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는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양평군 용문면의 용문산 자락에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
용문사는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양평군 용문면의 용문산 자락에 있다.
서울에서도 가깝우며, 근처에는 공원과 캠핑장, 야영장, 공연장, 농업박물관 등으로 구성된 ‘용문산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찰이다.
특히 용문사에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높이 60m, 수령은 1,1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이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인 913년에 승려 대경(大境)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 경기G뉴스 허선량
■ 정지국사 부도 및 비 등 가치 높은 문화재 만날 수 있어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인 913년에 승려 대경(大境)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행차하여 직접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에는 정지국사(正智國師)가 개풍군 경천사에 있던 대장경을 이곳에 옮겨 봉안했다.
조선 세종 29년인 1447년에 세종의 둘째 왕자인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지었다. 수양대군은 왕이 된 뒤 왕명으로 용문사를 중수하도록 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했으나, 대한제국 순종이 왕위에 오른 1907년에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나면서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워버렸다.
1909년부터 차츰 중건하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현대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1907년에 일본군의 병화로 전건물이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취운(翠雲)이 소규모로 재건하여 유지해 오던 중 그마저 6·25전쟁 때 파괴되어 3칸의 대웅전과 관음전·산령각(山靈閣)·종각·요사(寮舍) 등만 남게 됐다.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절에서 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조선 전기의 정지국사부도 및 정지국사탑비가 있다. 부도와 탑비는 함께 보물 제5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지국사(1324~1395)는 고려 말의 고승으로 호는 축원, 속명은 김지천이다. 고려 충숙왕 11년(1324)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19세에 장수산 현암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공민왕 2년(1353) 30세에 자초(무학대사)와 함께 중국 연경에 들어가 법원사의 지공을 찾아보고 그에게 법을 이어받은 혜근(나옹선사)에게 사사하였다. 그뒤 함께 각지로 다니며 수도하다가 공민왕 5년(1356)에 귀국하였다.
용문사 경내에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이는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
■ 천 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사 경내에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이는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14m이며, 가지는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 정도 퍼져 있다.
이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는 근거는 용문사의 창건연대와 관련하여 산출하고 있다. 용문사는 649년(신라 진덕여왕 3)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은행나무는 절을 세운 다음 중국을 왕래하던 스님이 가져다가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은행나무 중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서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堂上職牒) 벼슬이 내려졌다 하며, 마을에서는 굉장히 신령시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나오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쳤기 때문에 중지했다는 이야기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살라버렸으나 나무만은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울러 고종이 승하했을 때 커다란 가지 한 개가 부러졌고, 8·15광복, 6·25전쟁, 4·19, 5·16 때에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용문산에는 계곡을 비롯해 용문사·상원사·윤필사·사나사 등의 고찰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 경기G뉴스 허선량
■ 용문사 외에도 다양한 고찰과 계곡을 즐길 수 있어
양평군의 한 가운데 솟아 있는 용문산은 예나 지금이나 군의 주산이자 오랜 역사가 배어있는 명산으로서 군 전체를 굽어보고 있으며, 그 지맥은 사방으로 뻗쳐있다.
경기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 경계에 있으며, 산의 높이는 1,157m에 이른다. 양평 북동쪽 8km, 서울 동쪽 42km 지점에 위치한다.
용문산은 광주(廣州) 산맥계에 속하나 독립된 한 산괴로서 산체가 웅대하여 동서 8km, 남북 5km에 걸치고, 용문산을 주봉으로 하여 동북동 5.5km의 도일봉(864m), 동쪽 4.5km의 중원산(800m), 남서 3.5km의 백운봉(940m) 등이 이어져있다.
특히 남쪽 산록 계곡에는 용문사 외에도 상원사·윤필사·사나사 등 고찰이 있어, 계곡과 사찰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