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은 1905년 11월 17일 우리나라가 일본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이다. 이 조약의 문서에는 친일파 외부대신 박제순의 도장이 있을 뿐,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의 옥새 도장은 찍혀있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이 조약이 정상적으로 체결되었을까?
바로 박제순과 일본 특명 전권 공사 하야시의 서명이 있는 외교 문서 때문이었다. 이 문서 한 장 때문에 우리나라는 나라의 주도권이나 다름없는 외교권을 빼앗겼다.
을사늑약 문서(1905)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그냥 종이 한 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국가 간의 체결된 협정이 모두 기록된 외교 문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불평등 조약을 강제로 맺게 되었을 경우에도 양국이 동의한다는 외교문서가 있으면 아무리 억울해도 이를 되돌릴 수도, 따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외교 활동을 기록한 문서들은 어디에 보관되고 있을까? 중요한 국가 기밀인 만큼 이 문서들은 국가 소유인 외교통상부의 외교 사료관에서 완벽하게 보안, 관리되고 있다. 각종 문서들을 비롯해 우리나라 외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외교 사료관을 꿈기자가 직접 찾아가 보았다. 아울러 외교의 중요성을 배우는 ’어린이 외교관학교’ 프로그램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외교란 무엇일까요?>
외교란 바깥 ‘외’, 사귈 ‘교’를 써서 말 그대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외국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그동안 외교는 정치와 경제 분야에 한정되었지만, 최근에는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로까지 외교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외교는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국의 발전과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 도모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총 192개 국가 중 188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
<외교 사료관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왼쪽)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외교 사료관, (오른쪽)외교통상부 마크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외교통상부는 외교 사료를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며,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 외교를 추진하기 위해 2006년 4월, 외교 사료관을 개관하였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이곳은 일반인이 외교 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외교 문서 열람실과 박물관 기능을 포함한 외교사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외교 교육도 겸하고 있다.
(왼쪽)외교사 전시실 입구, (오른쪽)한일병합조약 문서 (1910)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1층 외교사 전시실에는 1876년 개항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주요 외교 문헌, 기록 사진, 기념물 200여 점을 시대별로 전시해 놓았다. 이곳은 일반 국민에게 우리 외교사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하고 있으며, 차세대 외교학습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은 총 4회 도슨트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한국 외교사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왼쪽 위부터)외교사 전시실 내부, 우리 외교를 이끈 인물들, (오른쪽 위부터)사진으로 보는 외교 현장, 페루 대통령이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증정한 석고 인형집(2006), 우리나라 여권의 변천사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외교사 전시실과 같은 1층에 있는 외교 문서 열람실은 공개문서의 마이크로필름과 관련 자료가 비치되어 있다. 1993년 이래 외교 문서 공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일반인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교 문서들은 매일 오전 9:30부터 오후 17:00 까지 공개된다.
또한 지하 1층에는 소독/탈산화실이 있다. 이곳에서는 중요한 외교 문서의 훼손을 막기 위해 소독 장치를 설치해 놓았고 외교문서의 수명을 늘려주는 역할도 한다. 이렇듯 외교 사료관은 국민이 함께하는 외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린이 외교관학교는 어떻게 참여하나요?>
외교 사료관에서는 매달 정기적으로 ‘어린이 외교관학교’ 토요 상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꿈기자도 2014년 제1기 어린이 외교관학교 프로그램에 신청해 3월 한 달간 참여하였다.
어린이 외교관학교는 한 달 4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 두 시간씩 우리나라 외교사와 국제 외교에 대해 수업한다. 수업안에는 외교사 전시실 관람과 현직 외교관과의 대화시간도 마련되어 있어 생생한 외교의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린이 외교관학교는 매달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 접수를 받고 있는데, 접수를 시작한 지 몇 초 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내용이 알차고,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 외교관학교 수업 중 ‘외교관과의 만남’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어린이 외교관학교에서 써 본 외교관 부임 선서장과 임용장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꿈기자가 참여했던 2014년 1기 ‘어린이 외교관학교’ 마지막 주에는 외교부 동북아과 2부서에서 근무하는 김대식 서기관이 참석해 ‘외교관과의 만남’을 가졌다.
