추가해서 시민축제로 열기 시작했다.
건원릉 정자각의 모습 ⓒ 서민호/꿈나무기자단
[건원릉의 정자각]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은 태종 8년에 건원릉과 함께 건립 되었으며 그 후 여러차례 수리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건원릉 정자각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제향을 모시는 상징성도 있지만 <국조오례의>(길례)의 단묘도설과 비교할 때 건립당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왕릉 조영제도에 있어서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크다.
왕릉은 단지 죽은 사람을 모셔놓는 곳이 아니다. 왕릉은 역사 그 자체다. 잠들었으나 잠들지 않은 역사, 그것이 조선왕릉이다. 올봄 우리 친구들도 우리의 역사를 찾아 동구릉으로 떠나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