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집 앞엔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큰 시장이 있다. 저녁마다 들리는 생선장사의 ‘떨이’ 소리는 유년기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장 옆에 대형마트가 들어선 뒤로 엄마의 “시장 갔다 올게”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대신 “엄마 마트 간다”가 일상적으로 들린다. 크고 깔끔한 대형마트 옆에 위치한 시장의 모습은 볼품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도 엄마는 가격과 서비스에서 크게 앞서는 마트로 발길을 돌린다.
마트에서 우리가 만나는 생산품은 원산지가 표기돼 있거나 주소 혹은 생산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누구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물건인지 알 턱이 없다. 그저 브랜드가 있는 제품인지, 가격이 합리적인지, 물건이 괜찮은지를 살펴보고 판단이 서면 카트에 물건을 싣는다. 이러한 일련의 기계적인 소비과정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지고 말았다. 생산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이 물건을 만들었는지는 애초에 생각한 겨를도, 필요도 없어졌다.
그러나 여기,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시장이 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를 나누며 물건에 대해 묻고 내 소비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시끌벅적하고 사람 냄새나는 이 시장을 둘러보자.
수원역 남측광장에 경기도 자활산업 주간행사를 위한 각종 부스가 세워졌다. ⓒ 백승지 기자
지난 26일 백화점과 사람, 버스로 가득한 수원역 한복판에 시장이 열렸다. ‘자활, 희망을 꽃피우다’라는 슬로건 아래 제6회 경기도 자활사업 주간행사가 수원역 남측광장에 임시 시장을 세운 것. 백화점 건물 앞에 떡하니 자리 잡은 시장의 시끌벅적함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 행사는 경기도내 자활사업단 및 자활기업에서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홍보하고자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됐다. 올해는 경기도와 경기광역자활센터, 경기지역자활센터협회, 경기자활기업협회가 주최하고 AK플라자 수원점의 후원을 받아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진행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자활사업 박람회를 통해 생산품 판매와 자활사업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화훼, 공예, 소품, 식품 등 다양한 분야의 자활생산품 판매 부스 26개가 설치됐으며 경기자활기업협회, 공제협동조합 등 자활관련 홍보부스 5개도 설치됐다.
행사 이튿날에는 자활생산품 품질평가대회, 자활사업기술경진대회가 열려 자활생산품과 서비스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우수성을 겨루기도 했다.
가장 인기를 끈 ‘서로좋은가게’의 진열상품. ⓒ 백승지 기자
이 날 참여한 많은 부스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코너는 ‘서로좋은가게’였다. 서로좋은가게는 취약계층이 직접 만든 생산품과 유기농 제품 전문유통 판매장이다. 2011년 7월 경기도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는 제주도 등 전국에 33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서로좋은가게의 매장과 매출이 늘수록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소득이 증대된다. 수익금은 전액 취약계층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품의 양질화에 쓰여 저소득층의 경제적 자립을 꾀한다.
서로좋은가게 부스에서 물건을 살펴보던 박선영 씨는 “재밌어요. 저 지금 두 번째 오는데 특이한 것도 많고 또 직접 만드셨다니까 더욱 믿음이 가는 것 같아요”라며 즐거워했다. 또 구입한 물건들을 담은 비닐봉투를 보여주며 “저 지금 과소비하고 있어요. 누룽지가 너무 맛있더라고요. 직접 만드셨다고 해서 샀고요, 여기 이 물비누도 제가 한번 사서 써봤더니 너무 좋더라고요. 앞으로 이런 자리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물건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 백승지 기자
취재차 행사장을 방문했던 기자도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몇 개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취약계층의 자활을 위한다는 취지와 정직한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이 물건에서 느껴졌다. 직접 만든 물건을 판매하던 아주머니와 나눈 짧은 담소, 그리고 그들의 뿌듯한 미소는 덤으로 받아왔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활’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 특별한 시장은 경기도의 희망을 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