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라는 말은 꽤나 정겹게 느껴진다. 옛 친구, 옛 동네 그리고 옛길. 오랜 시간 옛길을 지나며 쌓인 발자국 수만큼 오래된 길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삼남길 1구간 한양관문길 남태령 고개 구간 전경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남태령에 올라서면 멀리 한양도성이 보인다. 이곳에서 한양을 떠나던 혹은 한양을 향해 걷던 많은 이들은 아쉬움, 슬픔, 기쁨, 긴장감을 품고 발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이 길에서 경기옛길 삼남길은 시작된다.
남태령 고개를 넘어 멀지 않은 곳에서 정조가 편히 묵었다는 온온사와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과천향교를 만날 수 있다. 햇빛이 반짝이는 여름날 과천향교 앞 넓은 계곡에서는 아이들의 물놀이가 한창이다. 아마 옛 사람들도 도성부터 바삐 걸어온 걸음을 잠시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아 여유를 즐기며 하늘을 바라보았으리라.
가자우물에서 마른 목을 축인 후 인덕원에 다다르면 옛 원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듯이 많은 음식점과 버스들이 즐비해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덕원의 풍경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하면 곧 백운호수에 닿게 된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즐기는 수도권 제일의 풍경이라 할 만하다.
백운호수의 곁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고 임영대군 사당과 묘역을 지나, 다시 모락산 능선을 따라가면 길은 오매기 마을로 이어진다. 지금도 옛 시골마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며 여행자 마음 한쪽에 여유를 주는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삼남길 주막의 의자에 앉아 조용한 마을의 여유를 한껏 느껴본다.
오매기 마을을 지나 수원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통미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공동 빨래터가 눈에 들어온다. 시대극에서 아낙들이 담소도 나누고 방망이질로 스트레스를 풀던 그 장소가 눈앞에 펼쳐지니 신기할 따름이다.
저기 아득하게 지지대 고개가 보인다. 지지대의 ‘지’는 늦을 지(遲)를 두 번 사용한다. 정조가 아버지가 모셔진 현륭원이 위치한 화산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행차를 늦췄다기에 지지대라 불리게 됐다. 지금 이곳의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과 높게 서 있는 아파트 숲뿐이라 많이 아쉽게 느껴진다.
서호공원 전경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수원 도심을 한참 걷다 보면 서호와 항미정을 만난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서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옛 사진을 보아도 서호의 항미정 일대는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보내던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원의 대표화가인 나혜석도 이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을 정도니 얼마나 인기가 많던 장소인가.
서호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걷는다. 넓은 평지 저 너머 융건릉에는 정조가 그리워한 부모와 그가 잠들어 있다. 삼남길 노선에서 조금 더 걷는 수고를 해야 융건릉에 도달할 수 있지만,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융건릉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융건릉 입구에 안내를 위한 작은 전시관이 있으니 미리 보고 들어간다면 더욱 알찬 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길로 돌아와 용주사를 향한다. 본래 신라시대 지어졌으나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옮겨 오며 다시 크게 지었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과는 다른 길이었기에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이목을 끄는 것은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탱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산성 전경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저 멀리 독산성을 품고 있는 독산이 보인다. 백제 때 축조해 조선까지 오랜 시간 사용된 산성이다. 독산성이 유명한 것은 권율장군의 일화 때문일 것이다. 왜구에 의해 포위되자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왜구가 이에 속아 퇴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에 세마대라는 지명도 붙었다.
초록이 뒤덮은 산을 내려와 고인돌 공원을 지나고 오산천을 따라 평택에 다다른다. 삼남길의 노선은 평택의 대동법시행기념비를 지나 안성천교까지이다. 경기옛길 삼남길은 여기서 마친다. 경기옛길에는 역사유적만이 아니라 소소한 행복을 누릴 만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보물을 찾기를 바란다.
경기옛길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경준의 <도로고>와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나타난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길을 바탕으로 조성됐다. 우리는 이 길 위에 산재된 역사문화자원을 연결해 길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이 개통됐고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삼남길 지도 ⓒ G-Life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