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경기(京畿)’라는 지명이 생긴지 10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경기천년을 맞아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올 초부터 기념 특별전을 열어오고 있는데요, 7월 26일에 시작한 세 번째 기념 특별전이 10월 21일까지 열립니다. 고려시대를 다루고 있는 이번 전시는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라는 제목으로 진행합니다.
전시 제목에 잘 나타나 있듯이, 이번 특별전은 900년 전 고려를 방문했던 외국인의 눈으로 본 고려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외국인은 누구일까요? 바로 ‘서긍’이란 사람인데요, 북송 휘종의 명령으로 고려를 방문한 중국 사절단의 일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려에 사절로 다녀온 후 고려에 관한 정보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견문 보고서의 이름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고 줄여서 ‘고려도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도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기초하여 준비됐습니다. 중국인의 눈에 비춰진 고려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고려가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융합하여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이번 전시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의 바탕이 된 책 <선화봉사고려도경>은 고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세밀하게 기록한 최고의 현존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교화 덕분에 고려가 발달하였다는 중화 중심적 시각은 이 책의 약점으로 꼽힙니다. ⓒ 정영진 기자
“고려는 여러 오랑캐의 나라 가운데서 문물이 발달하고 예의 바른 나라로 불린다.” 서긍은 고려를 다른 이민족과는 달리 정신과 물질문화가 잘 정비된 사회로 보았습니다. 그의 말처럼 고려는 그릇, 복식 등 물품의 품질이 뛰어났고 불교문화도 융성하여 독창적인 문화를 일구었습니다. ⓒ 정영진 기자
서긍은 아름다운 비색을 지닌 고려청자에 감탄했습니다. 고려청자는 12세기경 중국과 북방지역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문양(연꽃, 모란, 학 등)과 시문기법(음각과 양각, 상감과 철화 등)이 시도되며 발전했습니다. 그러다 12세기 중엽부터는 상감기법이 활발하게 적용됐습니다. 상감기법은 문양을 파낸 부분에 다른 색의 흙을 채워 넣는 방식입니다. ⓒ 정영진 기자
“옛날 기록에 여름에도 잠시 밤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잘 익은 밤을 질그릇에 담아서 흙 속에 묻어두면 해가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40여 종에 달하는 그릇의 재질, 규격, 용량, 장식 등을 언급했습니다. 귀족들이 청자를 주로 썼다면, 서민들은 청동그릇과 질그릇을 즐겨 썼다고 합니다. ⓒ 정영진 기자
“도자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래에 만드는 솜씨와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고려도경>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입니다. 서긍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극찬했습니다. 또한 나전, 자수 그림, 청자 잔 받침, 청자 매병 등의 공예품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었는데, 특히 나전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세밀가귀)’라고 말했습니다. ⓒ 정영진 기자
“듣기에 중국 동남쪽의 여러 나라 가운데 고려에 인재가 가장 많다. 고려의 관료 중에서 귀족은 가문의 명망을 서로 높이려고 한다.” 서긍이 본 고려의 귀족사회는 ‘가문의 명망을 중시하는 사회’였습니다. 이자겸으로 대표되는 경원이씨 집안의 족망이 가장 높았는데, 그들은 왕실과 가문간의 혼인으로 세력을 유지했습니다. ⓒ 정영진 기자
“고려의 풍습은 음식을 아끼되 궁실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사절단은 약 한 달간 고려궁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순천관에 머물렀습니다. 원래 왕의 별궁이었던 순천관에 대해 서긍은 규모가 화려하여 왕의 거처를 능가할 정도라고 평가했습니다. ⓒ 정영진 기자
기획전시실 입구에서 ‘고려시대 옷 입어보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흰색 모시 겉옷 ‘백저포’를 즐겨 입었고, 여자와 남자가 쓰는 모자는 각각 ‘몽수’와 ‘복두’로 그 모양이 달랐습니다. ⓒ 정영진 기자
경기 천년을 기념하는 세 번째 특별전으로 열린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당시 고려의 모습을 폭넓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고려 백성들의 생활용품부터 고려궁성, 청자, 장례풍습, 도량형, 화장도구까지 다양하고 자세한 유물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유물을 ‘고려도경’에 나온 소재 및 문장과 연결 지어 전시해 한 편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습니다.
많은 사람이 조선시대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아도 고려시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경기도박물관의 이번 세 번째 기념특별전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는 고려에 대해 많이 알아갈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