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농장주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AI는 농장의 노력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매해 발생하는 AI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경기G뉴스
“방법만 있다면 철새가 날아오지 못하게 하늘을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키우던 닭을 살처분하는 마음은 직접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AI(조류인플루엔자) 첫 신고가 접수된 지 40일째. AI 사태가 안정세로 들어서는 듯 보이지만, 이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농가들은 살처분 처리비용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물론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고 있으며, 닭과 계란의 품귀현상은 유통업계를 비롯한 전 국민의 식탁에까지 큰 타격을 입혔다.
농장주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AI는 농장의 노력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매해 발생하는 AI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가금농가와 계란 유통업계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양계농가들은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물론, 심리적 타격으로도 힘들어하고 있다. ⓒ 경기G뉴스
■ 양계농가, AI로 인한 경제적·심리적 타격 커
하병훈 대한양계협회 포천지부장은 최근 AI 사태가 안정세로 돌아섰음에도 매일 불안함에 떨고 있다. 포천시에서는 현재까지 21건의 AI가 확진돼 32농가에서 255만1000수의 닭이 매몰됐다.
“요즘 우리 농가들은 모두 죄인과 같은 심정이에요. AI 발생농가는 전염 우려로 바깥 출입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답답한 상황이죠. 농가 회원들끼리는 밖에서 만나 소주도 한 잔씩 했었는데 이제는 매월 열던 협회 월례회의도 못 하고 사무실도 폐쇄한 상태예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살처분에 투입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가들은 마지못해 인력사무소를 통해 외국인노동자까지 고용하고 있다.
“시·군 공무원이 감독관 역할을 하고 고용된 인력들이 현장에 투입돼요. 10만수를 사육하는 농가를 기준으로 50명의 인력이 하루 종일 일해야 합니다.”
포천시 농가들이 고용한 인력들의 일당은 13만원. 50명을 고용한 농가는 65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매몰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더 큰 비용이 필요한 실정이다.
하 지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매몰 작업은 농장의 상황에 따라 3가지 정도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가장 비용이 저렴한, 땅을 파서 매몰하는 방법, 두 번째는 미생물 발효를 이용한 공법이다. 세 번째는 섬유강화플라스틱탱크(FRP)에 담아 처리하는 방법으로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10만수를 매몰할 경우 약 1억5000만원을 들여 탱크 8개를 구입해야 한다.
경기도는 최근 AI 발생농가의 매몰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5만수 이하(산란계 기준) 소규모 가금농가의 살처분 매몰비용은 전액, 5만수 이상 대형농가는 규모별로 최대 50% 매몰비용을 지원한다. 지자체 지원액은 도와 해당 시·군이 절반씩 부담한다. 이전까지 AI 발생농가는 농장주들이 매몰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했다.
하병훈 지부장은 “올해 살처분 비용을 농가가 전부 부담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경기도에 건의한 결과, 지자체에서 비용 일부분을 지원해 주는 쪽으로 결정됐다. 농장에서도 기대가 크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해 반복되는 AI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도내에 설치된 한 거점소독소에서 차량이 소독을 받고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
■ “AI 하루 빨리 종식되길”
이천에 사는 유덕선 대한양계협회 경기도지회 사무국장은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와 지자체(시군) 축산·방역팀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안다”며 “이런 노력들이 AI 종식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는 12월 30일 기준 12개 시·군 151농가에서 1,287만 마리가 매몰 처리됐다.
“농가로서는 정부 지침대로 최선의 방역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다른 지자체에 비해 AI가) 많이 발생해 마음이 아프지만, 경기도와 시·군이 미진한 부분을 의논해서 지원하고 있어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AI 확산 이유에 대해 유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철새에 의해 감염이 확산됐을 것이다. AI 감염에 따른 폐사는 바로 발생하지 않아 신고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방역 실시 전, 농가 출입 차량의 동선이 파악되지 않은 점도 확산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사무국장은 이 밖에도 공기전파, 발생농가 분진도 AI 확산 요인으로 꼽으며 “부화장의 경우 시설이 현대화돼 다각적으로 소독을 하고 있으나 공기 전파나 분진 등으로 AI가 확산된 것 같다. 경기도와 수시로 전화통화 등을 통해 의논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덕선 사무국장은 또 “매몰비용은 현재 자부담에서 지자체 지원으로 변경됐지만, AI 감염으로 폐사된 닭을 살처분하는 인력의 부족이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강조했다.
“살처분 인력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양성 판정이 나오면 바로 매몰하면 좋은데 인력 투입이 어렵다 보니 처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살처분 인력이 지원된다면 폐사된 닭을 빨리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사무국장은 “현재 대한양계협회 차원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미팅을 통해 여러 가지 건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산란계 농가는 추후 입식 여건이 나쁠 것이다. 종계 같은 경우에도 원종계를 수입해서 키우는데 1년 4개월 정도가 걸린다. 그런 문제들을 정부에서 빨리 검토했으면 한다”며 “하루 빨리 AI가 종식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AI 감염 조류 살처분 현장 모습. ⓒ 경기G뉴스
■ AI 피해, 농가·유통업계 거친 뒤 ‘식탁 물가’로 이어져
경기도내 농장들의 계란을 대형마트로 납품하는 한국양계농협계란유통센터의 유병래 센터장은 이번 AI 사태가 내년 8월 이후까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AI 발생농가는 6개월, 인근 매몰농가들은 2~3개월 후에 재입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살처분 과정에서 부화장이 망가지고 종란도 부족한 실정이다.
유병래 센터장은 “올해는 AI가 많이 심하고 경기도에서도 살처분이 많았다. 현재는 방역 등의 문제로 인해 매일 출입하던 농장을 주 1회밖에 못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계란을 많이 못 싣고 나와 유통량이 줄어든 것”이라고 계란값 상승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농가에서도 계란 출하를 못하니 창고에 계란이 많이 있다. 그나마 지금은 겨울철이기 때문에 선입선출을 하면 버리는 계란은 안 나오지만, 겨울이 끝나기 전에 사태가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계란값이 오르면서 판매도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계란 가격이 오른 것은 유통마진 폭이 아닌 농가에서 받는 실제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면서 “계란을 수입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신 가공품 등을 수입한다면 가공품에 들어가는 계란을 시판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유통업계의 피해는 개인이나 소규모업자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 거래하던 농장이 살처분 작업에 들어간 경우, 거래가 끊긴 유통업자들은 아예 문을 닫고 쉬어야 하는 현실이다.
유병래 센터장은 “병아리를 입식해야만 계란을 낳을 수 있도록 준비할 텐데 종란이 없기 때문에 농가에 병아리 공급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순서를 기다리려면 내년 8월 이후까지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며 “저희보다 어려운 소규모 유통업자분들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