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을 하는 몽양 여운형의 모습](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937517142109.jpg)
연설을 하는 몽양 여운형의 모습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올해로 3.1절이 95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3.1운동을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맨 처음 준비한 단체를 조직한 사람은 누구일까?
신한청년당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신한청년당이 3.1운동을 맨 처음 준비한 단체이기 때문이다. 신한청년단이라고도 하는 신한청년당은 일제강점기 시대였던 1918년에 중국 상해에서 설립되었다. 그렇다면 신한청년당의 대표는 누구일까? 바로 몽양 여운형이다.(여운형의 호 몽양은 태양이 떠오르는 꿈을 꾸고 낳았다고 하여 지어진 것이다.)
![파리강화회의 김규식의 글](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575165511.jpg)
파리강화회의 김규식의 글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1918년 11월 몽양 여운형은 신한청년당을 결성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상황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을 조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여운형은 신한청년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우리 민족이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외교를 통해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 했다. 조선 독립에 가장 우호적이었던 러시아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물론 중국의 독립 지도자 쑨원, 마오저뚱, 장제스, 베트남의 민족운동 지도자 호찌민과 친분을 맺으며 동양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양평군 양서면 신원역 뒤쪽에 위치한 몽양기념관에 가면 여운형의 생가와 함께 여운형의 일생과 업적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589283247.jpg)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민족의 큰 스승이자 양심적인 지도자였던 몽양 여운형(1886~1947)의 삶을 올바로 알리고, 뜻을 널리 펼치기 위해 2011년 11월 27일에 개관했다. 생가는 6.25 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양평군민들의 노력으로 2011년 복원되었다.
![가운데에 있는 몽양 여운형의 동상](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587612597.jpg)
가운데에 있는 몽양 여운형의 동상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기념관에 들어서면 전시실 가운데 몽양 여운형 선생의 동상이 보인다.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동상은 인자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주위로 3.1운동 발달의 중심, 민족의 웅변가 등의 큰 제목과 내용이 있다. 그리고, 몽양 여운형이 연설하는 장면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 있어서 흥미를 끈다.
![몽양 여운형에 대한 영상물](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586014759.jpg)
몽양 여운형에 대한 영상물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또 몽양 여운형에 대한 영상물도 상영하기 때문에 더 자세한 활동에 대해 살펴볼 수도 있다.
여운형은 1919년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였고, 3.1운동을 기획 추진하였다. 또, 임시정부 수립에도 참여했고,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또한 <조선중앙일보>를 운영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자진 폐간했다. 1945년에는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해서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한 좌우합작, 남북연합 운동에 힘썼다. 여운형은 1945년 광복 이후 많은 테러를 당해왔다. 그리고 1947년 7월 19일 12번째 테러로 권총 피격을 당해 서거한다.
![서거 당시 몽양 여운형이 입었던 옷](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588418059.jpg)
서거 당시 몽양 여운형이 입었던 옷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몽양 여운형의 장례식 때 60만 명이 흰옷을 입고 온 국민이 슬퍼하였다고 전해진다. 기념관에서는 장례식 때 쓰였던 장례식 만장도 볼 수 있다. 한쪽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과 훈장증을 볼 수 있다. 몽양 여운형에게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2008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몽양 여운형의 장례식 때 쓰였던 장례식 만장과 몽양여운형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581208160.jpg)
몽양 여운형의 장례식 때 쓰였던 장례식 만장과 몽양여운형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전시실을 나오면 <몽양선생과 사진 찍기>라는 코너가 보인다. 총 18종류의 사진 중에 선택하여 몽양 여운형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몽양 여운형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몽양 성생님과 사진 찍기>코너](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607788921.jpg)
몽양 여운형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몽양 성생님과 사진 찍기>코너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몽양기념관 위에는 여운형의 생가와 기념비가 있다. 생가를 올라가는 계단에는 몽양여운형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과 함께 생가를 둘러보면 더 생생한 느낌이 든다.
![몽양 여운형 기념비](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607729195.jpg)
몽양 여운형 기념비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전시관 안내 담당 이성원 씨는“여운형 선생의 묘소는 이곳에 없고 서울 우이동에 있다. 작년에는 몽양역사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4월부터 12월까지 매월 첫째 토요일에 시민강좌를 했다. 또, 답사 프로그램도 있었고, 어린이 몽양 역사교실과 청소년 몽양 역사교실이 진행되었다. 올해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인데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http://www.mongyang.go.kr) 공지사항을 통해 알아보고 전화로 참여 신청을 하면 된다.”고 말하며 기념관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몽양 여운형은 1945년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 지도자’를 묻는 해방 후 첫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남북한 지도자 가운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많은 애를 썼고 가장 존경받는 인기 있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소련은 남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있어 한민족을 하나로 묶을 인물, 즉 통일정부의 첫 국가 원수는 몽양 여운형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한다.
![시대를 앞서간 민족지도자 몽양 여운형 사진전](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03/20140312102545605518160.jpg)
시대를 앞서간 민족지도자 몽양 여운형 사진전 ⓒ 정서원/꿈나무기자단
몽양기념관은 이번 개관 2주년을 맞이하여 <시대를 앞서간 민족지도자 몽양 여운형 사진전>을 기획하였다. 몽양 여운형에 관한 여러 가지 사진들을 전시하는데, 올해 11월까지 전시를 하니 올해 안에 찾아가 보면 좋겠다.
올해 95주년이 되는 3.1절을 맞아, 독립된 조국을 꿈꾸고 통일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몽양 여운형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