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내로서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순종하며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을 주부의 미덕으로 삼는다. 서영숙(61,안산시 상록구) 씨도 그런 줄로만 철석같이 믿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저 먼 미국 땅에서 12년 정도를 살았어요. 음식도, 문화도 맞지 않은 타국에서 그 긴 시간을 지낸다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죠. 오로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내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어머니의 숙명이라고 믿었어요.”
또 한때는 일식당을 운영하며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식당 대표라는 무거운 책임까지 동시에 떠안아야 했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 내 가족과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지금의 이 고통과 수고는 먼 훗날 달콤한 열매가 되어 돌아오리라 굳게 믿었다.
"위암은 수술을 했다고 완치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2012년 수술을 한 후 꾸준히 경과를 지켜보고 또 치료를 병행하느라 힘든 시간이 계속됐어요. 재발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한몫했고요."
열심히 산 엄마, 아내에게 암 선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위암 선고가 떨어졌다. 그저 열심히 희생하며 살았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지독한 암 덩어리였다. 세상이 야속했다. 그렇게 위암 수술을 받고 2년여가 흐른 지금에야 그녀는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있다.
“위암은 수술을 했다고 완치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2012년 수술을 한 후 꾸준히 경과를 지켜보고 또 치료를 병행하느라 힘든 시간이 계속됐어요. 재발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한몫했고요.”
2014년은 특히나 그녀에게 힘들고 아픈 한 해로 기억된다. 본인의 건강도 안 좋은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안산시 전체가 슬픔에 잠겼기 때문이다. “자식 다 키워놓은 저도 뉴스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지는데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떻겠어요.” 서 씨는 목멘 목소리로 그때의 심정을 전했다.
1955년 양띠 서영숙 씨 ⓒ 강현욱 기자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안산… 남편 사업 어려움으로 이어져
단순히 몸이 아프고 지역사회 분위기가 슬픔에 잠겨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다. 세월호는 남편의 사업에도 타격을 안겼다. 소비가 줄면서 차량의 이동이나 화물적재가 감소한 탓에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의 사업체는 적자가 계속됐다.
“제 병원비로 들어가는 돈도 많은데 남편 사업까지 어려워지니 그땐 정말 절망스러웠어요. 건강도 잃고 돈도 잃는구나 싶었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안산시도 세월호의 슬픔 속에서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이 서 씨에게 마냥 슬픔과 우울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반갑고 기쁜 소식도 있었다. 그녀에게 ‘할머니’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생긴 것이다. “둘째 딸이 손녀를 낳았어요. 휴대전화 너머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고 있지만 얼마나 귀엽고 똘똘하게 생겼는지 몰라요. 손녀딸 덕분에 더 희망이 생겼어요.”
1955년 양띠 서영숙 씨 ⓒ 강현욱 기자
되찾은 건강으로 누리는 제2의 삶, 하고픈 일 많아
오랜 절망 끝에 희망을 다시 찾은 그녀의 새해 소망은 참 다양했다.
“일단 건강해야죠. 그리고 그동안 잃은 것들을 만회하려면 돈도 많이 벌어야겠죠? 남편 사업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아프면서 다시 한 번 깨달은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그간 아프다는 이유로 소홀했던 가족에게도 더 잘하고 싶다.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이렇게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거예요. 남편과 딸이 정말 지극정성으로 저를 간호하고 돌봐줬어요. 남편은 아무리 바빠도 병원까지 동행해줬고 딸은 식사 준비나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 했죠.”
4년 전 결혼과 함께 미국에 신혼살림을 차린 둘째 딸네도 방문하고 싶다. 손녀딸을 더 이상 휴대전화 너머로만 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큰 그녀다. 한창 둘째 딸과 손녀 자랑에 열을 올리던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둘째 딸은 진작 결혼해서 예쁜 딸까지 낳고 사는데 정작 큰딸이 결혼을 안 해서 걱정이에요. 그동안 제 병수발 드느라 고생했을 테니 새해에는 큰딸도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 좀 갔으면 좋겠어요.” 목소리에서 강경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소원이 이어졌다. “엄마로, 아내로 지금까지 살았으니 이제는 나 자신을 찾고 내 행복을 위해서도 살고 싶어요. 수영이나 공예처럼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취미생활도 갖고 싶어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고요.”
"둘째 딸은 진작 결혼해서 예쁜 딸까지 낳고 사는데 정작 큰 딸이 결혼을 안해서 걱정이에요. 그동안 제 병수발 드느라 고생했을테니 새해에는 큰 딸도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 좀 갔으면 좋겠어요."
경기도민 결속력 다지는 지원 기대해
어렵게 건강을 되찾고 두 번째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그이기에 이루고 싶은 일도, 바라는 것도 많으리라. 그런 그녀가 경기도에 바라는 점은 없을까?
“정기적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국립암센터를 방문해요. 한 달에 한 번 갈 때도 있고 세 달에 한 번 가기도 하는데, 같은 경기도면서도 대중교통편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자가용 없이는 가기 힘든 상황이에요. 그래서 안산과 고양은 전혀 다른 도시, 단절된 곳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실제로 경기도 안산에서 국립암센터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과 버스 등을 최소 3번 이상 환승해야 하고, 소요시간이 2시간 30분에서 막히면 3시간까지도 걸리는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안산터미널에서 고양까지 가는 시외버스 노선이 많이 늘었더라고요. 하지만 경기도민의 화합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지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