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의 정취가 싱그럽고 화려하다면 가을은 우아한 멋이 있다. 들판에는 은빛 억새가 하늘하늘 몸을 부대끼고, 물가에선 금빛 갈대가 군락을 이루며 황홀한 자태를 뽐낸다. 봄꽃이나 신록만큼 생동감은 덜해도 가을 풍경은 처연하기에 더없이 아름답다. 11월엔 가을 정취를 따라 거닐어보자. 찰나의 풍경이 바람과 함께 살갑게 다가온다.
경기도의 대표적 억새 명소, 포천 명성산 억새 군락지. 깊어가는 가을이면 은빛 억새가 산등성이를 물들인다. ⓒ 사진 임익순
명성산 억새 군락지는 해발 800m에 위치하지만, 등산로 제1코스를 따라 2시간 정도 오르면 쉽게 닿는다. 억새 군락지에 다다르면 명성산억새바람길을 걸으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 사진 임익순
명성산 억새 군락지. 푸른 하늘과 억새의 가느다란 몸짓이 서정적이다. ⓒ 사진 임익순
그림 같은 억새의 향연
명성산 억새 군락지
위치 포천시 영북면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서 명성산 등산로 제1코스를 따라 명성산억새바람길까지 도보로 이동(2시간 내외 소요)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군 경계에 펼쳐진 명성산은 경기도의 대표적 억새 명소다. 산정호수 인근 등산로 입구에서 제1코스를 따라 팔각정에 이르면 은빛 향연의 억새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명성산에는 후삼국 시대에 삼한의 통일을 꿈꾼 궁예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삼한 통일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태조 왕건에게 쫓겨난 궁예는 명성산에 기거하며 서러움에 통곡했는데, 궁예가 울자 이 산도 같이 울었다 하여 ‘명성(鳴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일까, 명성산 억새 군락지는 햇살을 머금은 가을빛과 어우러져 더욱 아련하고 쓸쓸한 모습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억새의 가느다란 몸짓이 그림이 되는 곳, 명성산의 가을을 놓치지 말자.
건원릉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왕릉 양편에 문인석과 무인석을 배치하고, 곳곳에 석마(石馬)•석양(石羊)•석호(石虎) 등을 두었다. ⓒ 사진 임익순
태조의 마지막 바람
건원릉
위치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내
조선 시대 수도 한양(지금의 서울)을 중심으로 구리와 남양주, 고양 등 경기도 일대에는 조선왕조500년이 잠들어 있다. 그중 구리시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은 9기의 왕릉이 자리한 곳으로,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모습의 왕릉이 있다. 바로 봉분이 억새로 덮인 건원릉(健元陵)이다. 건원릉은 조선 1대왕 태조 이성계의 능으로, 태조는 고향 함흥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아들 태종이 한양과 멀리 떨어진 곳에 능을 조성하는 것을 반대해 대신 함흥의 억새를 가져와 봉분을 덮었다고 한다. 왕릉의 주인이 묻혀 있는 능침(陵寢)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올해는 억새 절정기를 맞아 관람객을 위해 특별히 개방하니 색다른 억새 명소로 방문해볼 만하다
화서공원에서 바라본 서북각루와 억새밭. ⓒ 사진 임익순
세계문화유산과 어우러진 억새밭
화서공원
위치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6-35 화서공원 일대
가을에 여행하기 좋은 곳을 꼽자면 수원화성(水原華城)을 빼놓을 수 없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에는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이 담겼으며,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정조의 정치적 포부가 깃들어 있다. 그뿐 아니라 수원화성은 축성 당시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덕분에 산책하며 둘러보기에 좋다. 수원화성을 따라 가을 정취를 즐기려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화서공원이다. 화서공원은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華西門) 주변에 조성한 공원으로, 성벽을 따라 억새가 자라 운치를 더한다.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억새와 함께 성곽길을 거닐어보자. 견고하고 아름다운 성벽에 정조의 원대한 꿈이 살아 숨 쉰다.
드넓은 초원에 다양한 식물을 식재해 사시사철 볼거리가 가득한 성팜랜드. 가을이면 핑크 뮬리와 코스모스가 만개한다. ⓒ 사진 임익순
사랑스러운 핑크 뮬리와 #인생샷
안성팜랜드
위치 안성시 공도읍 대신두길 28 안성팜랜드 내 뮬리동산
뭐니 뭐니 해도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건 핑크 뮬리다. 소셜 미디어에서 인생샷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사진 8할에는 핑크 뮬리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에서 들어와 흔히 핑크 뮬리 또는 서양 억새라 부르지만, 우리 이름은 분홍쥐꼬리새다. 핑크 뮬리는 겉모습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생명력만큼은 강인하다. 모래나 자갈이 많고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자라며, 가뭄에도 강해 척박한 땅에서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핑크 뮬리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려면 안성팜랜드로 떠나보자. 안성팜랜드는 드넓은 초원에 다양한 식물을 식재해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몽환적인 핑크 뮬리와 코스모스가 만개한 가을에 가장 예쁘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 좋은 안산갈대습지공원. 노을이 질 때 방문하면 황금빛 갈대 군락이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 사진 임익순
생태 학습지로 손색없는
안산갈대습지공원
위치 안산시 상록구 해안로 820-96
억새가 산이나 들에 군락을 이루고 종류에 따라 물가에도 사는 반면, 갈대는 산에서 자라지 못하고 물가에서만 산다. 이렇듯 자생 지역이 다른 이유는 갈대의 정화 기능과 관계가 있다. 갈대의 뿌리는 산소를 내뿜어 토양을 산화시키고 미생물 성장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 오염 물질을 분해한다. 안산갈대습지공원은 이런 갈대의 정화 기능을 활용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인공 습지다. 갈대와 부들 등 수생식물을 이용해 시화호로 유입되는 지천의 수질을 개선한다. 황금빛 갈대 군락 사이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휴식하면서 생태계를 이루는 생물들이 어떻게 서식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