외교관의 꿈을 키우는 어린이들의 질문이 쉼 없이 이어졌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서 근무한 현직 외교관으로부터 실질적인 우리나라 외교의 현실과 외교관의 업무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외교관과의 만남’시간에 오고 간 질문과 답변을 간략하게 옮겨보았다.
< 외교관과의 대화 >
Q: 외교관들은 보통 몇 개 국어를 해야 하나요?
A: 보통 기본적으로 영어를 해야 하고, 영어 외에 유엔 공통어 중 하나 정도를 더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프랑스와 독일어가 강세였지만, 최근에는 중국어와 아랍어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교관들이 외국어를 몇 개씩 하는 건 아닙니다. 조금 할 줄 아는 언어가 많은 것보다 하나의 언어라도 매우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외교관의 연봉은 어느 정도인가요?
A: 연봉… 중요하죠. (웃음) 직급에 따라 다르지만 외교관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연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대기업 회사원보다 약간 적은 정도지만 대신 외국에서 생활할 때 보조금을 받습니다. 제 생각에 외교관들은 연봉보다는 일에 대한 보람, 성취감으로 이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Q: 외교관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은 무엇이 있나요?
A: 물론 국제법, 경제학, 외국어 등 많은 공부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죠. 외국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할 경우에는 친화력과 정보력, 외향적인 성격도 필요하고요. 일단 외교관을 꿈꾸는 어린이들은 책을 많이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기는 연습을 많이 하세요. 특히 영어나 외국어로 글을 잘 쓸 수 있다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Q: 외교 과정에서 외교부의 생각과 국민의 생각이 서로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A: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한미 FTA가 그런 경우인데요. 우리나라 안에서도 한쪽은 좋고, 또 한쪽은 불리해지는 외교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외교통상부는 전체로 따져봤을 때 우리나라에 이익인 쪽이 어느 쪽인가를 고민하고 그쪽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만약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할 경우에는 외교부도 다시 한 번 더 깊이 고민해서 결정해야겠죠? 그리고 나서 나중에 피해를 입는 쪽이 생긴다면, 정부에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외교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안에서의 ‘내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외교관이 되어서 애국심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A: 문득 그 질문을 받고 보니, 저도 반성이 되는데요, (웃음) 사실 일 하면서 매 순간 애국심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일의 특성상 다른 공무원들보다는 애국심을 느낄 기회가 더 많은 것은 확실합니다. 지난 3월 28일 6.25때 전사한 중국군 유해를 고국으로 송환하는 인도식이 있었는데, 그 행사를 준비할 때까지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일할 때는 힘들다고만 느꼈는데, 막상 뉴스를 통해 인도식이 거행되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까 그때 문득 ‘아!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애국심을 느꼈습니다.
Q: 장래 희망이 외교관인데 어떻게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A: 먼저 적성에 맞는지 고민하세요. 만약 자신에게 맞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일단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시고요.(웃음) 되도록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세요. 저는 대학교 때 외교통상부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요. 막연히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과 저처럼 외교부에 근무하면서 구체적으로 자기가 하게 될 일을 상상하면서 공부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저에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만남의 시간’ 내내 어린이들의 예리하고도 엉뚱한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김대식 외교관은 진지하고도 알기 쉽게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어린이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만남의 시간이 끝나고, 어린이 외교관 수료식에서 김대식 외교관은 어린이들에게 수료증을 나누어 주며 한 명 한 명을 격려해주었다. 미래 외교관을 꿈꾸는 꿈기자에게도 4주간의 교육은 외교와 외교관이 하는 역할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함께 느끼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왼쪽부터)제1기 어린이 외교관학교 수료식, 수료증을 받는 꿈기자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외교 사료관은 우리나라 외교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다. 130년간의 외교 역사 속에는 을사늑약이나 한일병합 같은 가슴 아픈 과거도 있었지만, 그런 외교사를 통해 우리는 더욱 크게 반성하며, 발전적이고 성공적인 한국 외교의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열려있는 외교, 20년 후 한국 외교를 이끌어 갈 예비 외교관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미래지향적인 외교, 바로 그 중심에 외교통상부의 외교 사료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