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수원종합운동장에서는 한층 뜨거워진 햇볕 아래 제12회 경기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주황물결로 가득한 수원종합운동장은 간만에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몸을 풀고 있는 참가자들, 운동장 가득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목소리, 분주한 진행요원들로 여느 마라톤대회와 다름없어 보였지만 속내는 달랐다.
마라톤 하프코스 참가자 이용근 씨가 등판에 붙인 ‘얘들아! 꼬옥~~ 살아서 돌아오라!’ 문구를 보여주고 있다. ⓒ 권지원 기자
이번 마라톤대회는 기존의 대회와 달리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아 풀코스를 취소하는 등 행사 전체를 대폭 축소한 채 진행된 것.
경기마라톤대회 관계자는 “대회 개최를 앞두고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참가자들의 대회 연기 요구와 주최 측의 대회 진행 여부에 대한 논의가 수차례 이뤄졌으나 전국 각지에서 참가하는 대회의 성격상 취소하거나 연기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축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벤트성 행사는 모두 생략하고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과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의식만을 치른 채 마라톤 레이스를 진행했다.
국민의례와 묵념의식을 가진 뒤 임창열 경기일보 대표이사는 “마라톤을 인생의 여정 같다고 비유한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마라톤의 정신이야말로 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위기를 극복해내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고 전했다.
또한 임 회장은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 좋은 기록도 달성하시고, 완주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시기 바란다”고 참가자들을 응원했다.
마라톤 하프코스 참가자 강동현 씨가 마라톤 출발 전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 권지원 기자
출발 전 단체 준비운동을 한 뒤 마라톤은 시작됐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 참가자들은 오른쪽 가슴에 ‘무사귀환’ 문구가 적힌 리본을 달고 묵묵히 뛰기 시작했다.
하프코스(21.0975km)에 도전한 경기도 대학생 기자단의 강동현(25) 참가자는 “대학교 4학년이 된 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이 많이 됐던 상태였다. 새롭게 의지를 다지고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마라톤에 도전했다”고 참가 계기를 밝혔다.
경기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대기하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 권지원 기자
예정된 코스를 모두 달린 참가자들은 완주 기록을 확인한 뒤 가족 또는 함께 참가한 친구, 연인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날 대회는 별도의 시상식과 폐회식을 갖지 않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막을 내렸다. 참가자들도 순수하게 마라톤 본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대회 참가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였다.
하프코스에 도전할 참가자들이 출발 라인에 서있다. ⓒ 권지원 기자
10km 완주에 성공한 서유리(24) 참가자는 “달리며 힘들 때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실종된 아이들을 생각했다.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고통스러워 할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마라톤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 같다. 내년에도 친구와 함께 참가할 것”이라고 계획을 말했다.
경기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주황물결을 이루며 수원 장안문 앞을 달리고 있다. ⓒ 권지원 기자
경기도 대학생 기자단의 강동현 참가자도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참가자들이 많아서 뛰다가 걷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모두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묵묵히 뛰더라”고 감탄한 뒤 “솔직히 마라톤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km부터는 기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자원봉사자들과 페이스메이커들의 응원과 도움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그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오른쪽 가슴에 달았던 노란 리본. ⓒ 권지원 기자
참가자들의 오른쪽 가슴에 매달린 리본의 문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 참가자의 등판에 적힌 ‘얘들아! 꼬옥~~ 살아서 돌아오라!’라는 글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은 자신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고통의 숨을 내뱉으며 견디고 있는 아이들이 돌아오길 기원하며 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