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산책’의 정의이다. 예부터 산책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많은 예술가나 작가들도 산책을 하면서 창의적인 발상을 떠올리고 문제 해결에 큰 실마리를 얻기도 했다. 특히 근대 도시 부근의 사람들은 산책을 하며 도시의 풍경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하며 거기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면모나 사회상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여기 경기도미술관에도 특별한 산책자들이 있다. 경기도 내 기성작가들로 구성된 19인의 예술가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2월 15일부터 2017년 2월 5일까지 열리는 ‘생생화화(生生化化) 2016 <산책자의 시선>’에서 이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 2016 문예진흥공모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땅, 식물, 바위 등 자연부터 시작해 기계, 콘크리트, 쓰레기까지 도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작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도시의 파편들을 나타냈다.
작가는 답사 활동 중 쓰레기를 모아 작업실에서 분류하고 드로잉하는 작업들을 진행했다고 한다. ⓒ 신강섭 기자
정재철 작가는 해양쓰레기에 주목했다. 작품 활동 중 해양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술가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시작된 그의 프로젝트는 현장답사와 수집 및 기록 등을 통해 진행됐다. 그는 전시장에 바다에서 수집한 신발, 공, 음료수병 등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을 재료로 상상 속의 해양괴물인 ‘크라켄’을 표현했다. 인간 사회의 부산물로 인해 자연환경에서 만들어진 괴물의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신선함과 함께 환경오염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현대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중 하나인 ‘지하철’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이흥덕 작가의 <지하철 퍼레이드>에서는 슈퍼맨, 배트맨, 예수, 김정은까지 우리 주변의 존재들을 모아 그만의 인공세계에 포집시켜 작품을 완성했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형상이지만 작가는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재구성해 표현했다.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자연, 풍경, 콘크리트, 군대, 터미널 등 도시 주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보였다. 작가들은 사물의 내재된 의미를 찾고 본래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속성을 발견해 관람객들이 도시의 파편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김지은 작가의 <콘크리트의 생애>나 방병상 작가의 <밀리터리 구경꾼>, 김현철 작가의 <진경> 등이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장성은 작가의 <식물학>이란 작품. 붓과 그릇을 통해 식물을 표현한 점이 기발하다. ⓒ 신강섭 기자
이밖에 몇몇 작가들은 도시에서 1차적으로 관찰되는 것을 뛰어넘어 그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나 행동, 신체나 생각 등에 초점을 맞춰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장성은 작가는 얼굴이 아닌 신체 언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사람의 다리나 붓을 통해 식물을 표현해 창의적인 발상이 돋보였다.
민성홍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이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이 버리거나 남겨두고 간 물건들을 재활용하고 재조합해 새로운 구조체를 만들었는데, 그것들은 쓸쓸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축제의 주체가 되는 활기찬 것들로 재탄생한다.
새머리 모양의 조형물과 방사형의 막대기들, 아래에 있는 바퀴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한 점이 눈에 띈다. ⓒ 신강섭 기자
<중첩된 감성 : 다시락>이라는 작품제목은 ‘다시래기’라는 굿놀이에서 가져온 것인데, 상주와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한 장례 놀이 중 하나이다. 전시장에 있는 모든 다시락 조형물들은 새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작가는 새마다 다른 부리를 통해 한정적인 오브제의 의미를 벗어나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등의 관계의 모습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도시와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출근길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 정류장을 지나쳐가는 무수한 버스들,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거리를 누비는 회사원들, 퇴근길 음식점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들까지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건 어쩌면 매우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묶음일지도 모른다.
경기도미술관은 경기도민에게 입장료 할인 혜택과 함께 도슨트를 통한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감정 스튜디오, 전시장 산책 가이드 등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있으니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산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든지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이 산책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6년, 경기도미술관에서 조용히 작품들과 산책하며 마무리 지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