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쏙쏙 꽂히는 사투리가 인상적인 박진경(37) 씨는 귀여운 두 아이의 엄마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다 남편의 이동 발령으로 4년 전 경기도 의왕시로 이사를 왔고 현재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살고 있다. 지인도,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막막해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경기도를 200% 즐길 줄 아는 완벽한 경기도민이 됐다. 친한 이웃들도 많이 만들었다.
“창원과 전혀 다른 도시 분위기에 처음에는 정이 가지 않았어요. 전에 살던 곳은 안 그랬는데 여기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삐딱한 시각으로 보면 평생 정을 붙이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보자고.” 그렇게 긍정적인 시각으로 경기도를 바라보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은 면모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대 광역자치 단체답게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할 수 있고 정보도 다양했다.
"요즘은 북유럽풍이 유행이잖아요. 그런데 인테리어 잡지 등에 나오는 북유럽풍은 너무 획일화된 것 같아 재미가 없어요. 저는 저만의 개성을 가득 담은 북유럽풍으로 완성하고 싶어요. 제 스타일요? 북유럽과 프로방스를 적당히 접목시키려고 해요."
1979년 양띠 박진경 씨 ⓒ 신승희 기자
육아와 살림에 관심 많은 ‘나는 엄마다’
결혼과 출산으로 전업주부가 된 그는 자연스레 육아와 살림 등이 가장 큰 관심사다. 특히 집 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인테리어 전문 블로그나 잡지 등을 찾아보며 감각을 키운다. “요즘은 북유럽풍이 유행이잖아요. 그런데 인테리어 잡지 등에 나오는 북유럽풍은 너무 획일화된 것 같아 재미가 없어요. 저는 저만의 개성을 가득 담은 북유럽풍으로 완성하고 싶어요. 제 스타일요? 북유럽과 프로방스를 적당히 접목시키려고 해요.”(웃음)
꿈은 크지만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정작 집 안 꾸미기에 공 들일 시간은 부족한 편이다. 현재 그녀의 집 안 인테리어 완성율은 40% 수준이라고. 최근에는 이웃의 재능기부를 통해 옷 만들기도 배우기 시작했다. 서툰 솜씨지만 직접 패턴을 그리고 재단, 박음질을 해가며 아이들과 본인의 옷을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만 해도 10여 벌.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천, 실 등으로 집 안은 엉망이 됐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엄마표 핸드메이드 옷을 볼 때마다 뿌듯함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해 집에서 막 입기 좋은 옷밖에 못 만들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엔 남편 옷도 만들어줘야죠.”(웃음)
1979년 양띠 박진경 씨 ⓒ 신승희 기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 못 줘 미안해
아이 둘 키우랴 살림하랴 남편 내조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그녀지만 2014년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아쉬운 점도 남는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세월호 참사가 정말 가슴 아팠고 아쉬운 점으로 기억에 남아요. 사고 처리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에 답답함을 느꼈고 솔직히 정부에 대한 불신도 좀 생겼어요. 개인적인 아쉬움은 아이들에게 좀 더 애정을 쏟지 못한 점이다.
“올해 이사를 하고 집 안 정리와 살림을 병행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 했어요. 특히 큰 아이는 동생이 생기면서 엄마를 빼앗겼다는 박탈감 때문인지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더 많이 사랑해주고 돌봐줬어야 하는데 엄마로서 그게 가장 미안하고 아쉽죠.”
"올해 이사를 하고 집 안 정리와 살림을 병행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 했어요. 특히 큰 아이는 동생이 생기면서 엄마를 빼앗겼다는 박탈감 때문인지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더 많이 사랑해주고 돌봐줬어야 하는데 엄마로서 그게 가장 미안하고 아쉽죠."
가족의 행복, 남편 승진 소망
그래서 박진경 씨의 새해 가장 큰 소망은 가정의 행복이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어려서 가족여행이나 나들이가 어려웠지만 새해엔 여행도 많이 다니고 가족과의 추억도 잔뜩 쌓을 거예요. 아이들에게 애정표현도 듬뿍 해주고요.” 가정의 행복에 욕심을 하나 더한다면 남편의 승진이라고 살짝 귀띔도 했다. 사회에 바라는 점은 더 이상 강력 사건사고나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것이다. “더 이상 뉴스에서 인재가 빚은 참극이라는 소리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강력 사건사고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도 끝이었으면 해요.”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된 경기도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과 바라는 점도 있다. 드문드문이더라도 24시간 운행되는 시내버스가 생겼으면 하는 것이다. “요즘은 택시 타기도 불안한 시대라고 하잖아요. 서울에는 24 시간 시내버스가 있다고 하던데, 안심하고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인 버스가 경기도에서도 24시간 운행됐으면 좋겠어요. 아 참! 건물마다 어지럽게 널린 간판들을 정비해서 도시미관을 개선하고 공원조성을 통해 녹지율도 높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