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과학기술 진흥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경기도농업기술원 이대형 연구사. ⓒ 경기G뉴스 유제훈
한국 사회에서 술이 의미하는 것은?
비가 내리던 지난 4월 29일 오전,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만난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연구사(작물연구과)는 “언젠가 누군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마도 술은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처음과 끝을 같이할 기호식품”이라며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으로 이 연구사를 만나러 향하던 이날 오전, 꽃이 진 자리를 따라 비가 쏟아졌다. 이어 이 연구사가 천천히 입을 뗐다.
이 연구사는 “우리나라에선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장례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술이 들어간다”며 “24절기 중간에 계절주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술을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문화이기에, 쉽게 찾을 수 있는 기호품”이라고 설명했다.
보리막걸리, 산양삼 막걸리 등 개발로 유명한 도농기원 이대형 연구사가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과학기술 진흥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이대형 연구사는 지난 2008년부터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식품개발팀에서 근무하면서 농산물을 이용해 가공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경기도 농산물 소비 확대와 농가소득 증대에 이바지한 것에 따른 결과다.
또 전통주 관련 특허 및 논문(증류주, 쌀품종별 막걸리제조 연구 등)을 국내 학술지(한국 식품과학회)에 꾸준히 게재해 국가 과학기술발전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자문 컨설팅(농림축산식품부)과 주류 관련 전문지 기고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수상소감에 대해 이 연구사는 “사실은 누구나 그렇지만 (수상을) 예상하지 않았다”며 “기존에 상을 받은 분들은 다들 오랫동안 연구하시고 경력이 대단한 분들이라 내가 낼 분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후보에 들면서 욕심이 났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사는 보리 막걸리(2009년)을 비롯해 산양삼 막걸리(2010년), 이천 쌀 막걸리·남양주 연 막걸리(2010년), 파주 장단콩 막걸리(2011년), 허니와인(2011년), 맥주맛 막걸리(2013년) 등을 개발했다.
이대형 연구사가 연구·개발한 전통주를 시음하고 있다. ⓒ 경기G뉴스 유제훈
또 지난 2012년에는 숙성기간을 1년에서 1달로 단축시킨 ‘문배주’ 기술 이전을 했으며, 2014년 수입인 맥주원료를 우리쌀과 보리로 제조한 ‘쌀 막걸리’를 개발해 기술 이전을 준비 중이다.
연구 개발한 술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것에 대해 이 연구사는 “산양삼 막걸리”라고 대답했다.
“원래 2009년에 (산양삼 술을) 생산하겠다고 찾아오신 분이 있었다. 술 제조를 전혀 모르시는 산양삼 영농조합법인 대표였다. 산양삼이 과잉 생산되니 술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2010년 (산양삼을 이용해) 막걸리(이후 산양삼 약주)를 만들어 드렸다.”
이렇게 시작된 산양삼 술은 의뢰인이 공장을 지어 주문방식으로 생산했고, 그 술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도농기원에서 기술 이전한 술(산양삼 약주·막걸리) 가운데 약주가 상을 받았다. 이어 최근 세계 3대 주류 품평회인 벨기에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 연구사는 “기본적으로 술을 만드는 일은 경기도 쌀 소비가 조금이나마 증가되기에 큰 사례로 볼 수 있다”며 “그쪽에선 산양삼이 중심이 되지만, (술 제조에는)막걸리 원료인 쌀이 많이 소비된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이 연구사에게 술을 만드는 재미는 무엇일까.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게 재미다. 술을 만드는 데 있어서 온도·미생물 관리 등 무척 신경 쓸 것이 많기 때문이다. 김치와 같다. 발효될 때, 술이 끓는 소리는 비 오는 소리와 비슷해서 듣기 좋다.”
이 연구사는 “제가 우리나라에서 (전통주 연구 분야에서) 술이 사람들에게 연구나 인정받는 부분이 있으나, 대학교(배재대학 생물학과 94학번)에 있을 때에는 술 연구로 학위 취득과 취업도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대형 연구사가 연구·개발한 산양삼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 ⓒ 경기G뉴스 유제훈
하지만 이 연구사의 전통주 연구에 대한 관심은 모교의 은사인 이종수 교수(바이오·의생명공학과 ; 산업미생물학, 발효공학, 생물공학 전공)의 연구에서 영향을 받아 비롯됐다. 대학 때, 술 제조에 관심이 생긴 일은 발효 시 발생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였다고.
“‘기능성식품’(복분자)를 이용한 치매예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중간에 술(연구) 대신에 다른 일을 하며 학위를 끝내고 술 제조업체에 들어갔다. 이게 나와 맞는 게 술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천직으로 생각한다.”
이후 이 연구사는 2008년 2월 임용돼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현재 다른 업무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여기(도농기원)가 아니더라도 밖에서 혼자 술 관련을 일을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술 연구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연구사는 “산업적으로 술을 만들어야하는 일은 기존에 없던 부분을 만드는 과학이고 마케터의 역할도 있다”며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을 과학적으로 풀어가는 일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술을 마시는 일이 업무이지만, 업무시간에 얼굴이 붉어져 또다른 어려움이라고.
이 연구사가 한 가지의 술을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착상에서 연구까지 약 1년에서 2년 정도.
“(술 연구를) 실패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100프로 성공은 말이 안 된다. 원했던 제품이 실험을 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안 될 때가 있다. 실패라는 것 보다 의도적으로 안됐기에 다른쪽으로 돌리고 연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술 연구에서의 주안점은 소비자의 기호였다.
이에 대해 이 연구사는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술인가, 기호품이기에 원료를 좋게 쓰더라도 기호에 맞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며 “(술 연구의) 가장 큰 목적은 경기도 농산물 소비로 봐야 한다. 어떻게 됐든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이 연구사가 개발한 전통주 가운데 ‘산양삼 술’은 일본과 중국에 수출로 이어졌고, ‘허니 와인’은 일본과 수출을 위해 논의 중이다. 또 ‘맥주맛 막걸리’는 수출용으로 개발돼 국외로 수출되고 있다.
일본·중국 전통주와의 한국 전통주의 차별화된 점 관련, 이 연구사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통술은 누룩을 사용한다는 것에서 (중국·일본과) 원료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기본적으로 발효방법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쌀로 빚은 술이 없어졌고, 일본은 쌀 술이 많지만 사케로 넘어갔다”며 “(우리나라에선 술을 빚는 데) 누룩을 쓰는 우리만의 문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사는 경기도가 전통주 연구분야에서 타 지자체와 차별화된 점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제품 개발을 꼽았다.
“파주 장당콩, 여주 자색고구마, 광주 산양삼, 양평 벌꿀(허니 와인) 등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특성화된 연구를 하니 타 지역에 비해 발달되고 성과도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사는 “전통주를 많이 마시는 일은 농민들의 농산물을 소비하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본사람들이 (회식자리에서) 첫술은 ‘우선 맥주 주세요’라는 말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술자리에서) 기회가 되면 한 번 정도 막걸리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7일 열린 경기도청 5월 월례조회에서 이대형 연구사가 ‘과학기술 진흥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고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