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은 정부가 정한 ‘책의 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책으로 도약하는 문화강국’을 실현하겠다며 문학진흥계획을 선포했다. 경기도 역시 출판문화산업 생태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조직하고 책 생태계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G-LIFE는 ‘책 생태계 활성화’를 연간 테마로 정하고 관련 콘텐츠를 시리즈로 연재하고자 한다.
올해 스물아홉, 서울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서지망생 문주진 씨에게는 특별한 이력이 있다. 작가였다가 그만뒀고, 얼떨결에(?) 다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 물론 차이는 있다. 과거에는 방송작가였고, 이번에는 수필작가다.
문주진 씨는 지역 출판문화 활성화와 도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출간 경험이 없는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나만의 책’ 출간을 지원해주는 ‘경기 히든작가’로 선정됐다. ⓒ 김희진 기자
“문주진 작가님이시죠?”
문주진 작가가 아르바이트 중인 학교 앞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앳된 모습의 그녀는 자신에게 따라붙는 ‘작가’라는 칭호를 어색해했다. 게다가 점심시간을 이용한 짧은 만남. 하지만 오고간 이야기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문 씨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것은 지역 출판문화 활성화와 도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출간 경험이 없는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나만의 책’ 출간을 지원해주는 ‘경기 히든작가’ 프로젝트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멋있게 살고 싶었고, 어쩌면 연예인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방송작가에 도전하게 됐죠.”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방송작가로 일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방송작가로서의 삶이 멋있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답보 상태 원고 마무리 하려 기대 없이 도전
“아침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일했어요. 아침 라디오라 새벽에 출근하고, 출근이 빠르니 퇴근도 남들보다 빠른 편이었어요. 그래서 퇴근 후 월요일마다 글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점차 업무강도는 높아지는데 업무강도에 비례하지 않는 급여 등으로 회의감이 밀려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찰 무렵, 글쓰기 선생님이 요즘 행복한지 물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상태를 글로 적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어느 날 글쓰기 선생님이 숙제를 줬다.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일본의 에세이 작가 마스다 미리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 그런 스타일로 글을 써 오도록 한 것. 그렇게 3편의 원고가 나왔다. 같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과 선생님에게 보여줬더니 반응이 꽤 좋았다. 하지만 혼자 원고를 쓰다 보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원고가 답보 상태에 머물던 어느 날, 자주 가던 도서관에서 ‘경기 히든작가’ 모집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책을 출간해 전문작가가 돼 보겠다는 욕심이나 기대는 없었어요. 그저 쓰던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일종의 목표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도전했어요.”
그런데 얼마 뒤 히든작가로 선정됐다는 통보가 왔다. 게다가 우수작으로 선정돼 창작 지원금도 받게 됐다.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아르바이트 중인 학교 도서관에서 제가 하는 일은 새 책을 검수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여러 책을 접하게 되는데 정말 훌륭하고 좋은 책이 많아요. 그런데 부족하기만 한 제 글이 책으로 출간돼도 괜찮은 건지,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할지, 창피하기도 하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문주진 씨의 수필집 <수요일에 그만둔다고 말할 거예요>는 퇴사를 결심하고 그만두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일종의 ‘퇴사일기’다. ⓒ 김희진 기자
3년차 막내작가의 자발적 퇴사 분투기 그려
경기 히든작가로 선정돼 그녀가 출간하게 된 책은 수필집으로 <수요일에 그만둔다고 말할 거예요>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방송작가로 일하던 그녀가 퇴사를 결심하고 그만두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일종의 ‘퇴사일기’다. 책 제목이 독특하다고 했더니 문 씨는 “나름대로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책 중간에 그런 내용이 나와요. 수없이 퇴사를 고민하며 그만둔다고 말할 기회를 엿보다 드디어 오늘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친구가 월요일은 그만두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조언해요. 월요일에 말하면 일주일간 눈치를 보느라 힘이 들고 월요일만의 짜증스러움이 있기 때문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이 그만두기에 가장 적절할 것 같다는 데 동의했죠.”
문주진 씨의 보물 중 하나라는 독서노트. 책에서 아름다운 문장이나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독서노트에 손으로 옮겨 적어 간직한다. ⓒ 김희진 기자
원고를 쓰기 시작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방송작가의 일상을 담고 싶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퇴사분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쑥스러워하는 그녀.
“퇴사라는 주제가 자칫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나가고 싶었어요. 독자들이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앞으로 사서가 되고 싶다고 했다. 평생교육원에서 문헌정보학도 공부 중이다. 전문작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는 아직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헌책방 순회기’ 같은 책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마도 제 삶에서 글쓰기는 일상처럼 지속될 것 같아요.”
● ‘경기 히든작가’ 출간기념회 열려 |
1월 24일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는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수필 15편, 그림동화 15편 등 원고 30편을 책으로 만들어 일반에 선보였다. ⓒ 경기도 아카이브
‘경기도 책 생태계 활성화 사업’ 가운데 하나인 ‘경기 히든작가’ 출간기념회가 1월 24일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열렸다. 출간기념회에서는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수필 15편, 그림동화 15편 등 원고 30편을 책으로 만들어 일반에 선보였다.
지난해 원고 공모 당시 102편의 원고가 접수됐으며, 전문편집자와 기성작가의 심화지도 교육을 거쳐 최종 30편의 출간을 결정했다. 도는 30편의 원고를 각 30부씩 책으로 제작해 작가에게 20부를 전달하고, 나머지 10부는 수원과 동두천에 있는 독립서점 두 곳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경기 히든작가 도서 구입처
온라인 : 부크크(www.bookk.co.kr)
오프라인 : 코너스툴(동두천), 천천히스미는(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