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작나무’가 생산한 경기도 관련 공예품.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캐릭터가 눈에 띈다. ⓒ 허필은 기자
최근 사회적 기업을 필두로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경제기업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회적경제는 과거 성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와 복지 및 분배에 초점을 맞추는 케인즈주의의 이분법적 대립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다.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은 성장과 복지 중 하나만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공생, 공유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을 펼친다.
이러한 탈자본주의적 성격을 띤 새로운 사회 모델은 기존의 경제학만이 적용되었던 시장과 달리 사회학, 심리학, 철학, 사회복지학 등 여타의 분야가 결합돼 통섭적 형태를 나타낸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장구조에 적응하기 위해 이윤창출의 극대화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편재된 경제학의 고질적인 틀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회적경제기업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이 존재한다. 민간의 자생적 성장과 주도가 이루어지는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선진국과 달리,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의 타율적 경제구도가 형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도 정부가 전략적으로 사회적경제기업을 육성하기는 하나,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아래에서 육성 사업을 펼친다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주체적인 경영이 아닌 정부 주도의 육성이 이루어지다보니 사회적경제가 경제 체제의 완전한 대안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 ‘사회적경제 활성화 워크숍’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진행된 ‘사회적경제 활성화 워크숍’. ⓒ 허필은 기자
사회적경제가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 지난 22~23일 이틀간 ‘사회적경제 활성화 워크숍’이 진행됐다.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열린 이번 워크숍은 도 및 시군 지자체와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기업 및 관련기관이 참여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 워크숍’은 지자체와 경기도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사회적경제기업 간의 사회적경제 육성과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자리다. 더불어 이번 워크숍을 통해 사회적경제기업을 홍보하고 기업의 상품이 원활하게 판매될 수 있도록 판로를 개척하려는 목적도 있어 사회적경제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전망이다. 또한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사회적경제와 관련한 특강을 개최하는 등 사회적경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개회식에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강득구 경기도의회 의장, 김보라 경기도의회 의원, 채인석 화성시장 등 지자체 관계자들과 박명분 경기도마을기업협회장을 비롯한 사회적경제기업인 등 총 350여 명이 참석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해결책으로서의 사회적경제” 한 목소리
사회적경제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격려사를 전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 허필은 기자
이날 격려사와 축사에서 남 지사, 강 의장, 채 시장은 한 목소리로 사회적경제의 의의에 대해 입을 모았다. 남 지사는 “척박한 환경에 사회적경제 씨앗을 뿌려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격려사를 전하며 “전국의 15%를 차지하는 경기도 사회적경제기업은 아직 미숙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경제기업의 양적, 질적 변화와 발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해 사회적경제가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남 지사에 따르면 미래 문제는 공동체 해체로 인한 개인의 불안에 기인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 지사는 사회적경제를 예로 들며 “따듯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경제가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지속가능한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남 지사는 “경기도가 사회적경제 허브란 말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강 의장 또한 소통과 상생이 시대적 요구라고 밝히면서 “공유라는 가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해답이다”라고 말해 사회적경제기업의 공유 가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채 시장은 남 지사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효율 및 성과 중심의 성장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경제가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것이다”라고 말해 남 지사와 맥락을 같이 했다. 남 지사와 강 의장, 채 시장 모두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경제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꿈꾸는 자작나무’로부터 공예품을 전달받고 있다. ⓒ 허필은 기자
개회식 이후 ‘경기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토크콘서트’를 준비하는 동안 남 지사에게 특별한 선물이 전해졌다. 광명시 이주여성과 경력단절 여성들의 마을기업인 꿈꾸는 자작나무 공방에서 기념품을 증정한 것이다. 남 지사의 캐릭터가 새겨진 공예품에 남 지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즐거운 반응을 보였다.
사회적경제의 성장을 위한 특별한 아고라
사회적경제기업인들과의 토론 시간인 ‘경기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토크콘서트’. ⓒ 허필은 기자
이어서 진행된 ‘경기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토크콘서트’에는 남 지사와 김 의원 외에도 최민경 사회적경제연대회의 운영위원회장, 한희주 경기도마을기업협회부회장 등 6명의 패널이 참석했다. 사회적경제의 성장과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일종의 아고라가 펼쳐진 것이다. 토크콘서트는 패널 간의 상호질문과 답변, 청중과의 문답 형식으로 진행됐다.
