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뉴욕·파리·서울 순으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실제 생방송 전체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1984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나 기억이 있는가. 조지 오웰의 대표작 <1984>에서는 미디어의 감시가 일상화된 통제 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러나 실제 1984년 전 세계인의 새해 첫 날은 미디어의 순 기능을 보여주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TV쇼로 시작되었다. 유명 예술인들의 다채로운 쇼로 꾸며진 이 이벤트 덕분에 1984년의 아침은 오웰의 예상과 달리 웃음과 화합으로 가득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1984년이 되면 매스미디어가 인류를 지배하리라는 조지 오웰의 비관적인 예언을 백남준이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하면서 시작되었다. 예술을 통한 매스미디어의 긍정적인 사용을 보여주기 위해 위성 TV쇼를 기획했다. 뉴욕과 파리를 위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연결했고 100여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대중예술과 아방가르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미술·퍼포먼스·패션쇼·코미디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이 다채로운 예술들을 합성하여 한 TV화면 속에서 만나게 하였다. 이 방송은 뉴욕과 파리뿐만 아니라 베를린·서울 등지에도 생중계 되어 약 2500만 명의 TV 시청자가 시청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방송 쇼였다.
박만우 백남준 아트센터 관장이 관람객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굿모닝 미스터 오웰> 30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개막 행사가 열렸다.
박만우 백남준 아트센터 관장은 “1984년 당시의 신선했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인터넷 시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의 모바일과 TV 등에 방송·대중음악·영화·시각예술 등 가능한 모든 문화 콘텐츠의 융복합적인 가능성을 이미 백남준 선생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서 제시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전시를 우리는 백남준의 시각으로 보면서 썩 괜찮은, 그야말로 헌정 이상의 작업으로 보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엑소네모의 작품 <수퍼내추럴>이 전시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이번 전시에는 백남준의 생전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비전과 예술정신을 공유하는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참여한다.
일본작가 엑소네모의 <수퍼내추럴>은 전시공간과 일본에 있는 작가의 자택을 인터넷으로 연결한다. 초능력의 대표적 이미지인 숟가락을 반씩 서로 연결해 당시 백남준이 시도했던 영상의 결합과 동시 생방송이 얼마나 새롭고 놀라운 시도였는지를 표현한다. 현재는 인터넷이 보급되어 그다지 신기하지 않지만 위성을 사용한 생중계 시도가 최초였던 당시의 놀라움은 유리겔라의 숟가락 마술의 놀라움과 같았을 것이다.
질 마지드의 작품 <증거보관소(다시 추적한 사건)>가 상영되고 앞 책상에는 질 마리드가 감시국에 보낸 요청서가 책 형식으로 전시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이외에도 질 마지드의 <증거보관소(다시 추적한 사건)>은 조지 오웰이 경고한 원거리 통신을 이용한 감시 통칭 빅브라더를 역설적으로 개인 매체로 이용한다. 작가는 영국 리버풀에 머물면서 감시국에서 기록한 영상들을 편집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리버풀의 철저한 감시시스템 덕에 도시 대부분에 설치된CCTV는 작가의 모든 모습을 저장했다. 질 마지드는 감시국에 31일간 요청서를 제출해 빨간 코트를 입고 도시를 배회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받아내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매스미디어가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봤다면 당장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을 법하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생생했던 라이브 공연 분위기 재현을 위해 폴린 올리베로스가 <바위 조각>을 미디어아트 퍼포먼스로 공연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2014년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30주년을 맞는 해로, 이 긍정의 축제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점이다. 1984년 백남준은 오웰의 예상을 뒤엎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쇼를 기획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다시 백남준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굿모닝 미스터 백남준> 쇼를 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위성을 넘어 인터넷을 이용한 글로벌 네트워킹 시스템은 더 강한 통제와 더 넓은 자유를 모두 가능하게 한다. 이 전시를 통해 나날이 복잡해지고 은밀해지는 통제와 자유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술이 이 네트워크를 변화시킬 새로운 링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