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림이 된 벽> 전시는 프랑스 현대미술가 8명이 전시장에서 직접 창작한 벽화를 선보인다. ⓒ 오서진 기자
경기도 미술관은 2018년 첫 기획전시로 <그림이 된 벽>을 개최한다. 이 전시에서는 프랑스의 현대미술가 8명이 전시장에서 직접 창작한 벽화를 선보인다. 전시는 6월 17일까지 진행되며, 경기도 미술관과 ‘도멘 드 케르게넥’ 미술관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종이와 액자의 한정된 프레임을 넘어 벽과 공간에 창조적인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에밀리 사트르 작가의 <느슨한> 작품은 선들이 서로 엉켜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 오서진 기자
전시관에 들어가면 에밀리 사트르의 <느슨한>이란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9m의 높은 미술관 벽 윗부분을 활용해 작품을 전시했다.
밝고 부드러운 색상의 선들이 서로 엉켜있는 모습을 표현한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이곳 미술관에 와서 실을 늘어뜨리고 그 모습을 즉흥적으로 따라 그린 것이다. 선의 흐름이 시간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뜻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공간 안에서 관람객들이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소망이 깃들어 있다.
제목이 없는 야노스 베르의 작품은 캔버스 천에 선을 그린 뒤 벽에 붙인 점이 특징이다. ⓒ 오서진 기자
<느슨한> 작품 뒤편에는 야노스 베르의 작품이 있다. 제목이 없는 이 작품은 캔버스 천에 선을 그린 뒤 벽에 붙인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즉흥적으로 선을 그은 것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생각나는 것을 선으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즉흥적’과 ‘무의식’은 같은 의미처럼 느껴지지만 작가는 무의식을 통해 수행하는 느낌으로 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찾아봐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올리비에 노틀레 작가의 <단단한 벽, 달콤한 집> 작품은 벽을 하나 더 덧댄 공간에 밝고 선명한 노란색과 흰색의 면들, 검은 선들을 조화롭게 구성해 추상적인 공간을 표현했다. ⓒ 오서진 기자
다음 공간에 전시된 작품은 올리비에 노틀레의 <단단한 벽, 달콤한 집>이다. 이 작품은 별도의 벽을 하나 더 덧대어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밝고 선명한 노란색과 흰색의 면들, 검은 선들이 추상적인 공간을 나타낸다.
이 작품은 특정 공간을 넘어선 연극 무대 같은 곳으로, 관람객들은 상상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와 해석을 만들어내고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
크리스티앙 로피탈 작가의 <마음의 일종-상상> 작품은 흑연을 이용해 기괴하고 기이한 이미지들을 구름과 같은 모양으로 그려냈다. ⓒ 오서진 기자
크리스티앙 로피탈의 <마음의 일종-상상> 작품은 <단단한 벽, 달콤한 집>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분위기가 어둡다. 작가는 흑연만을 이용해 기괴하고 기이한 이미지들을 구름과 같은 모양으로 그려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이 그림은 꿈속에서 흐릿하게 본 것 같은 느낌을 줘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해준다. 익살스럽고도 악마 같은 이미지들은 서로 뒤엉켜서 새로운 형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셸 뒤포르 작가의 <회화를 떠나지 않은 형상: 벽 배치> 작품은 채색된 석고 조각과 종이를 벽에 붙여 작품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 오서진 기자
미셸 뒤포르의 <회화를 떠나지 않은 형상: 벽 배치> 작품은 채색된 석고 조각과 종이를 벽에 붙여 회화 작품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입체 작품에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져 조각이나 조형미술 같은 느낌이 들게 해 폭을 넓힌 회화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클레르 콜랭-콜랭 작가의 이름 없는 작품은 오래된 유화의 갈라진 틈에서 영감을 얻어 벽면에 균열을 냈다. ⓒ 오서진 기자
클레르 콜랭-콜랭의 작품 또한 제목이 따로 없다. 작가는 평면의 회화에서 입체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칠하는 작업을 했다. 오래된 유화의 갈라진 틈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벽면에 균열을 냈다. 벽의 상처로 형상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기법은 원시적인 동굴의 벽화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수아직 스토크비스 작가의 <선형> 작품은 글자, 수학 기호, 하늘에서 본 건물 등 문명과 도시를 의미하는 것들을 선으로 표현했다. ⓒ 오서진 기자
수아직 스토크비스의 <선형>이란 작품은 글자, 수학 기호, 하늘에서 본 건물 등을 연상시키는 것을 선으로 표현했다. 문명과 도시를 의미하는 이 작품은 붓 자국을 남기지 않아 단순하면서도 차갑고 도시적으로 느껴진다. 붉은 색은 동양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크리스티앙 자카르 작가의 <그을음의 악보> 작품은 벽면에 그을음을 남겨 불의 움직임으로 인한 운율과 리듬감을 표현했다. ⓒ 오서진 기자
같은 공간에는 크리스티앙 자카르의 <그을음의 악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회화에 쓰이는 전통적인 재료들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오로지 불이 타오른 자국만 남아 있다. 연소성 젤에 불을 붙여 벽면에 그을음을 남김으로써 원시적이고 자연스러운 작품이 만들어졌다.
동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작품은 연소된 흔적과 그을음으로 가득해 불의 움직임으로 인한 운율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가로 50m, 높이 9m의 큰 공간에 자신의 작품을 채울 수 있는 점에 매력을 느꼈고, 미술관 측에서 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주어 한국을 흔쾌히 방문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사진·영상 작가 일레 사르칸튜가 <선형> 작품을 제작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 오서진 기자
벽화는 전시가 끝나면 하얀 페인트로 덮어져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누구도 소장할 수 없고 작가에게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사진·영상 작가 일레 사르칸튜가 전시 작품을 준비하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다양한 벽화로 공간 자체를 예술로 만들어낸 <그림이 된 벽> 전시를 관람하며 회화 작품의 일부가 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