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 답답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세월호 침몰, 군대 폭력사건 등 TV 뉴스와 인터넷을 봐도 온통 우울하고 슬픈 소식뿐이다. 국가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부모님의 한숨만 늘어만 간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저마다 입시와 취업이라는 관문 앞에 좌절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답답함과 슬픔을 토로할 곳이 없어 더욱 우울해지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럴 때면 ‘이것’을 떠올려보자. 유년시절부터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우리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던 그것, 바로 ‘만화’다.
‘만화’라 하면 단순히 웃고 즐기는 유희거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만화는 단순한 재미를 주는 매체를 넘어 시대상을 반영하고 지친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이 같은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키덜트(Kidult)족을 자처하며 만화 속에서 꾸준한 즐거움과 힐링을 얻고 있다.
‘만화, 시대의 울림’ 전시. ⓒ 성지훈 기자
그리고 이제 만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제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가 개최되었다. 국내 유일, 국내 최대 만화축제를 표방한 이번 축제의 캐치프레이즈는 ‘만화, 시대의 울림’이다.
주제에 맞게 만화박물관에서 열린 다양한 전시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만화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었다.
주제전인 ‘만화, 시대의 울림’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 함께 한 우리의 만화를 돌아보는 전시이다. 그 시대를 살아왔던 어른부터, 오늘날을 살아가는 아이들까지 함께 만화를 보고 공유하며, 만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노랑 희망을 노래하다’ 전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만화와 일러스트를 선보이는 자리로, 만화가 이 시대 아픔을 같이 공유하고 힐링할 수 있는 도구임을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1980년대 인기 만화 ‘독고탁’ 전시. ⓒ 성지훈 기자
만화가 고우영 특별전. ⓒ 성지훈 기자
‘돌아온 독고탁’전과 만화가 ‘고우영’ 특별전은 우리와 함께 했던 그 만화와 부모님 세대를 돌아보는 전시였다.
‘독고탁’과 ‘고우영’ 전시는 평소 대화가 뜸했어도 만화라는 매체 하나로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소통하고 즐거워하는 시간이 됐다.
‘독고탁’과 ‘고우영’전이 어른들을 위한 전시라면 어린이와 젊은 세대를 위한 이벤트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탑플레이트 배틀 현장. ⓒ 성지훈 기자
인터넷에 연재되는 웹툰을 즐겨보는 신세대를 위한 ‘EBS 소셜마당 판-라디오웹툰’ 공개방송과 대한민국에 팽이 열풍을 몰고 온 ‘탑플레이트 대회’ 등이 그것이다.
특설만화 마켓관에서는 국내외 다양한 만화 전문업체들이 만화 용품을 홍보하고 판매해 만화 애호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만화를 캐릭터, 서적, 일상용품 등과 연결시켜 새로운 창조경제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관에서는 ‘웹툰에서 온 그대’라는 제목의 흙 조형 체험전이 열렸다. 사람들이 직접 진흙으로 만화 캐릭터를 빚으며 눈으로 보는 축제에서 벗어나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오감만족의 축제를 즐겼다.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찾은 수많은 관람객들. ⓒ 성지훈 기자
만화축제인 만큼 이번 축제에서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다양한 만화 캐릭터로 분장한 코스어들이었다. 또한 단지 만화가 좋아서 자원봉사를 자처한 봉사자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베겔’이라는 닉네임의 코스어는 “인터넷에서 부천국제만화축제 소식을 접하고 참가하게 됐는데 사람들이 코스프레 캐릭터를 많이 알아보고 관심을 보여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이우향(21) 씨는 “영상애니메이션 전공이라 만화에 관심도 많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국제만화축제라는 타이틀에 반해 다양한 국가의 만화 관련 콘텐츠 부재가 원인이었다.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유년시절부터 언제나 곁에서 위안이 되어주던 만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웃을 일 없는 일상을 이겨낼 힘을 얻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 밤은 ‘만화’를 통해, 힘들었던 일과를 마무리하고 힐링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