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논쟁이 뜨겁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사라지는 일자리 문제와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해소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경기도는 오는 29~30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기본소득 공론의 장 ‘2019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를 연다. 이에 [경기뉴스광장]은 기본소득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인 강남훈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만나 기본소득이 가져올 삶의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기본소득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인 강남훈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기본소득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로 실패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 생태계 조성을 꼽았다.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석유자원의 투자수익금을 재원으로 매년 영구배당기금(APF)이라는 기본소득을 알래스카에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지급하고 있다.
연간 약 35만 원으로 시작한 배당금은 2015년 230만 원까지 늘어나며, 알래스카 주민들이 생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기본소득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알래스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빈곤율이 낮으면서, 경제적으로 평등한 지역으로 꼽힌다.
■ “소수의 탐욕을 이기기 위해 다수의 탐욕 일깨워”
“당시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석유자원 수익 가운데 제이 해먼드 당시 주지사가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운용하기 위해 사용한 금액은 전체의 200분의 1에 불과했어요. 나머지 석유자금 수익금은 대다수의 정치인들에 의해 토건사업 등 소수를 위한 땅값 올리는 정책으로 사라졌죠.”
기본소득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인 강남훈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그는 미국 알래스카 기본소득인 ‘영구배당기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소수의 탐욕을 이기기 위해 다수의 탐욕을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강남훈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미국 알래스카 ‘영구배당기금’이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로 “소수의 탐욕을 이기기 위해 다수의 탐욕을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강남훈 위원장은 “당시 해먼드 주지사는 ‘석유자원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을 위해 영원히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에 수익금의 200분의 1에 해당하는 재원을 운용해 그 수익을 알래스카 주민들이 동등하게 나누는 ‘영구배당기금’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된 알래스카 영구배당기금은 현재 원금은 고스란히 남겨둔 채 운용수익만을 배분하며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강 위원장은 “기본소득은 단순히 정부가 나눠주는 공짜 돈이 아니다”며 “토지와 환경, 지식 등 공공의 자산으로 인해 발생한 공동의 이익을 소수의 누군가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동등하게 나눠 갖는 것. 즉, 다수가 누려야 할 당당한 권리”라고 밝혔다.
■ 시대 변화에 따른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
“기본소득은 등장한 지 오래된 사상이에요. 이 기본소득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시대가 변하면서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과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죠.”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자산심사 혹은 노동의 요구 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다. 강 위원장은 최근 기본소득이 주목받는 이유로 시대의 변화를 꼽았다.
시대의 변화로 기존의 복지 시스템이 한계에 직면하게 되면서,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게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강 위원장은 “기존 복지 선진 국가들이 설계한 전통적 복지 시스템은 정규직 완전 고용이 원칙이었다”며 “국민의 95%가 직업이 있다는 가정하에 설계된 이 시스템은 지난 수십 년간 잘 작동됐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대가 변하기 시작했다”며 “자동화 물결 속에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완전 고용을 가정한 기존의 복지 시스템이 맞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인구의 1~3%를 실업자로 가정해 만든 기존 복지 제도는 인구의 10%가 실업자인 현시대 상황에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것이다.
강남훈 위원장은 “기본소득은 토지와 대기, 정보 등 공공의 자산으로 인해 발생한 공동의 이익을 소수의 누군가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동등하게 나눠 갖는 것”이라고 밝혔다.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 실패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혁신 생태계의 마중물
기존 전통적 복지 정책과 기본소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직업의 유무, 소득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지급된다는 것이다. 이는 점점 일자리가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강 위원장은 “앞으로 물건 만드는 일은 로봇이 하는 시대가 됐다. 미래사회로 갈수록 일자리는 부족해지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진다”며 “결국 부를 가진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살아가기 위해선 돈에 상관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돈을 벌기 위해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를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돈에 상관없이 각자 자신이 가진 강점을 살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바로 기본소득의 역할인 셈이다.
강 위원장은 “예를 들어 과거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해야 했다면, 기본소득이 있는 세상에선 돈벌이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서 도전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생긴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 기본소득이 가져 올 세상의 가장 큰 변화”라고 꼬집었다.
즉, 사회에 이제 막 발을 내딛은 청년들이 돈벌이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도전하다 보면 곧 새로운 경제를 이끄는 혁신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강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기본소득은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도전자 중 1명만 성공해도 몇백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가 나올 수 있다. 두 번, 세 번 도전할 수 있는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전기자동차기업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혁신 기업가들은 기본소득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민선7기 경기도는 국민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를 위해 다양한 기본소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 경기도청
■ 국민 대다수가 수혜자…증세 설득이 관건
“기본소득 정책은 기본소득과 기본소득세가 함께 추진돼야 가능해요. 토건사업을 절약해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려면 증세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기본소득을 추진하기 위해선 증세가 필수다. 이로 인한 증세 저항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강 위원장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인구 5,000만 명을 대상으로 1인당 월 3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주기 위해선 1년에 360만 원, 180조 원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의 올해 GDP가 1,800조 원 정도 되니깐 모든 소득의 10%를 기본소득세로 걷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4인 가족은 월 12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받게 된다. 최저 생계비에는 약간 부족하지만, 추가 소득이 있어도 받을 수 있는 만큼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특히, 이 기본소득은 소수의 고소득자를 제외한 국민의 대다수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는 게 강 위원장의 분석이다.
예를 들어, 총소득이 1억 원인 3인 가구의 경우 기본소득세로 소득의 10%인 1,000만원을 내고 1년에 기본소득으로 1,080만 원을 돌려받게 된다. 세금을 제외하고도 80만 원이 이득인 셈이다.
강 위원장은 “1년에 총소득이 1억 원 이상인 가구도 결국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결국 국민의 대다수가 본인이 내는 것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수혜자”라며 “믿어지지 않는 계산이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계산에는 부동산 소득과 주식 소득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런 것을 다 포함하면 근로소득자는 5% 정도만 증세해도 기본소득 추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기본소득 정책지원 자문기구인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를 출범했다. ⓒ 경기도청
■ 경기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중요한 이유
“지방정부에 약간의 과세재량권이 주어진다면 기본소득 논의는 더 빨라질 수 있어요. 세금을 낮추고 복지를 줄인 지자체와 세금을 늘리고 복지를 확대한 지자체 간 경쟁이 이뤄지고, 인구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복지의 확산 여부를 결정하면 됩니다.”
강 위원장은 기본소득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위해 청년기본소득, 지역화폐, 농민수당 등 현재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기본소득 정책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도의 결과에 따라 기본소득이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될지 결정될 것”이라며 “또 정부는 각 지자체별 지니계수 등 통계를 통해 정책 시행 결과를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강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출범한 전국 최초 기본소득 정책지원 자문기구인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에 대해서 “경기도에 기본소득이 잘 정착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며 “정책자문과 홍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게 주 업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08년 기본소득을 접한 후 지난 10년 동안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다. 확실히 10년 전과 비교해 기본소득에 대한 분위기는 좋아졌다”며 “이제는 더 많은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야 할 때다. 경기도의 역할이 크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강 위원장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이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기본소득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새로운 도전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경기도는 기본소득의 다양한 정책을 체험하고 개념을 전달하는 장인 ‘2019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를 오는 29~30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다.
경기도는 기본소득의 다양한 정책을 체험하고 개념을 전달하는 장인 ‘2019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를 오는 29~30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다. ⓒ 경기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