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공원 표지석 ⓒ 김시현/꿈나무기자단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지난 6월 21일,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위치한 ‘안중근공원’을 방문했다. 이 공원은 부천시와 하얼빈시가 자매결연을 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고, 하얼빈시의 안중근 의사 동상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2009년 10월, ‘안중근공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안중근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여러 개의 비석이 있는데, 각각 안중근 의사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공원 입구에는 안중근공원 안내도 및 안중근공원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다.
안중근공원 안내도 ⓒ 김시현/꿈나무기자단
안중근의사 추모 부조벽화 ⓒ 김시현/꿈나무기자단
공원 곳곳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자료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안중근 의사의 연보가 있다.
< 안중근 의사 연보 >
1879년 9월 2일 탄생
1894년 16세 무장 폭도 진압
1905년 27세 상하이로 국권 회복여행
1909년 2월 단지혈맹
1909년 10월 26일 이등방문 사살
1910년 3월 8일 최후 유언
1910년 3월 28일 순국
안중근 의사 연보 ⓒ 김시현/꿈나무기자단
또, ‘의거의 이유’ 비석에는 안중근 의사가 일본 법정에서 외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한국독립전쟁의 한 부분이요,
또 내가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전쟁에서 패배한 포로가 된 때문이다.
나는 개인자격으로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요,
대한민국 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행한 것이니
만국공법에 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의거의 이유를 소개한 비석 ⓒ 김시현/꿈나무기자단
‘최후의 유언’ 비석에는 안중근 의사의 두 동생과 홍 신부에게 전달한 내용이 적혀 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최후의 유언이 소개된 비석 ⓒ 김시현/꿈나무기자단
안중근공원에는 여러 가지 자료가 있으니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방문하면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한편, 안중근 의사는 어렸을 적 한학을 배워 붓글씨를 잘 썼다. 보통 붓글씨를 쓴 후 낙관이라는 도장을 찍는데, 안중근 의사는 낙관 대신 무엇을 사용했을까? 바로 단지를 한 손바닥이다.
안중근 공원에 방문한 꿈기자 ⓒ 김시현/꿈나무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