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살롱]은 일상이 바빠 제대로 문화예술을 향유하지 못하는 도민들에게 간접체험의 기회를 드리고자 경기G뉴스가 마련한 기획시리즈입니다. 도내 각종 전시회·발표회·음악회 소식을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편집자 주]
여주시 여주박물관 여마관(신관) 1층 로비전시홀에서 오는 3월 25일까지 열리는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신 100년만의 귀향’ 특별전을 한 관람객이 전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보물 제6호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의 ‘비신’(碑身: 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 유물이 100년 만에 고향, 여주시로 돌아왔다. 2016년의 일이다.
그해, 여주박물관 신관 여마관이 건립됐다. 검정색 큐브 모양의 건축물은 검은 바윗돌을 연상케 한다. 여마관 1층 로비의 통유리창에서 바라보면, 유려한 풍경의 남한강이 눈에 들어온다.
남한강 너머로 산 위에 세워진 영월루(경기도문화재 제 37호)가 보일 것이다. 그 아래 위치한 절벽에 관련된 ‘마암’(馬巖 : 검은 말과 누런 말이 나타난 설화) 전설에서 따서 ‘여마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에 박물관 구관은 ‘황마관’이라고 다시 이름을 붙였다.
특히 이 건축물은 지난 2017년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경기도 건축문화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원종대사탑비 복원을 위한 노력, 한자리에 선보여
여주시 여주박물관 여마관(신관) 1층 로비전시홀에서 오는 3월 25일까지 열리는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신 100년만의 귀향’ 특별展. 여마관에 전시돼 있는 보물 제6호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의 비신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여주박물관이 신관(여마관)을 건립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원종대사탑비는 고려 원종대사(元宗大師) 찬유(璨幽:869~958년)를 기리기 위해 975년(고려 광종 26년)에 세운 탑비이다. 찬유는 고려 초에 국사(國師) 예우를 받은 승려이다. 고려 왕실의 후원으로 고달사가 융성했고, 원종대사탑비가 건립됐다.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관광지 내에 위치한 여주박물관을 찾았던 6일, 오전 11시 기준 기온은 –10℃. 강추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을 찾아오는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여주박물관 박보경 학예연구실장이 원종대사탑비의 비신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이날 여주박물관 박보경 학예연구실장은 “원종대사탑비의 비신은 1915년 바람에 의해 쓰러져 파손된 후, 서울 경복궁 회랑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여주시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원종대사탑비 복원사업을 추진해 2014년 8월 원종대사탑비 비신 복제 및 복원공사를 완료했다”고 소개했다.
박보경 실장은 이어 “2016년 7월 원종대사탑비 비신이 여주박물관 신관(여마관)으로 이전돼 전시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이 기획하게 된 자리”라며 “하나의 비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경기도와 여주시,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등 수많은 관계기관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탑비 비신을 받쳤던 귀부(받침돌), 이수(용머리를 새긴 머릿돌) 등으로 구성됐다.
앞서 지난 1963년 1월 21일 귀부와 이수가 대한민국의 보물 제6호로 지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에 있던 비신이 여주박물관으로 이전(2016년 7월)되고서 2016년 12월 15일에 보물로 추가 지정됐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문은 왕명으로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장단열(張端說)이 전액(篆額 : 전자로 쓴 비갈이나 현판의 제액)을 쓰고, 각자(刻字)는 이정순(李貞順)이 했다고 한다. ⓒ 경기G뉴스 고정현
전시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걸린 ‘고달사지 원대사탑비’로, 1:1 비율의 실사 스캔본이었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291cm, 너비 162cm, 폭 31cm. 그 아래에는 깨어진 비신이 눕혀져 전시되고 있었다. 탑비의 총 높이는 508㎝.
비문은 왕명으로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장단열(張端說)이 전액(篆額 : 전자로 쓴 비갈이나 현판의 제액)을 쓰고, 각자(刻字)는 이정순(李貞順)이 했다고 한다.
박 실장에 따르면, 이 탑비는 고려 불교미술의 웅장함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여주시 여주박물관은 2010년부터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업무협의로 원종대사탑비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보존 처리하기 위해 2010년 11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달사지 현장에는 비신을 복제 및 탑비를 복원하고, 원 비신은 박물관 실내에 전시하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날 로비전시홀에선 원종대사탑비의 미술사·서예사적 의의를 비롯해 비문의 원문 내용 해석, 고달사지의 옛 사진과 복원과정 등 원종대사탑비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 등에 관한 패널 전시물, 원종대사탑(보물 제7호)의 사천왕상, 비천상 탁본 등도 볼 수 있었다.
전시에선 원종대사탑비의 미술사·서예사적 의의를 비롯해 비문의 원문 내용 해석, 고달사지의 옛 사진과 복원과정 등 원종대사탑비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 등에 관한 패널 전시물, 원종대사탑(보물 제7호)의 사천왕상, 비천상 탁본 등을 선보이고 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원종대사탑비의 학술적 의의를 살펴보면?
먼저, 미술사인 가치는 거북이에서 용으로 변한 귀부·거대한 규모·뛰어난 조각수법 등을 엿볼 수 있으며, 사료적인 측면에선 고려초 왕실과의 관계인 태조·혜종·정종·광종으로부터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원종대사, 원종대사 사후 광종이 3대 부동선원이 법통을 잇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서예사적인 가치도 강조된다. 통일신라시대의 굳센 기운을 갖춘 ‘구양순’체 유행과 더불어 고려시대 10세기 후반의 부드럽고 수려한 ‘우세남’의 서체가 조금씩 가미됐다. 고려시대 서학박사 장단열이 쓴 원종대사탑비는 이러한 서풍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본만 여주박물관장은 “이번 전시의 큰 주제는 원종대사 탑비를 복원하게 된 과정을 비롯해 원 비신을 국립 중앙박물관으로부터 받아와서 2016년에 전시하게 된 과정이다. 이같은 중요한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전시”라며 “연일 강추위가 지속되는 요즘, 여주의 아름다움과 역사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전시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관람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1997년 여주군 향토사료관으로 문을 연 여주박물관은 지난 2010년 제1종 박물관(전문) ‘여주박물관’으로 변경등록하고, 2016년 신관 여마관을 개관했다. ⓒ 경기G뉴스 고정현
한편, 1997년 여주군 향토사료관으로 문을 연 여주박물관은 지난 2010년 제1종 박물관(전문) ‘여주박물관’으로 변경등록하고, 2016년 신관 여마관을 개관했다.
특히 여주의 역사, 민속자료 등을 조사·수집·전시·교육하고, 새로운 학습 자료를 발굴하며 여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관람안내
월요일 휴무(1월 1일 , 설/추석 당일 휴관)
매일 09:00~17:00
관람료: 무료
주소: 경기 여주시 신륵사길 6-12(지번 천송동 545-1 여주박물관)
전화: 031-887-3583
홈페이지: http://www.yeoju.go.kr/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