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4시 수원시 금곡동에 위치한 경기도 동물방역위생시험소에서 가축방역팀 직원 4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지난 11월 20일 양주시 백석읍에 위치한 한 농가에서 올해 첫 AI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첫 신고 후 한 달이 지난 12월 21일 현재, AI는 도내 전역으로 확산되며 의심신고전화도 84건에 이르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의심신고가 들어오면서, 숨 쉴 틈 없이 바쁜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소재 경기도동물위생시험소 본부가 그곳.
매 신고마다 현장에 출동해 AI 방역검사를 실시하고, AI 양성판정이 나오면 해당 농가의 살처분까지 맡고 있는 이들의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돌아갈까?
AI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경기도동물위생시험소 가축방역팀 이호승 주무관, 김재훈 주무관, 조현수 주무관, 박태현 공중방역수의사 4명을 만나봤다.
■ 전쟁터와 같은 살(殺)처분 현장 속으로
방역복을 입고 살처분 작업에 나선 동물방역위생시험소 직원과 살처분 전문 용역인들 모습. ⓒ 경기G뉴스
“아침 8시부터 살처분 작업을 시작해요. 현장통제하고, 용역인들 관리 감독하다 보면 밤 9시가 돼요. 죽은 닭들 위에 흙이나 방수포로 덮는 작업까지 마치면 밤 10시쯤 되죠.”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7박 8일간 AI 확진 농가에서 숙식했던 김재훈 주무관은 그 당시 방역 일과를 설명했다.
AI 의심신고가 들어오면 위생시험소에서 바로 직원들이 현장에 출동한다. AI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를 끝내고 나면 AI 양성판정이 나왔다는 기준하에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후 해당농가에서 AI 양성판정이 확진될 경우,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열흘 동안 농가에 머물며 닭, 달걀, 사료까지 모든 것을 폐기 처분하는 작업을 실시한다.
살처분 현장을 다녀 온 이호승 주무관은 당시 근무 환경의 열악함을 설명했다.
“방역차에서 1주일 넘게 쪽잠을 자면서 지냈어요. 농가에서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으면 숙식이 어느 정도 해결되죠. 문제는 그렇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자는 것도 문제고 먹는 것도 문제예요. 지금 현장에 있는 신입직원은 며칠째 컵라면만 먹고, 잠은 평상에서 자고 있어요.”
살처분한 닭들을 리어카에서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 경기G뉴스
이들은 현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호소함과 동시에 살처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 냄새가 있어요. 살처분할 때 맡게 되는 부패한 동물 사체 냄새요. 현장이 아닌 지금도 생생하게 나요. 살처분을 도와주러 왔다가 그 길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아무리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다 한들 썩어 문드러진 닭 시체를 수십만 개나 만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시료 채취, 출입차량 통제, 인근 농장 AI 점검, 매몰지역 환경오염 검사, 야생동물 접근 통제 등 눈코 틀 새 없이 바쁘게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보람찬 일은 없었나”라고 묻자,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재훈 주무관은 “방역업은 그냥 버티는 거라고 보시면 된다.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보람을 느낀 적이 없다”며 “하지만 질병이 퍼지는 건 막아야 하니까 꿋꿋이 참고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 “인력난 해소방안 시급해”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 본부는 105명의 직원들이 수원, 성남, 부천, 안산 등 13개 시·군을 관리하고 있다. ⓒ 경기G뉴스
도내에서 방역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은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구 축산위생연구소) 본부를 비롯해 남부지소, 동부지소, 북부동물위생시험소, 북부지소 등 총 5군데가 있다.
이 중 동물위생시험소 본부는 105명의 직원들이 수원, 성남, 부천, 안산 등 13개의 시·군을 관리하는 등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달리, 동부지소의 경우 광주, 이천, 하남, 여주, 양평 지역을 수의사 9명, 공중방역수의사 4명까지 총 13명이 관리하고 있다.
“분명히 동물위생시험소 본부에 인력이 가장 많은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이건 상대적인 수치예요. 고유 업무까지 포함해서 업무량으로 따졌을 때는 이곳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경기도가 무척 넓기 때문에 본부와 4개 지소를 다 합쳐도 인력은 늘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와 함께 김재훈 주무관은 인력부족 원인으로 재난 특성에 따른 업무의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법률에 따라 AI 감염 농가에 현장 출동한 경우, 해당 방역관은 바이러스 잠복기인 1주일 동안 다른 농가에 출입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1명의 직원이 갈 수 있는 농가는 한정돼 있는 셈이다.
또한 소수의 인원 속에서도 실험실조(組), 시료채취조를 나눠 운영하고 있어 사실상 현장근무가 가능한 직원은 어느 정도 한정돼 있다는 것이 이호승 주무관의 설명이다.
“단기전이면 소수의 인원이라도 모든 체력을 쏟아부어서 일을 할 수 있어요. 문제는 AI 사태는 장기전이라는 거죠. 사태는 커져가고, 일할 수 있는 인원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어요. 인력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 가축방역관을 향한 부정적인 오해와 시선
살처분한 닭들을 모아 매몰한 현장 모습. ⓒ 경기G뉴스
22일까지 현재 경기도에서는 11개 시·군 115농가 1000만여 마리가 매몰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전염병을 막기 위해 한 일이지만, 농장주 개인적 차원에서는 재산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방역복을 입고 들어가면 농장이 쪽박 찬다’라는 말이 퍼질 정도로 방역관들에 대한 농장주들의 적대감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조현수 주무관은 “불이 나면 소방관이 출동해서 불을 끄듯이, AI가 발생하면 방역관들이 출동하는 것뿐”이라며 “농장주분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방역관들의 입장도 조금 더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이호승 주무관은 “살처분을 하느라 같은 농장에서 1주일 넘게 함께 지내지만 밥 한번 같이 먹지 않았다”며 “마지막에 헤어질 때는 ‘우리 서로 다신 보지 맙시다’라고 인사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적대감만큼 각종 언론사들의 잘못된 보도와 그로 인한 불신의 눈길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김재훈 주무관은 “언론에서는 단순히 철새 때문에 AI가 퍼졌다는 식으로 보도를 한다. 그러다보니 철새만 조심하면 되는데 왜 AI를 잡지 못하냐는 말들을 많다”라며 “철새 때문에 AI 바이러스가 유입됐다는 말은 어느 부분 사실이지만, 철새가 머물렀던 장소 근처의 쥐나 고양이 등 야생동물들이 옮겨오는 경우가 더 많다. 10만 수 넘게 키우는 대규모 농장에서 쥐 한 마리 못 들어오게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잘못된 보도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불신을 형성하는 것 같다”며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 가축방역팀 이호승 주무관(왼쪽)과 김재훈 주무관은 인력난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에 대해서 묻자 김재훈 주무관은 “지금 당장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승 주무관은 “AI 관련 시스템에서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당장은 눈앞에 AI부터 막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발생 후 대처하는 방법보다 사전적으로 AI 발생을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