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기업 ‘블로코’의 김원범 대표와 직원들이 ‘2017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 심사’에 도입될 블록체인 투표 용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절차는 선거다. 민주주의 국가는 선거권을 모든 국민의 권리로 보장한다. 문제는 급격하게 이뤄진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투표 방식은 과거에 비해 거의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투표 시스템은 사람들이 투표소에 찾아가 신분을 확인하고, 투표 용지에 마킹해 투표함에 넣은 후 수작업 개표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투표가 제대로 계산되고 있는지, 표가 버려졌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실례로 20만2,287표 차로 결과가 갈린 200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총선의 경우 무려 4,438표가 분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수록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도 높아간다.
이런 가운데 최근 투표의 신뢰성과 투명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블록체인은 온라인 금융거래 데이터의 위·변조 여부를 검증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기술로 전 세계적으로 금융권뿐만 아니라 신뢰성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잇따라 도입되면서 안정성이 증명되고 있다.
투표 분야에서는 미국 텍사스 주 자유당의 대선후보 선정과 유타 주 공화당의 대선후보 선정에 블록체인 전자투표가 활용됐고, 호주에서는 중립투표블록이라 불리는 기관이 블록체인 투표를 활용해 민주주의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개혁하고 있다.
국내에선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오는 2월 23일 열리는 ‘2017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다.
최영환 도 따복공동체지원단 공동체사업팀장은 “블록체인 기술을 심사에 도입해 그동안 공동체 대표자에게 집중됐던 투표권과 사업 학습 기회를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하게 됐다”며 “사업 선정 과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높아지고 따복공동체사업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F영화 속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온 블록체인.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 기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블록체인 전문기업 ‘블로코’의 김원범 대표를 만났다.
블록체인 전문기업 ‘블로코’의 김원범 대표는 블록체인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로 현실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안정성을 꼽았다. ⓒ 경기G뉴스 고정현
■ “암호화되고 분산된 DB로 해킹 힘들어”
“우리가 흔히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그 물건이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동산등기를 보잖아요. 블록체인은 그런 별도의 과정 없이도 그 자체로 데이터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인터넷 등기소’라고 할 수 있어요.”
김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암호학과 분산시스템에 기반을 둔 개방된 네트워크 환경에서 특정한 3자가 거래를 보증하지 않아도 각 거래 당사자끼리 이를 부인할 수 없는 방법으로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안전한 금융거래를 위해 공인인증서부터 다양한 보안 절차를 거쳐야 했어요. 이러한 절차가 곧 거래의 신뢰를 보장해 주는 셈이었죠. 하지만 지난 2008년 비트코인이 등장하면서 신뢰성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 나왔어요. 그게 바로 ‘블록체인’인 것이죠.”
비트코인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은 암호화되고 공유된 일종의 거래장부다. 비트코인 탄생 이후 지금까지 비트코인 거래 내역이 모두 기록돼 있다.
이렇게 거래 내역이 기록된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의 P2P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사람에게 공유된다. 그래서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다면 누구나 블록체인 내용을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다. 즉, 블록체인은 P2P 네트워크에 의해 관리되는 분산형 데이터베이스(DB)인 셈이다.
김 대표가 2014년 창업한 ‘블로코’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술기업이다. ⓒ 경기G뉴스 고정현
“블록체인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해킹이 거의 불가능한 DB라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과거 시스템은 은행에 모든 돈을 모아놓고, 도둑이 그 은행을 털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 은행이 이를 막는 시스템이에요. 문제는 도둑을 막기 위해 철통방어를 펼치다보니 일반인들도 점점 이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죠. 또 이중삼중 방어막을 쳐도 침입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존재했어요.”
그동안 공공기관과 인터넷서비스업체 등 소수의 독점된 기관에서 데이터를 관리하다보니, 해커들은 그 지정된 소수의 기관만 공격하면 됐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등장하면서 데이터 관리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면서 기존의 해킹으로는 데이터의 위·변조가 불가능해졌다.
“블록체인은 P2P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진 여러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되는 만큼 특정 컴퓨터가 공격받거나 멈춘다고 해서 블록체인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데이터가 유실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요. 또 블록체인에 한 번 기록된 내용을 위·변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퍼진 컴퓨터를 한꺼번에 또 수시로 해킹해야 해요. 블록체인 해킹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는 이유예요.”
블록체인은 P2P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들이 ‘채굴’이라 불리는 암호화 작업으로 유지된다. 이 암호화 작업을 방해하고 블록체인을 위·변조하기 위해서는 P2P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합한 것보다 더 뛰어난 연산능력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에 참여하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은 세계 1위에서 500위에 랭크된 슈퍼컴퓨터의 연산능력을 합한 것보다 크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상 위·변조가 불가능한 것이다.
블록체인 전문기업 ‘블로코’의 김원범 대표는 블록체인은 직접 민주주의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설명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 늘어나는 블록체인 활용 플랫폼
“이번 경기도 ‘따복공동체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는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을 구성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인 ‘스마트컨트랙트(Smart Contract)’가 국내 최초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커요.”
김 대표는 이번 경기도의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 심사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것에 대해 기대가 크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2014년 창업한 ‘블로코’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술기업이다. 주로 금융권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했던 이 기업은 올해 경기도의 따복공동체 주민공모사업 심사에 참여하면서 블록체인 투표로 그 영역을 확대했다.
“기존 투표 시스템은 신뢰할 수 있는 중앙관리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의 모든 프로세스를 관리해야 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얻을 수 있는 구조였어요.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다보니, 투표에 부정이 의심돼도 투표를 다시하기란 쉽지 않았죠.”
이에 블로코는 기존의 중앙관리기관 없이도 신뢰도 높은 온라인 투표가 가능하도록 블록체인 스마트컨트랙트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적용하면 투표 항목, 투표 참여자, 투표 후보자, 투표 시간 등 투표 업무에 필요한 일체의 요소들과 복잡한 투표 프로세스를 블록체인에 등록해 자동화 처리를 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 스마트컨트랙트 기술을 이용해 온라인 투표를 한다면 중앙관리기관을 유지하는 비용이나 투표 결과를 얻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크게 절약될 수 있다”며 “투표 결과, 투표 프로세스 등의 데이터가 위·변조, 물리적인 해킹 공격이 불가능한 블록체인 상에 등록이 되므로 높은 보안성과 신뢰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내용이든 안전하게 기록할 수 있는 DB라는 블록체인의 특성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다양한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특히 최근 시국이 시국인 만큼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투표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죠. 조만간 블록체인으로 실현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요.”
2017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도입될 블록체인 심사 모식도. ⓒ 경기G뉴스 고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