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경기도 빅파이 미래전략위원회 서비스기획분야 위원이자 서울예대 교수인 배우 박상원을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요즘 한창 연극 ‘고곤의 선물’ 준비에 한창인 그를 마주한 것은 막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길목에서였다. 약간은 피곤한 모습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근처 삼겹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기를 뒤집고 잔을 부딪치며 약 1시간 가량 인터뷰를 가장한 그와의 진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현재 ‘경기도 빅파이 미래전략위원회 서비스기획분야 위원’이라는 길고 거창한 감투를 쓰고 있다. 이번 인터뷰도 바로 이 직위와 관련해 문화예술과 빅파이 프로젝트를 묻고 답하는 다소 딱딱한 자리가 예상됐다. 그러나 불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그는 평생 몸담아온 ‘문화예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놨다. 이것은 곧 그가 빅파이 미래전략위원으로서 그려온 빅파이에 담길 세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배우 박상원이 연극 ‘고곤의 선물’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빅파이는 ‘Big data’와 ‘Free information’을 줄인 말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민선6기 도정 핵심 4개 정책 중 하나다. 도민 생활을 하나로 모아 데이터화 시켜 저장하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며 필요한 도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창을 제공하는 것이다.
빅파이 미래전략위원회는 빅파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각계각층의 위원으로 구성된 자문단으로 출범했다. 박상원은 그 중에서도 서비스기획 분야의 빅데이터를 위한 위원직을 맡아 활동 중이다.
그는 “빅파이 프로젝트나 빅데이터는 정보 계통인데 전 문화예술이라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며 솔직한 첫 느낌을 말했다. 빅데이터는 테크닉하고 정보·스피드 같이 현대적인 단어와 어울리는 개념인 반면 문화예술은 아날로그나 핸드메이드적인 감성이 아직도 대두되는 분야다. 서로 극과 극을 달리는 두 분야가 어떻게 잘 융합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박상원과 동료 연기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백승지 기자
박상원은 아직도 스마트폰을 거부하며 이메일이 아닌 손 편지를 고집한다. 그는 문화예술의 창조성과 아날로그 감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때 ‘스티브잡스가 우리에게 재앙을 안겨줬다’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적이 있을 정도로 빠른 세상이 가져온 아날로그의 종말에 누구보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그는 빅데이터라는 양면의 칼날을 쓰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현재의 문화예술계에 대해 그는 “수도 서울은 우리에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문화가 수도권에 쏠리는 편중현상을 지적했다. 또한 이를 경기도의 역 발전 기회로 삼기위한 발판으로 빅데이터를 이용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경기도의 자연환경과 도민의 문화향유 수요 등에 관한 정보를 모은 빅데이터를 만들면 경기도에 문화예술이 뿌리내릴 수 있는 첫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저장한 빅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정보를 모은 빅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현재 그가 그리는 빅파이의 청사진이다.
동료 연기자와 연습에 몰입 중인 박상원. ⓒ 백승지 기자
빅데이터가 도민의 생활을 전부 정보화하고 저장하면 감시사회 ‘빅브라더’가 도래할 우려에 대해서는 ‘업보’라며 간결하고 솔직하게 답변을 내놓았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는 향유자의 개인적 취향도 정보화가 필요한 분야이기에 데이터화에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른바 정보화시대에 사는 개인이 편리함을 누리는 만큼 견뎌야 할 ‘업보’인 것이다.
그는 “정보를 과잉생산하면서 그만큼 인간성이 사라진다는 예상을 해야 한다. 빠른 세상이 언제나 행복한 세상은 아니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빅파이 미래전략위원이면서도 아날로그적인 눈으로 정보화와 빅데이터를 경계하는 그에게선 예술인 특유의 소신이 느껴졌다.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진 문화예술과 빅파이의 만남과 충돌. 그 사이에 선 그의 소신이 양 극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