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프리츠 쿠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öder) 전(前) 독일 총리가 경기도를 방문해 성공적인 경기연정과 통일한국 속 경기도의 청사진을 그리는 메시지를 전했다.
22일 오전 11시,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강득구 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경기도의원, 오피니언 리더 및 공무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슈뢰더 전 총리의 연설을 경청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연정은 두 개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자라서 하나의 성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기G뉴스 제공
슈뢰더 총리는 1944년 4월 7일, 니더작센 주의 모젠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괴팅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976년 하노버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한 후 전통적 좌파이념에 몰두했다. 1980년 연방하원 의원, 1986년 니더작센 주의회 사회민주당 원내의장, 1990년 주총리를 거치며 사회민주당 내 온건파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동안 이념적으로 탈피한 모습을 보였다. 1998년 총선에서는 헬무트 콜을 꺾고 총리로 선출됐다.
슈뢰더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수도를 이전하고 1999년 5월 사회민주당의 요하네스 라우(Johannes Rau)가 대통령에 선출, 1999년 9월 연방정부와 의회가 베를린에서 공식 업무를 개시함에 따라 베를린 시대가 열렸다.
슈뢰더 정부는 2001년 11월, 미국이 주도한 반 테러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연방군 3900명을 해외에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이로써 과거 나치 시대가 남긴 제약에서 탈피해 통일독일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어서 2002년 1월 1일부터 유로화 출범 창설국가로 참여했다. 2003년에는 사회복지 혜택을 축소하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골자로 한 개혁정책 ‘아젠다 2010’을 추진했다. 슈뢰더 정부는 2004년 EU 헌법조약의 제정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유럽연합을 개혁하고 연방제 형식의 유럽연합 미래상을 제시하는 데에도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슈뢰더 전 총리가 경기도의회에서 ‘아젠다 2010’과 ‘연정’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 한현규 기자
슈뢰더 전 총리를 규정하는 두 키워드는 ‘아젠다 2010’과 ‘연정’이다. 이날 슈뢰더 전 총리는 이 두 가지의 지혜를 전달해주러 경기도를 찾았다.
‘아젠다 2010’은 크게 3가지의 개혁을 담고 있다. 첫째, 노동시장 개혁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해 기업의 고용정책에 자율성을 부여했다. 또한 사회보장제도와 연계해 실업상태로 머무는 것보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노동자들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게 했다.
둘째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이다. 사회보장제도의 두 축인 의료보험제도와 연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두 제도로 인해 ‘고비용 환경’이 조성되고 정부의 재정 적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개인의 책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해 나갔다. 그에 따라 연금보험의 수령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2035년까지 67세로 상향 추진하며, 처방전이 없는 의약품 구입 비용에 대한 보험 혜택을 철폐하는 등 진료비나 입원비, 의약품 비용에 대해 환자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
셋째, 세재개혁 및 경제 활성화이다. 세제개혁과 관련해서는 경기 부양을 위해 소득세율 인하책(최저세율 15%, 최고세율 42%)을 2004년 조기 시행하고 영업세나 지방세 징수체제 등으로 지방재정을 개혁했다. 또한 1인 자영업을 지원했으며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중소기업이 스스로 기술개발과 인재 선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젠다 2010’ 시행 전후 독일 경제 현황 ⓒ 독일 연방 통계청
그러나 슈뢰더 정부의 ‘아젠다 2010’ 추진은 전통적 사민당 지지층인 노동자들로부터 반감을 샀다. ‘아젠다 2010’ 시행 원년인 2003년 독일경제는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실업률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구조개혁의 특성상 개혁의 성과가 단기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가운데 2005년 1월, 실업자 수가 사상 최대인 5백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슈뢰더 정부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일시적인 효과의 개혁을 추진하기 보다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마련하기로 하고 뚝심 있게 추진해 나갔다. 결국 2005년 총선에서 기민당에 패배했다. 하지만 이후 기민당 주도의 대연정 손을 잡으면서 독일의 미래를 이끌어 나갔다.
2005년 9월 18일 총선 결과 탄생한 기독교민주연합-사회민주당 대연정은 ‘아젠다 2010’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연금 및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 기업세제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 각 분야에 걸친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과감한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경기활성화를 위한 투자 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당의 이익에 부합한 정책방향이 아닌 궁극적인 독일의 발전을 위한 정책의 방향은 독일을 그 어떤 국가보다 크게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후 EU를 주도하게 됐다.
이 같은 일련의 개혁은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이 국제 사회의 리더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어쩌면 ‘아젠다 2010’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세 가지일 수도 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통일에 대한 조언 또한 빼놓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북한이 외면하더라도 끊임없이 손을 내줘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또한 반드시 사람이 오고가야 한다고 인적교류를 강조했다.
슈뢰더 전 총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현규 기자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 독일과 비슷하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산재해 있고 청년실업으로 인해 노동시장의 개혁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그리고 경기도에서는 유례없는 연정이 시행되고 있다.
독일은 ‘아젠다 2010’ 시행 2년 뒤인 2005년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모든 면에서 최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연정을 통해 미래를 생각하며 인내했다. 결국 2006년부터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 같은 인내의 시기가 필요하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지금의 이 어두움은 곧 떠오를 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