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3시 30분 경기도청 신관2층 상황실에서 열린 ‘소방관에게 듣다’ 기획토론회에서 양평소방서 구급대원 이선영 소방관이 구급소모품 부족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
“한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구급소모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심정지가 된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제세동기를 쓸 때 필요한 제세동기 패치, 출혈이 심할 때 쓰는 붕대, 거즈 등 사소해 보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구급소모품들.
“제세동기 패치가 많이 부족해서 매번 옆 센터에서 빌려 쓰고 있어요. 다른 소방서에도 물어보니 똑같은 실정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21일 오후 3시 30분 경기도청 신관2층 상황실에서 열린 ‘소방관에게 듣다’ 기획토론회에서 양평소방서 구급대원 이선영 소방관은 현장에서 느꼈던 구급소모품 부족 문제를 호소했다.
열악한 근무환경, 생명수당 13만원, 두 달에 한 명꼴로 현장에서 순직, 평균수명 58세, 1인당 담당 인구수 1,341명. 대한민국 소방관들의 아픔. 그야말로 ‘슈퍼맨의 비애’다.
경기도가 소방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자 현직 소방관 등 현장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토론회는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에 걸맞은 소방력을 갖추기 위해 현재 소방력 실태를 냉정하게 살펴보고, 화재와 재난현장에서 뛰는 현직 소방관들의 생생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기획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주재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지난 2015년 서해대교 화재를 진압하며 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평택소방서 소속 김경용 소방교 등 현직 소방관 60여 명이 참석했다. ⓒ 경기G뉴스 허선량
남경필 경기도지사 주재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지난 2015년 서해대교 화재를 진압하며 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평택소방서 소속 김경용 소방교 등 현직 소방관 60여 명이 참석했다.
경기도의회 이재준 기획재정위원장, 최춘식 기획재정위원, 윤재우 안전행정위원과 아주대 의과대학 허윤정 교수, 김창영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재난소방학과 교수 등 관련 분야 전문가도 동참해 경기도 소방력 향상 방안에 의견을 보탰다.
특히 이날 토론회는 전국 소방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경기도 인터넷 생방송인 ‘라이브경기’로 전국에 생중계됐으며, 채팅창 및 댓글을 통해 솔직한 의견을 받았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서해대교 화재 사건이 난 지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사고로 순직하신 소방관의 아내분이 써준 편지를 갖고 다니며 읽을 때마다 공직자로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 다시금 생각한다”며 “전국의 소방관들이 경기도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모범을 보이겠다. 설문조사도 반영하고 현장에서 바뀌었으면 좋겠는 것을 오늘 많이 듣고 싶다”고 말했다.
토론에 앞서 경기도에서 지난 10월 7~10일 4일간 도 소속 소방관 6067명(응답률 86%)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이 설문조사는 소방관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노후장비 교체와 인력 충원, 3교대 근무 만족도, 후생복지 등 소방환경 전반에 대해 조사했다. 이번 설문조사의 신뢰 수준은 95%다.
도 홍보미디어담당관실 정재환 리서치팀장은 “현장인력 충원을 높여야 한다고 73.2%가 답해 소방 업무환경 개선이 매우 시급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인력충원 계획에 대한 인식 또한 87.5%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일선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애로사항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인력난’이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평택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보통 현장출동 부대를 편성하면 3교대가 돼야 하는데 인원이 없다보니까 2교대로 편성돼 대원들의 피로가 누적되는 경우가 많다“며 ”거의 1인 3역을 해야 할 때가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날 토론회는 전국 소방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경기도 인터넷 생방송인 ‘라이브경기’로 전국에 생중계됐으며, 채팅창 및 댓글을 통해 솔직한 의견을 받았다. ⓒ 경기G뉴스 허선량
지난해 국민안전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소방관 기준인력은 5만493명인데 반해 현장활동 인력은 2만9783명으로 2만710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준인력 대비 41% 부족한 수치다.
실제로, 구급차에는 3교대를 기준으로 운전자를 포함해 대원 3명이 탑승해야 하지만, 일부 서에서는 인력부족으로 인해 2명만 탑승해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소방관은 인력이 부족해 자신이 힘든 것을 걱정하기보다 구조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인력 충원이 이뤄져 더 많은 구조 현장에 투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남 지사는 “도는 2022년까지 단계별로 약 4000여 명의 소방인력을 확충할 예정”이라며 “설문조사를 보면서도 필요성을 느꼈지만 오늘 토론회에서 소방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인력 확충에 대해 집행부와 의회에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라이브경기’ 채팅창에 “소방서에도 직장어린이집 만들어주세요. 직장 내 어린이집 강추입니다 ㅠㅠ”라는 의견이 올라오자 토론 주제는 소방관 육아지원정책으로 전환됐다.
이재준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장은 “소방서 안에 어린이집을 만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예산이 많이 들어,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은 각 시·군 공공기관 내에 있는 어린이집을 함께 쓸 수 있는 업무협약을 추진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 관계자는 “이번 토론회는 일선 현장에서 뛰는 모든 소방관과 정책 수혜 대상인 국민들과 함께 ‘경기도 소방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며 “수렴한 의견을 적극 반영해 실효성 있는 소방력 강화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드시 ‘두 사람’을 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등에 업은 한 사람과 그리고 나 자신. 내 목숨을 잃으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소방관의 마지막 기도. 타인을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을 보면서 소방관은 직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이날 토론회가 큰 발걸음의 시작이 되길 기대해본다.
경기도는 이날 수렴한 의견을 적극 반영해 실효성 있는 소방력 강화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