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인문학 콘서트’가 열린 스타트업캠퍼스 1층 컨퍼런스 홀의 입구. ⓒ 김은미 기자
‘영화 평론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이동진 영화 평론가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인데요. 국내 영화 평론가 중에서 독보적인 팬층과 인지도를 지닌 평론가이지요. 지난 17일, 저는 이동진 평론가가 강연을 맡은 ‘수요 인문학 콘서트’를 보기 위해 판교 스타트업캠퍼스를 찾았습니다. ‘수요 인문학 콘서트’는 경기도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4년째 진행하고 있는 행사로, 경기도민들의 교양있는 수요일 저녁을 위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입구에 마련된 다과와 질문지. 참신하고 다양한 질문들이 붙어있다. ⓒ 김은미 기자
컨퍼런스 홀 입구에는 다과와 질문지가 마련돼 있었습니다. 강연을 듣기 위해 스타트업캠퍼스를 방문한 많은 사람은 다과를 맛보며 이동진 평론가에게 궁금한 점을 적어냈습니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삽입곡을 부르고 있는 ‘뮤럽’. ⓒ 김은미 기자
‘수요 인문학 콘서트’라는 이름답게 강연 전 30분간 뮤지컬 공연이 펼쳐졌는데요. 뮤지컬팀 ‘뮤럽’의 공연이었습니다. ‘뮤지컬’과 ‘러브’를 줄여 만든 팀 이름처럼 공연 내내 뮤지컬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사회자와 함께 강연을 소개하고 있는 이동진 평론가. ⓒ 김은미 기자
본격적인 강연이 시작된 것은 오후 7시 30분경이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등장에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상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게 될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영화적인 힌트를 제공하려고 한다”며 강연을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뒤이어 영화감독이라는 직업과 창의성을 연관 지어 설명했습니다. “감독은 영화 현장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도, 가장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며 감독의 창의성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습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었는데요. 1988년 개봉했던 전쟁 영화 <풀 메탈 재킷>의 한국 개봉을 앞둔 시점, 미국인이었던 그는 주변 한국인들에게 물어 직접 한국어로 영화 홍보 카피를 작성해 팩스로 보내기도 했답니다.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이동진 평론가. ⓒ 김은미 기자
본격적인 강연에서는 총 세 편의 영화를 예로 들어 각각의 영화가 어떠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클라이맥스인 남주인공 유정원이 자신의 영정 사진을 직접 찍는 장면을 보여준 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을 당시 신인이었던 허진호 감독이 어디에서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소개했습니다. 바로 잡지를 뒤적이다 발견한 故 김광석의 영정 사진에서라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영정 사진을 찍을 때는 절대 웃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하는데요. 故 김광석 같은 경우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남아있는 사진이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 영정으로 쓰이게 됐고 허진호 감독의 아이디어는 이와 같은 아이로니컬에서 출발했다고 해요. 이동진 평론가는 이와 같은 일화를 통해 “아이디어는 가만히 있는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라 말하며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아이디어를 강조했습니다.
두 번째 영화는 여태까지도 할리우드 최고의 트릴로지라 일컬어지는 <대부>였습니다. <대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등장인물 비토 콜레오네 역할을 맡은 배우는 말론 브란도였는데요. 그는 과거 뛰어난 연기력으로 유명한 스타였지만 방탕한 생활을 일삼아 결국 영화계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그의 능력을 믿고 <대부>에 캐스팅하고자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모두 그를 만류했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끈질기게 말론 브란도를 고집했고, 결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걸작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말론 브란도의 연기적 창의성과 더불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경우를 “나와 같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창의성이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 <조스>였는데요. <조스>를 제작하던 시기는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이라고 합니다. 두 대의 기계 상어를 만들어 촬영에 사용했지만, 물에 닿는 족족 기계 상어들은 고장 나곤 했지요. 그때 스티븐 스필버그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상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상어가 나왔다고 생각하게 만들자”였습니다. 상어 영화에 상어를 등장시킬 수 없다는 핸디캡이 오히려 창의성으로 발현된 것이지요. “창의성을 얻기 위해서는 일부러 제약을 걸어두고 시작해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조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질문지를 살펴보며 답변하고 있는 이동진 평론가. ⓒ 김은미 기자
모든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총 네 개의 질문에 답을 했는데요. 먼저 “취향에 맞지 않는 것에 어떻게 집중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취향만 고집하는 순간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오그라든다. 진짜 좋아하는 분야라면 취향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써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예전에 구상했던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영화와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시점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별점이나 평론을 번복하고 싶은 적이 있었는지?”라는 질문에는 “나도 별점을 고치곤 한다. 자신이 이미 내렸던 평론을 계속해서 고집하는 것은 신념이 있는 게 아니라 꼰대라고 생각한다”고 재치있게 답했습니다.
질의응답이 끝난 후 사인회가 진행됐다. ⓒ 김은미 기자
플래카드에 적힌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인문학을 만나다’라는 설명처럼 창의적이고 남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훌륭한 강연이었다고 생각하며 컨퍼런스 홀을 빠져나왔습니다. 앞으로도 경기도민들의 교양있는 수요일 저녁을 책임져주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