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정리나 주무관 ⓒ 신승희 기자
인기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 에 출연하는 달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숙련된 기술에 입이 떡벌어진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한 분야에 종사하며 전문가를 넘어 장인이 된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달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방행정분야, 그러니까 쉽게 공무원 중에도 달인이 있단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12월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회 지방행정의 달인’ 시상식을 열고 15명에게 표창과 인증패를 수여했다.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는 지방행정분야의 달인, 그중에서도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기도 부천시 정리나 주무관(46·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 파견)에게서 달인의 비결을 들어보았다.
‘지방행정의 달인’이라는 명칭이 생소하고도 재미있습니다.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더니 가장 먼저 나온반응은 “개그맨 김병만이 뭐 어쨌다고?”였어요.(웃음) 지방행정의 달인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지방공무원의 사기진작과 바람직한 공직자상 정립을 위해 행정자치부가 올해로 4회째 개최하는 시상식인데요. 올해는 전국에서 총 88명이 후보로 올라왔고 1차 서면심사와 현지실사를 통해 22명으로 압축됐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동영상, 사진, 기술·파워포인트(PPT) 시연 등을 통해 후보자 개인 실적과 전문성을 가늠하는 실기형 면접(7분)을 치르고 10~20분에 달하는 그룹별 심층면접을 거친 후에야 최종 수상자 15명이 결정됐죠.
15명의 지방행정의 달인 중 1등 격인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게 됐는데 유명세를 느끼시나요?
예전에는 인터넷에 제 이름을 쳐보면 ‘요점정리나 예상문제’, ‘집 안 정리나 좀 하고 살지’ 등의 글들이 상단에 떴어요. 그런데 요즘엔 제 관련 기사가 상단에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유명인사라고 치켜세울 때면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공무원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에서 저보다 10살이나 많은 늦깎이 대학생에게 필(?)이 꽂혀 결혼을 결심했는데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어요. 우여곡절 끝에 포기에 가까운 허락을 받고 결혼에 성공했지만 생활이 말도 못하게 어려웠어요.
임신 2개월에 접어들었을 땐 결혼반지를 팔아 쌀을 사는 최악의 상황까지 닥쳤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하루 종일 혼자 심심할 테니 올해는 경험 삼아 공부해보고 내년에 정식 도전하라며 공무원시험 교재를 들고 왔어요. 남편은 ‘경험 삼아’라고 말했지만 전 이를 악물고 60일간 집에서 책만 봤어요. 그리고 임신 6개월째인 1991년 12월 31일, 살던 동네 동사무소로 발령을 받았죠.
경기도 부천시 공무원이면서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 파견 근무 중이시죠? 특별사법경찰이라는 용어가 낯선데요.
특별사법경찰은 경찰 수사권이 미치기 어려운 분야를 일반직 공무원이 수사할 수 있도록 전문지식을 갖춘 행정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제도인데요. 현재 중앙에 1만 명, 지방에 6,000명 등 총 1만6,000여 명의 특사경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방 특사경 중 저와 같은 교통 특사경은 1,000여 명에 달하는데 교통 특사경의 송치건수가 전체 송치율의 70%에 육박하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2011년 기준 총 17만1,090건의 송치건 중 교통사범 송치가 11만 건에 달했습니다. 일은 많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죠.
부천시 정리나 주무관 ⓒ 신승희 기자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불리게 된 특사경 활약상을 들려주세요.
2010년 10월 부천시 차량관리과 특별사법경찰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특사경 첫 활동을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명수배자 정리였는데요. 당시 1,000명에 달하는 지명수배자 명단을 살펴보니 이미 사망한 사람,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람들까지도 포함돼 있더라고요. 명단을 대조해가며 검찰, 경찰, 시의 지명수배자 전산자료를 일치시켰어요. 발령 한 달 만의 성과였죠.
그 뒤에는 약 4~5개월에 걸쳐 미제사건 일제정리에 나섰어요. 미제사건은 대부분 끈기가 부족해서 풀지 못한 것들이었어요.
추적에 추적을 거듭한 끝에 약 800건의 사건을 해결했어요. 그렇게 일했더니 2011년, 2012년 연속 검찰송치부문 전국 1등을 기록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공소시효를 넘기는 게 예사라 검찰 압수수색까지 받았던 부천시가 1등을 하니 전국이놀랐죠.
그리고 2011년 11월, 교통사범에 대한 수사기법을 담은 ‘나는 특사경이다’를 발간했어요. 책을 만들기에 앞서 전국 232개 특사경 기관에 취지를 설명하고 애로사항이나 궁금한 점을 알려달라고 공문을 보냈어요. 70곳 정도가 회신을 보내왔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완성한 뒤 또다시 책이 나왔으니 필요하면 신청하라고 공문을 보냈어요. 이번에는 약 80% 이상의 기관에서 신청서를 보내왔어요. 그만큼 가이드북이 절실했다는 거죠. 그렇게 전국으로 퍼져 나간 책은 이제 교통 특사경으로 발령받으면 가장 먼저 보는 교과서가 됐대요. 책을 낸 이후 콜센터 수준으로 문의전화도 많이 왔어요. 현재도 꾸준히 멘토링을 이어가고 있고요. 첫 번째 책이 나온 이후 제게 문의해왔던 내용과 답변, 검사지휘 내용 등을 수록해 이듬해 8월에는 ‘수사는 정보력이다’라는 두 번째 책을 냈어요. 책이 나온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책을 보내달라는 전화가 전국에서 걸려오고 있어요.
더욱 다양한 특사경 업무를 배우고자 정 주무관은 경기도 특사경 파견 근무를 신청했다. ⓒ 신승희 기자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요.
조사실에서 온몸에 문신을 새긴 조폭을 한 명도 아닌 세 명이나 마주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하지만 태연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때론 제가 먼저 윽박질러가며 기선을 제압한 끝에 잘못을 시인하게 만들었죠. 특사경이 되기 전에는 단속부서에 있었는데 불법노점상을 단속하다 흉기로 위협당한 적도 있었어요. 아이들을 놀이방에 맡기고 출근하려면 대중교통으론 한계가 있고 자가용은 꿈도 못 꿀 형편이라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는데요. 아이들이 오토바이 윈도스크린(바람막이)에 입가가 찢어져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재미있다고 해맑게 웃던 일, 오토바이 브레이크가 고장 나 임신한 몸으로 시속 80km로 달리던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렸던 일이 생각나네요. 어려웠던 시절, 출퇴근은 물론 업무현장에 나갈 때도 늘 함께하던 오토바이였기에 그 의리로 여전히 오토바이로 출퇴근 중이에요.
지방행정의 달인으로서 앞으로의 포부는?
저는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즐겁고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하더라도 교통사범 관련 법 개정 내용은 수시로 확인하고 정리하여 교통 특사경들에게 언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진정한 달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