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경기마라톤대회가 열렸다. 경기도, 수원시, 화성시, 경기일보가 공동 주최한 이번 대회는 올해로 13번째를 맞이하며 선착순 11,000명의 참가신청을 받아 진행됐다.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 경기도 제공
마라톤대회에 앞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참가자 모두 사고 없이 다시 종합운동장에 들어와 완주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란다”며 참가자들을 응원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최근 KT위즈파크 건립 등으로 수원에서 즐길 수 있는 많은 체육활동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출발신호에 맞춰 달려 나가는 참가자들. ⓒ 경기도 제공
이날 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은 기념품으로 제공된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코스에 따라 10분 간격으로 출발했다. 출발 총성과 함께 시작된 파란 물결은 수원종합운동장~수원시~화성시 일대를 풀(42.195km)/하프(21km)/10km/5km코스로 나뉘어 달렸다.
경기를 며칠 앞두고 우천 예상으로 인해 검색 포털에는 ‘경기마라톤 연기’, ‘경기마라톤취소’ 등이 연관검색어로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경기 당일에는 적지 않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를 비롯해 연인, 친구 등 수많은 사람들이 대회에 출전했다.
출전자들은 경기지방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구간별 도로교통이 통제된 가운데 안전하게 달릴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응원과 2.5km 마다 제공된 생수, 이온음료, 스폰지는 참가자들의 발길을 더욱 가볍게 했다. 또한 경기 당일 흐린 날씨와 낮은 기온 덕분에 단거리 참가자들은 오히려 기록을 단축하는 뜻밖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프코스 출발 전, 긴장된 모습으로 신호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 이조 기자
기록은 측정칩을 이용한 Net Time 방식으로 산정돼 풀코스는 자브론 카라니(31·전국마라톤협회) 2시간40분40초, 하프코스에서는 조엘 키마루 케이요(32·전국마라톤협회) 1시간13분33초, 10㎞코스는 32분47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이홍국(44·수원사랑마라톤클럽)씨가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순위권 참가자 외에도 각 종목을 완주한 모든 참가자들에게는 기념메달과 간식이 제공됐다.
이날 기자는 아버지와 함께 20km 코스에 출전했다. 기자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 당시 해양경찰전경으로 팽목항에서 근무하며,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그 과정에서 가진 결심 중 하나가 바로 가족 간의 대화와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역 후 아버지의 오랜 취미였다는 마라톤을 함께 하는 것으로 결심을 하나씩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완주 후 기념품과 메달을 받아든 기자와 기자의 아버지. ⓒ 이조 기자
10km코스는 과거 출전한 경험이 있지만 하프코스는 이번 경기마라톤이 처음이었다. 부족한 수면과 중간고사 준비로 인한 컨디션 조절 실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4년 동안 수원에 살며 항상 버스나 자동차로 지나치던 길 위를 직접 뛰며 지나간다는 흥분감에 발길이 가벼웠다.
기온도 낮아 평소보다 더욱 빠른 기록으로 10km 지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트레이닝 바지는 계속 허벅지를 스쳤고, 곳곳에 고인 빗물에 젖어 신발이 무거워졌다.
마라톤화는 평소 자신의 신발 사이즈보다 5mm 크게 신어야 하는 게 정석이다. 두꺼운 양말과 장시간에 걸친 달리기로 발이 붓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에게 그런 마라톤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오래지 않아 발에서도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보다 기록이 잘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또한 엄습했다. 그래도 2시간대의 페이스메이커만을 바라보며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물과 간식을 쑤셔 넣고 달렸다.
15km 지점, 스퍼트를 올려야 할 때였다. 발과 허벅지의 극심한 통증으로 완주는 불가능해보였다. 페이스메이커와 다른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옆을 지나쳐갔다. 속도는 점점 더 떨어졌고, 비에 젖은 머리카락은 연신 시야를 가려 더욱 힘들게 했다.
그 순간, 기자의 아버지가 등을 밀어주며 마라톤은 남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완주에 의의가 있는 것이기에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갈 것을 권했다. 결국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자 앞만 보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뛰어가는 다른 참가자들이 보였다.
조금은 미숙해 보이는 참가자들의 열정과 그들이 보내는 무언의 응원 속에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그래, 늦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만 가면된다.’ 아버지와 자원봉사자들의 응원 속에 포기하지 않고 달린 결과 2시간20분36초라는 기록으로 골인지를 통과할 수 있었다. 혼자 참가했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2시간30분을 훌쩍 넘겼을 것이다.
인생은 종종 마라톤에 비유된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결승점까지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근 시중에 넘쳐나는 자기계발서들은 결승점을 위해 오차 없이 빠르게 가는 법만을 강조하고, 그 책을 읽는 독자 또한 그것이 마치 성공의 페이스메이커인 것처럼 여기며 뒤처질까 불안해하고 자신의 방향과 페이스를 의심하곤 한다.
인생이라는 실전에 앞서 마라톤으로 먼저 내 페이스를 찾고 그에 대한 확신을 얻는 방법을 연습해보자. 기나긴 인생의 마라톤을 함께 달릴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개인의 체력에 따라 10km라도, 혹은 5km라도 좋다.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나의 등이, 때로는 그의 등이 지쳐가는 서로를 다시금 이끌어 줄 무언의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