남 지사는 토크콘서트에서도 시종일관 사회적경제기업의 중대한 역할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경기도의 사회적경제기업 관련 행정에 대한 질문에 남 지사는 “올해 국민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이었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에 정부와 기업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사회적경제기업은 이 차이를 완전하게 극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남 지사에 이어 “도정의 행정이 현장 업무와 괴리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둘 사이의 일관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경제기업의 규모와 판로 개척에 관련해서도 논의가 펼쳐졌다.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해 남 지사는 “네이버와 함께 사회적경제기업의 제품을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총 400억 원을 지원하는 ‘넥스트경기 창조오디션’ 본선이 29일 열린다”고 말하며 경기도의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정책을 소개했다.
경기도가 지원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끌었다면, 사회적경제기업인들은 더욱 섬세하게 지원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해달라는 물음에 한 부회장은 “컨설팅 외에도 디자인과 같은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청중에게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는 시간도 마련됐다. 발언권을 얻은 사회적경제기업인들은 남 지사에게 기업을 소개하거나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사회적경제 활성화 워크숍’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허필은 기자
‘경기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토크콘서트’ 이후에는 ‘2015 사회적경제기업 육성추진방향’에 대한 소개와 사회적경제기업 제품 홍보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특히 복지행정학 박사이자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전문육성위원인 정무성 교수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론적 소개와 지역밀착형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한 특강을 펼쳐졌다. 사회적경제기업인들은 정 교수의 특강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시·군별 분임토의 이후에는 우수사회적경제기업 우수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우수사례로 선정된 기관은 광명시 일자리창출과와 한국천연쪽협동조합 두 곳이었다. 광명시 일자리창출과는 성공적인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조성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한 한국천연쪽협동조합은 쪽(인디고 색소를 함유하고 있는 식물의 총칭)을 활용한 우수 의류 제품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한 바가 두드러졌다.
마지막 날인 23일에는 전날 진행됐던 분임토의의 결과를 발표한 후, 경기도의 주요시책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적경제기업인들의 네트워크 플랫폼인 통합정보시스템 이용제도를 비롯해, 공공기관이 제품을 구매할 때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인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담보력이 부족한 사회적경제기업인들에게 원활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사회적경제 자금 특례보증 제도까지 다양한 경기도의 시책이 사회적경제기업인들에게 알려졌다. 사회적경제기업 제품 홍보를 끝으로 ‘사회적경제 활성화 워크숍’은 마무리됐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자체적 운영을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할 때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보다 일반적인 제품 위주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어 사회적경제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허필은 기자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워크숍이 성황리에 마무리됐지만, 아직까지 사회적경제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궁무진하다. 사회적경제기업은 각각의 문제점을 떠안고 있는데, 먼저 사회적기업의 경우 전체의 65%가 일자리 창출 중심에 편중되어 있다. 또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경우 획기적인 아이템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사회 변화임에도 아직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기업은 사회를 변화시키기에는 힘이 충분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사회적경제기업은 사회 변화는커녕 기업의 경영까지 정부에 의존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경기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토크콘서트’에서 기업인들의 발화가 정책적인 토론보다 지원 요청에 무게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회적경제기업은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전제되어야 겨우 파산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정부의 지원이 질적 성장이 아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양적 확대를 중심으로 배치되다보니 사회적경제기업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회 공헌이 시작되면 사회적경제기업은 사라진다는 전망 또한 위의 이유에 기인한다.
결국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자체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 교수가 특강에서 강조했듯이 정책 아젠다가 아닌, 실질적 대안으로서 현장 중심의 사회적경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이를 위해 정부의 뒷받침은 필수적이겠지만 정부의 역할은 양적인 지원이 아닌,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그것이 성공적인 경영으로 이어지는 환경 조성에 치중해야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그의 유명한 소설 <데미안>에서 위대한 명언을 남겼다. 주인공 싱클레어와 같이 미성숙한 인간이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즉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가두는 자신만의 세계를 깨고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뜻이다.
헤르만 헤세는 인간을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소설을 남겼지만 이는 비단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새를 사회적경제기업, 알을 현재 사회적경제기업의 상황이라고 대치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사회적경제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사회적경제기업들은 모두 나름대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알을 깰 힘이 부족하다. 알을 깨기 위해서는 알을 깰만한 힘을 기르는 환경이 초석이 되어야 하는데, 새는 사람에게 알을 깨달라고 요청하고 사람은 알을 너무 일찍 깨버리려고 노력한다.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사회적경제기업은 존립 위기를 맞이할 위험성이 농후한 것이다.
2016년 도내 사회적경제기업의 수는 사회적기업 580개, 마을기업 268개, 협동조합 1673개 등 총 2521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사회적경제 시장은 활성화되고 사회 변화 또한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겠지만, 사회적경제 발전의 성공 여부는 기업의 자체적인 운영 능력 확보에 달렸다. 사회적경제기업이 양적으로 확대되는 만큼 질적인 성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