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영유아의 보육을 책임지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이들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내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53%는 기간을 정하고 고용 계약을 체결한 계약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사진. ⓒ 경기뉴스광장
■ 보육 교직원 열악한 노동환경에 보육의 질 저하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은 보호자를 대신해 영유아를 보호 양육하며 영유아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보육의 핵심 주체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보육 정책은 수요자인 영유아의 보호자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상대적으로 보육교사의 목소리는 크게 반영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보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라는 업계에 통용되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근무와 저임금 등 보육 교직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결국 낮은 직무 만족도와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며,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다.
이에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8월 보육 교직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경기도 보육 교직원 권익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가 전국 최초로 제정됐다.
이는 그간 보육 정책에서 소외돼 온 보육 교직원의 권익을 보호·증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도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보육 교직원 지원 정책 추진을 뒷받침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도내 보육 교직원 약 9만 2,000명…전국의 28%
조례 제정에 따라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도내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을 대상으로 노동환경 실태를 파악하고, 경기도 보육 교직원 지원 정책을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의 노동환경을 전면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내 전체 보육 교직원은 지난 2012년 7만 6,288명에서 2017년 9만 246명, 2021년 9만 2,320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2012년에 비해 21.0% 증가한 것으로, 전국 약 32만 1,000명의 약 28.7%에 해당하는 규모다.
설립유형별 현황을 보면 민간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이 3만 6,998명(40.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가정어린이집 3만 1,806명(34.5%), 국공립어린이집 1만 6,062명(17.4%), 직장어린이집 4,985명(5.4%), 법인·단체 등 어린이집 1,252명(1.4%),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797명(0.9%), 협동 어린이집 420명(0.5%) 순이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도내 보육 교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도내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53%는 기간을 정하고 고용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 도내 어린이집 보육교사 2명 중 1명 ‘계약직’
재단은 지난 5월 10일부터 22일까지 도내 보육 교직원(담임교사, 연장보육 전담교사, 보조교사) 1,09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3%(581명)는 기간을 정하고 고용 계약을 체결한 계약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조례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 계약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보육 현장에서는 절반 이상이 기간을 정하고 고용 계약을 체결한 계약직인 상황이었다.
계약직 581명의 94%(547명)는 2년 미만의 계약 기간이었으며, 이 중 1년 미만이 36명, 1년~1년 6개월 미만이 476명, 1년 6개월~2년 미만이 35명이었다.
고용 계약 기간 만료 후 갱신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66%(385명)만 ‘교사 희망 시 가능하다’고 답했다.
나머지 34%(196명)는 ‘원장 재량에 달려서 불확실하다’, ‘모른다’, ‘불가능하다’라고 답하는 등 불분명한 계약 연장 여부로 고용 불안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황이었다.
도내 보육교사의 50.6%는 병가나 질병 휴직제도에 대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 보육교사 50.6% “아파도 편히 쉴 수 없어”
이와 함께 보육 교직원의 하루 휴게시간은 평균 34.9분이었다. 점심시간 휴식을 취하는 일반 직장인과 달리 아이들 배식, 식습관 지도 등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휴게 장소도 ‘보육실 내부’가 50.9%로 가장 많았다. 휴게시간마저도 45.5%는 ‘보육일지를 비롯한 업무’, 11.5%는 ‘아이들 관찰하며 대기’ 등을 하면서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다.
실제 도내 한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들 낮잠 시간에 같이 쉬니깐 그게 휴게시간이라고 하는데 보육교사들은 그 시간에 다른 서류 업무를 하거나 보육일지를 쓴다”며 “또 아이들이 동시에 자는 게 아니다 보니 잠든 아이들과 깨어 있는 아이들도 봐야 한다. 아이들 낮잠 시간에 절대 쉴 수 없다”고 전했다.
병가나 질병 휴직제도도 ‘사용 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9.6%에 불과했다. 나머지 20.3%는 ‘제도는 있지만, 실제 사용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16.5%는 ‘전혀 없으며 개인 연차를 써야 한다’고 답해 아파도 마음 편하게 쉴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휴게시간에 쉴 수 없고 자율적으로 휴가를 쓸 수 없는 여건은 보육교사의 노동권이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수준에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보육 교직원 권익 침해 원인.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보육 교직원 노동권익 보호 및 인권 존중해야
재단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수립되는 ‘제4차 경기도 중장기 보육발전계획’(2023~2027)과 관련해 정책 제안을 내놓았다.
조사에 참여한 보육교사들은 권익 침해 원인으로 보육 교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권익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 미비, 보육 교직원 보호에 소극적인 행정당국, 보육 현장과 맞지 않는 정책이나 사업지침 등을 꼽았다.
이에 재단은 보육 교직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중앙정부의 보육 교직원 권익 보호 관련 법적 근거 마련 ▲국정과제와 민선 8기 경기도 공약에 포함된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사업’ 추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보육 안내사업 지침’ 개정 ▲보육 교직원 고충 처리 전담 기구의 기능 강화 등을 제안했다.
김미정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보육 교직원의 노동권익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곧 영유아들에게 최선의 보육환경이 된다”며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현장 보육교사들의 목소리를 더 꼼꼼히 살피고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