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김지윤 씨와 어머니 이경자 씨가 구리시청 ‘나는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구리시청 1층 로비에 위치한 ‘나는 카페’에서 만난 김지윤 씨. 밝은 미소로 능숙하게 주문을 받고 아메리카노 두 잔을 순식간에 제조해 내놓는 모습이 과연 베테랑 바리스타답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흐뭇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김지윤 씨의 어머니 이경자 씨였다.
“지윤이는 지적장애 2급인 발달장애인이에요. 수영선수 생활을 20년 정도 했는데 지금은 바리스타 일이 더 좋대요.”
장애를 가진 자녀는 부모에게 아픈 손가락일 법도 한데 어머니 이 씨는 담담하게,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딸을 소개했다. 언제나 누구보다도 딸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이 씨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딸이 스무 살 때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어요. 많이 늦은 편이죠. 딸아이가 네 살 무렵 자폐증상을 감지하긴 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장애아 엄마들의 특징이기도 하죠.”
이 씨는 딸에게 수영을 권했다. 두뇌발달에는 산소공급이 중요한데 수영이 효과적이라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지윤 씨는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였고 핀수영(Fin Swimming) 일반선수 생활을 10년가량 했다. 하지만 일반인과 다른 지윤 씨가 오래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끊임없는 경쟁과 선후배 간의 군기 등이 지윤 씨를 힘들게 한 것. 이 씨는 지윤 씨의 의견을 존중해 일반선수 생활을 접게 하고 늦게나마 장애인 등록을 신청했다.
이후 장애인 수영선수로 10년간 활동하면서 지윤씨는 장애인 수영계에 큰 획을 그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첫 출전 당시 세운 놀라운 기록에 잠시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윤 씨는 동료들과의 경쟁을 부담스러워했다. 경쟁 없이 수영 자체를 즐기고 싶었던 것.
“무조건 강요하는 건 부모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 은퇴를 결정하게 됐죠.”
김지윤 씨의 어머니 이경자 씨는 장애를 지닌 자녀의 문제점을 아이에게서 찾지 말고 본인 스스로에게서 찾으라고 조언했다. ⓒ 김기남 기자
장애 자녀 바라보는 부모 마음 달라져야
하지만 이제 막 30대 초반에 접어든 지윤 씨를 그냥 내버려둘 순 없었다. 어떻게든 자립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김밥집, 카페 등을 데리고 다니며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때 지윤 씨가 관심을 보인 것이 바로 카페였다.
“전에는 수영코치가 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장애인이라 자격증이 있어도 다 소용없더라고요. 그런데 카페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둘이 배워서 함께 운영하면 되겠다 싶어서 바리스타 교육 등록을 했지요.”
그즈음 경기도와 한국마사회가 발달장애 청년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사회인식 개선을 위해 실시하는 ‘장애청년 꿈을 잡고(Job Go)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지윤 씨는 꿈을 잡고 프로젝트의 바리스타 교육에 참여하고, 어머니 이 씨는 잡 코치로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두 모녀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윤 씨는 나는 카페의 선임 바리스타로 3년째 근무 중이다.
자신이 만든 음료를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볼 때 행복하다는 지윤 씨에게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물었더니 ‘라테’라고 답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라테아트도 공부하고 있어요. 라테음료에 예쁜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어요.”
부모 말을 안들을 때면 바리스타 그만두게 한다는 협박(?)이 가장 효과적일 만큼 지윤 씨는 바리스타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인터뷰를 하며 어머니 이 씨는 몇 차례나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장애를 너무 섣불리 판단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늦어져도 안 된다는 것. 또 장애를 지닌 자녀의 문제점을 아이에게서 찾지 말고 본인 스스로에게서 찾으라고 조언했다.
“같이 죽을 결심을 할 만큼 힘든 시기가 많았어요. 딸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미술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독서심리상담사, 예술심리상담사 등 자격증도 여럿 취득했어요. 하지만 그런 자격증으로 장애아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자만이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나 스스로가 치료되니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너무 멀리 돌아온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