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 속도가 정말 빠릅니다. 그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우리가 놓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지난 25일, 의정부에 있는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제4차 테크콘서트가 열렸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서정시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는가.’
‘앞으로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인간인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를 딱 한 가지 꼽았다. 과연 모두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왜 그것이 그리도 소중할까?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알고 싶다면, 정호승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호승 시인은 인간의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며, 우리는 모두 ‘사람의 마음속 사랑을 찾아가는 여행자’라고 말했다. ⓒ 정영진 기자
1. 우리가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하는 가치는 사랑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가치가 있다. 권력, 명예, 신앙, 건강, 정의 등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누구나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다. 돈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므로 돈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그럼 ‘사랑’이란 무엇일까? 정호승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남녀 간, 부부간의 사랑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답게 그가 직접 쓴 ‘여행’이라는 시로 사랑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시의 1행에서 비유했듯, 우리의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하는 곳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속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여행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는 이 시의 3행과 마지막 행에서 사람의 마음을 ‘설산’과 ‘오지’에 비유했다. 즉 사람의 마음속 사랑을 찾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우리는 사랑을 찾아가야 한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또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살 수 있다. 사랑만이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이 시의 5행과 마지막 행에서 그는 ‘사랑을 찾아 떠나서 돌아오지 말라’고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은 인생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로 ‘사랑’을 꼽았다. ⓒ 정영진 기자
2. 진정한 성공은 원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호승 시인만이 사랑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빈민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에르 신부는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라고 말했다. 빌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한 TV쇼에서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 답했다. 세계적으로 부자인 두 사람이 ‘사업 성공’ 혹은 ‘부자가 되는 것’을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밖에도 여러 사례를 들며 정호승 시인은 성공에 대한 통념적 잣대를 버리고 주관적 잣대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주관적 잣대가 바로 ‘사랑’이라고 했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사랑과 고통은 사실 같은 것”이라며 “사랑의 가치를 이해하려면 고통의 가치를 이해하고 고통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영진 기자
3. 사랑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해보자. 부모의 사랑은 무한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우리를 사랑한다. 어느 시점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한다. 또 희생과 책임을 통해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토록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부모의 희생과 책임 덕분이다.
그러나 사랑의 요소에는 위에서 말한 ‘무조건성, 무한성, 희생, 책임’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용서’다. 용서가 사랑을 완성한다. 우리에게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씩은 있다. 정호승 시인은 20년 지기 친구가 돈을 빌리고서 갚지 않아 큰 배신감을 느꼈고 용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용서는 선택이다.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과거를 해방시켜 현재를 치유할 수 있다”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그러나 위 명언들처럼 용서하지 못하면 과거의 고통 속에 갇혀 살게 될 뿐이다. 남과의 관계가 힘이 들 때 미움과 증오를 선택하기보다 용서와 사랑을 선택한다면 과거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의 강연을 주의 깊게 듣고 있는 사람들 ⓒ 정영진 기자
4. 사랑과 고통의 관계
정호승 시인은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깨달으려면 먼저 고통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사랑하기 위해서는 고통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 이전에 고통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당연한 사실이다. 고통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고 말했다. 살면서 실제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온 그의 말이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아침 가스실에 끌려갈 위기에 처했었다.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나치의 만행을 세상의 알리기 위한 것’으로 고통에 대한 의미를 찾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얼굴에 발랐다고 한다. 얼굴에 옅게 피를 바르면 화색이 도는 것처럼 보여 아직 노동력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생각하며 강인하게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에 빅터 프랭클은 결국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집필할 수 있었다.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고통을 잘 견뎌내고 거치고 나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은 고통을 ‘밤하늘’에, 사랑과 행복을 ‘별’에 비유했다. 별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환한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밤이 되어야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보인다. 이처럼 사랑과 행복도 고통을 견뎌내고 나서야 더 소중하고 가치 있어 보이는 법이다.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 TEC콘서트는 격주 토요일 오후 2시마다 열린다. ⓒ 정영진 기자
정호승 시인은 고통 속에서 더 빛나고 견고해지는 사랑을 보여주는 사례로 영화 <더 임파서블>을 소개했다. 2004년 태국을 강타해 무려 30만 명의 사상자를 남긴 쓰나미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항상 곁에 있고 가까이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가족이, 재난을 겪고 가족을 잃는 과정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서로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호승 시인이 보여준 약 5분간의 영화 예고편을 보며 필자를 포함한 많은 청중이 눈물을 훔쳤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과 ‘고통’입니다. 사랑과 고통이라는 재료 없이 인생이라는 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오늘 강연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값진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열린 제4차 TEC콘서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TEC콘서트에 참여한 청중,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이들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