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한민국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는 기업의 경영난과 부도사태로 이어지며 실업자수의 증가, 금융회사의 퇴출 그리고 국가경제의 붕괴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국가적인 경제위기는 1997년 말 33개였던 국내 은행수가 18개로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고, 지방은행은 당시 10개에서 그 수가 현저히 줄어 현재는 6개만 존속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1998년, 경기도에 기반을 둔 지방은행인 경기은행이 퇴출됐으며 그 이후로 17년째 지방은행의 부재로 인한 금융 구조의 낙후를 겪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기도 차원의 자율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새로운 지역금융시스템이 필요해짐에 따라 경기도형 맞춤은행의 설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I-Bank’ 설립방안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은주 기자
지난 24일, 경기도민은행 ‘I-Bank’의 설립 추진방향을 논의하는 공개토론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경기도와 경기개발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임해규 경기개발연구원장 등을 비롯해 금융관련 기업 대표와 정부·학계·IT분야 연구원과 같은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모인 자리에서 치러졌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개회사를 통해 경기 ‘I-Bank’ 설립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며 도민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 이은주 기자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기도는 그동안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비전을 실행해왔다. 새로운 비전은 상상력과 치밀한 계획이 결합될 때 가능한 것”이라며 “경기 I-Bank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스탠더드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개회사를 통해 소감을 밝혔다.
경기도, 왜 I-Bank인가?
최근 IT기술의 성장과 모바일 채널의 확산으로 인터넷 금융기관과 전자상거래 등 전자금융서비스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 증대와 함께 핀테크(금융(Finance)과 기술(Tech)이 합쳐진 신조어) 산업이 각광받으면서 기존과 차별화된 새로운 금융서비스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경기도는 이러한 사회적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여 신IT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존과 차별화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전문은행, 즉 ‘I(Internet)-Bank’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오프라인 지방은행보다도 한층 진일보한 새로운 형태의 지방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민을 위한 은행’은 남 지사의 민선6기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또한 이는 경기도정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인 ‘일자리가 넘치는 따뜻한 경기도’를 위한 선결조건이기도 하다. 임 원장은 이 날 “경기도에 있는 많은 기업과 창업자들에게 금융을 조달하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 ‘I-Bank’ 설립방향을 고안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는 남 지사의 기조연설로 시작됐다. 남 지사는 ‘I-Bank’의 설립목적과 필요성을 주창했다. ‘I-Bank’는 먼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활성화시켜 튼튼한 지역금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남 지사에 따르면 경기도 내 중소기업 대출의 비중은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중소기업 대출 의무비율제도가 존재하지만 이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따라서 전국 최하위 수준의 지역금융을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I-Bank’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왜 ‘I-Bank’인가?’라는 주제로 설립목적과 향후 발전방향에 대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이은주 기자
‘I-Bank’ 설립의 두 번째 목적은 서민을 위한 따뜻한 지역금융 안전망을 조성하는 데 있다. 2015년 현재, 연금리가 30%를 웃도는 대부업체 대출금액이 2007년보다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한 고금리 사금융과 불법사채를 이용하는 서민들이 140만명에 육박해 이른바 ‘금융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도민이 늘어나고 있다. ‘I-Bank’는 서민 개인금융의 확대로 소외계층 서민을 위한 착한 금리 대출, 고금리 대출 제한기준 설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I-Bank’ 설립의 마지막 목적은 경기도 창조경제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육성하기 위함이다. 경기도는 올해 판교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마련,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창업 허브’를 만들 계획이다. 또한, ‘I-Bank’가 중소기업이나 개인의 혁신적 아이디어에 투자를 함으로써 판교 등지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글로벌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 지사는 “‘I-Bank’를 통해 중소기업과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창업을 꿈꾸는 자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할 것”이라며 “경기도의 비전과 꿈을 현실화한다면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I(Innovation)-Bank : 사회적 금융과 공공은행의 융합으로 글로벌 혁신은행을 꿈꾸다
2016년 출범을 목표로 하는 ‘I-Bank’가 무엇보다 지향하는 것은 ‘사회적 봉사’이다. 따라서 ‘I-Bank’는 경기도 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사회적 은행의 대표적인 국외 사례로는 독일의 GLS은행과 움벨트은행이 있다. 이들 은행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낮은 금리의 대출을 해주고 사회적 기업의 사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로써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은행을 통해 자립기반을 갖고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남 지사는 이들 사례를 언급하며 경기도는 사회적 봉사를 통해 정부와 기업이 할 수 없는 복지를 실현하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퍼블릭 서비스를 실행하는 것이 목표임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시청이나 주민센터 등 오프라인 공공기관을 활용해 앞으로 ‘I-Bank’를 온·오프라인 통합의 형태로 발전시켜 모든 도민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도에서는 인터넷 전문은행과 사회적 은행의 접목을 통해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기업의 자활을 기대효과로 꼽고 있다. 즉, 경기 ‘I-Bank’는 인터넷 전문은행과 공공은행 그리고 사회적 은행이 모두 융합한 형태의 은행으로, 사회문제의 해결과 재정의 효율화를 실현하는 글로벌 혁신은행인 것이다.
경기도의 경기 살릴 I-Bank, 앞으로의 과제는?
이날 토론회에서는 민병길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박소영 (주)페이게이트 대표, 이종수 (주)한국사회투자 대표가 각각 ‘I-Bank’ 설립에 관한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I-Bank’ 설립의 기본 방향, 인터넷 은행의 역할, 인터넷 전문은행과 사회적 금융을 주제로 이어진 프레젠테이션의 공통적인 결론은 “규제와 한계 극복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자”였다.
해외의 경우, 이미 인터넷 전문은행이 보편화됐고 설립 또한 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금산분리법, 금융실명제, 인터넷 은행의 업무범위, 자본금 규모 등 인터넷 은행 추진과 관련한 규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답보상태다. 경기도가 설립할 ‘I-Bank’ 또한 정부의 규제와 한계에 충돌하게 될 것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남 지사가 이러한 규제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토론회의 마지막 순서인 ‘I-Bank’의 향후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종합토론에서는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김병기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학계와 업계 종사자 등 전문가 9명이 모여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공동회장을 비롯한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은 스마트 금융 플랫폼을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을 우선과제로 꼽았다. ⓒ 이은주 기자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공동회장은 경기도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로 ‘I-Bank’ 모바일앱 구축과 전문인력 시스템의 마련을 주장했다. 최근 모바일뱅킹의 강세로 인해 보안솔루션과 협조해 모바일 결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빅데이터를 이용한 신용분석시스템이 가능해짐에 따라 금융인력과 IT인력의 이분화가 아닌 금융과 IT분야 모두에 능통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함을 역설했다.
사회적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을 향해 달려가는 ‘I-Bank’는 정부의 규제 철폐와 전문가 인력 육성, 여러 핀테크 기업과의 연계 및 제휴를 통해 인프라를 조성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지속된 경기불황과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I-Bank’가 과연 경기(景氣)를 살리고 경기(京畿)도 살리는 효자 은행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