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여러 개인 당근, 크기가 제각각인 감자, 휘어진 호박 등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리던 일명 ‘못난이 농산물’이 최근 가치 소비의 바람을 타고 화려하게 변신했다.
환경보호는 물론 저렴한 가격에 맛과 영양을 잡을 수 있어 알뜰 소비자의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것이다.
못난이 농산물은 신선도, 영양 등 품질에는 이상이 없으나 소비자가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비규격품 농산물을 말한다. ⓒ 경기도청
■ 국내 채소·과일의 10~30% 등급 외 분류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 구조는 대형 유통업체 위주로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업체들은 판매와 관리가 수월하도록 농산물의 모양과 크기를 ‘규격화’했다.
그 과정에서 맛이나 영양 등 품질에는 이상이 없으나 모양 또는 크기가 기준에서 벗어나 등급 외로 분류되는 농산물이 발생했다. 일명 ‘못난이 농산물’로 불리는 비규격품 농산물이다.
이러한 못난이 농산물은 상품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대부분 산지에서 폐기되거나 가공용으로 헐값에 처분된다. 단지 외모가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비자와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채소·과일 전체 생산액의 10~30%가 등급 외로 분류됐다. 이는 채소와 과일 연간 생산액인 약 16조 373억 원의 3분의 1인 연간 최대 5조 원에 이르는 수치다.
2018년 기준 등급 외로 분류된 못난이 채소와 과일 생산액은 연간 최대 5조 원에 달한다. 자료사진 ⓒ 경기뉴스광장
■ 외모보다 가치 소비…못난이 농산물의 재발견
문제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기형, 소형 등 못난이 농산물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판매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농산물이 늘어나면서, 못난이 농산물은 농가소득 손실을 넘어 환경오염, 식량 불균형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농산물을 폐기할 때 발생하는 메탄가스와 이산화질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보다 더 높은 온실효과를 만든다. 또 썩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역시 환경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못난이 농산물로 인한 문제가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외모가 아닌 가치에 주목하는 적극적인 소비 운동과 함께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새로운 시장이 등장했다.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인 인터마르셰(Intermarche)는 2014년 ‘부끄러운 과일과 채소(inglorious fruits&vegetables)’ 캠페인을 벌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캠페인은 매장별 일평균 1.2t의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며, 유럽 전역에 못난이 농산물 소비 운동을 촉진했다.
네덜란드의 크롬코마(Kromkommer)는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과일 야채스프 전문 유통업체로 2013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론칭에 성공하며 연 매출 1조2,000억 원을 달성했다.
미국에서는 2015년 임퍼펙트 프로듀스(Imperfect Produce)라는 못난이 농산물 정기 배달 전문 온라인몰이 등장했다.
경기도는 프레시어글리 등 못난이 농산물 전문 취급업체와 온라인몰 등을 통해 도내에서 발생하는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프레시어글리 온라인몰
■ 도,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 판매 활성화 나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못난이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2019년 TV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에서는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못난이 감자를 대형마트와 연계해 완판시키며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 ‘프레쉬어글리’, ‘어글리어스’, ‘마켓가지’ 등 못난이 농산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도 속속 등장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맞춰 경기도도 도내 농가 및 식품기업의 소득 증대와 환경보호 및 사회적 비용 절감을 실천하기 위해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 판매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경기도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 판매 활성화 추진체계 구조도. ⓒ 경기도청
우선, 도는 도내 농가와 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 학교급식 등의 유통 경로에서 발생한 못난이 농산물을 프레시어글리
(www.freshugly.com/shop) 등 못난이 농산물 전문 취급업체와 온라인몰을 통해 정상가 대비 20~3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8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 함께 원물 상태로 공급이 어려운 농산물은 화장품 등 가공품과 이유식 등 가공식품의 원재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농가 라이브커머스와 실시간 타임 세일, 꾸러미 상품 구성 및 배송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도 관계자는 “못난이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 지난 2019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에서 발생한 폐기물량과 폐기비용이 439t, 9,200만 원에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280t, 5,000만 원으로 크게 줄었다”며 “관계자 협의를 통해 공급물량 및 판매업체 확대 등 매출 증대 방안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