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프로게이머들, 꿈을 펼치다

◇지난 10월 수원에서 개최된 ‘2012 대통령배 KeG대회’ DUG팀 경기 및 경기장 모습. ⓒG뉴스플러스


KeG(전국아마추어 e스포츠대회), e-스포츠, LOL, 슬러거….
단어 자체도 생소한 어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라면 이내 알아듣는 익숙한 단어들이다. 게임에 문외한이며, 그나마 할 줄은 모르나 알고 있는 게임이 ‘스타크래프트’가 전부인 기자는 같은 한국말인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게임용어에 금세 어색해졌다.

지난 10월 건전한 게임문화보급과 국민여가 활성화, 게임에 대한 긍정적 인식전파를 위해 ‘2012 대통령배 전국아마추어 e스포츠대회(이하 KeG)’ 및 ‘수원정보과학축제’가 개최됐다. 전국 지역별로 예선을 거쳐 올라온 팀은 ‘LOL’, ‘스페셜포스’,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슬러거’, ‘철권’ 등 7개 종목의 토너먼트로 각자의 기량을 펼쳤다.

대회는 도별로 각 게임의 승자를 겨룬 뒤 종합성적 집계를 통해 점수가 높은 도가 우승하는 것. 마지막 경기종목이었던 ‘LOL’이 승리를 거두면서 경기도가 4년 만에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날 종합우승의 축포를 터뜨리기까지 가장 큰 공을 세운 ‘DUG’팀을 만나봤다.



예비 프로게이머들, 꿈을 펼치다

◇‘DUG’ 송유섭 팀장, ‘LOL’게임에서 미드라인을 맡고 있다. ⓒG뉴스플러스 유제훈

지난 9일 수원시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5명은 또래 나이에 비해 점잖고 성숙한 분위기였다. 동네 PC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끌벅적한 고등학생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도 잠시, 게임 이야기가 시작되자 눈빛부터 빛이 나며 화색이 돈다.

‘DUG’는 ‘Dynamic Universe Gaming’의 약자다. ‘다이내믹하게 게임을 즐긴다’는 뜻으로 송유섭(19·천천고) 팀장과 손승익(19·동원고) 부팀장을 비롯해 박학순(19·동원고), 이석원(19·동원고), 김한샘(18·천천고) 등 5명으로 구성된 ‘LOL(league of legends)’게임 팀이다.

“LOL은 두 팀으로 나눠 각자의 구역을 지키면서 내 구역의 ‘넥서스’를 지키고, 상대 구역의 ‘넥서스’를 부수면 이기는 게임이에요. 팀원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그만큼 작전도 중요하죠.”

송유섭 팀장의 말에 기자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평소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게임 용어들이 즐비하게 쏟아져 나온다. 기자를 배려한 팀원들이 각자 간단하고 쉽게 설명해 주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기자는 순간 ‘얼음’이 됐다. 옆에 있던 손승익 군은 계속해서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러니까 이것은요”라며 기자를 다독이고, 응원하고, 부연설명을 붙여 가며 이해를 도왔다.

e스포츠대회는 ‘electronic sports’의 약자로 10여년 전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급부상하면서부터 그 형식을 갖춰 왔다. e스포츠란 컴퓨터 및 네트워크, 기타 영상 장비 등을 이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지적 능력 및 신체적 능력이 필요한 경기다. 대회 또는 리그와 같은 현장참여와 전파를 통해 전달되는 중계 및 관전, 이와 관계되는 커뮤니티 활동 등의 사이버 문화 전반이 e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의 종류는 요즘처럼 다양하지 않아 ‘게임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PC방에 앉아 밤새 게임을 즐겼다. 그로 인해 사실 컴퓨터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다.



예비 프로게이머들, 꿈을 펼치다

◇‘원거리 공격수’를 맡고 있는 손승익 군과 ‘서포터’를 맡고 있는 박학순 군. ⓒG뉴스플러스 유제훈


최근 뉴스만 보더라도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등 생소한 단어들이 넘쳐난다. 절제 없이 게임에 빠져드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건전하게 즐기는 부류까지 그렇게 치부되는 일도 적지 않아 안타깝다. DUG도 물론 이런 오해를 많이 겪어 왔다고 했다.

송유섭 군은 “그렇지 않은 집도 있지만, 저희들 거의 대부분이 한 번씩은 그런 오해들을 겪었다. 컴퓨터게임 자체가 뉴스에서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들이 워낙 많이 나오니까 ‘혹시 우리 애도?’ 이런 시선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은 주변에서 이해도 많이 해주고, 오히려 응원을 많이 해준다. 우승 후부터는 실력이나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믿어주고, 안심하는 것 같다. 그런데 팀원인 학순이는 아직 좀 많이 힘든 편이다”고 말했다.

한샘 군은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 하는 애들’이 자주 가는 곳과 하는 일이 ‘PC방과 컴퓨터게임’으로 보이는 것 같다”며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나름 열심히 하고, 절제하면서 좋아하는 게임도 즐긴다. 꿈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단계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게임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대해 묻자 각자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그 중 학순 군은 “가족이나 선생님께 단 한 번도 응원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서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알아주는 팀원들이 있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팀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DUG는 컴퓨터게임을 하는 데도 ‘룰’이 있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게임이기에 푹 빠져들 수도 있지만, 평소 3~4시간 대회를 위해 연습하고 호흡을 맞춰보는 정도로 절제하는 편이다.



예비 프로게이머들, 꿈을 펼치다

◇‘탑 라인’을 맡고 있는 김한샘 군과 ‘정글러’ 이석원 군. ⓒG뉴스플러스 유제훈


손승익 군은 “우리가 하는 게임 자체가 서로의 호흡이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에 맞춰보지 않고서는 대회에 출전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어렵다. 또 아직 학생 신분들이라 방과 후를 이용하고,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PC방의 미성년자 출입시간도 정해져 있어 절제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주변의 시선을 우리들 스스로도 충분히 안다. 그만큼 더 건전하고 절제하며 즐긴다. 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대회에 나가 성적이 좋으면 그만큼 즐겁고 보람도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수원에서 개최된 ‘제4회 대통령배 전국아마추어 e스포츠대회’에서 DUG는 LOL을 우승하며 중국에서 개최되는 대회의 출전권도 따낸 바 있다. 기자가 중국에 갔던 일을 묻자, 이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송유섭 군은 “결과는 예상대로 좋지 않았다.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배운다는 마음으로 경험 삼아 갔다. 가보니 정말 출중한 실력의 프로게이머들이 많았다. 배운 것도 많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스포츠대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e스포츠대회가 주관하는 대회로 문광부가 주로 이끌어왔으며, 지난 2009년 대통령배로 승격됐다. 출전선수들에게는 게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식사, 장비 등이 모두 제공된다.

중국에 다녀온 DUG는 지난 KeG 대회 우승 상금으로 각자 개인 장비를 보강하고,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의 대회 출전을 계획하고 있다. 모두가 “한샘이를 제외하고 새해에는 모두 20살이 된다. 앞으로 스케줄은 한샘이 위주로 짜게 될 것 같다”며 “팀웍이 잘 맞는 만큼 다음에는 더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라며 뜻을 모은다.



예비 프로게이머들, 꿈을 펼치다

◇‘Dynamic Universe Gaming’팀이 경기 전 파이팅을 하고 있다. ⓒG뉴스플러스


게임을 즐기지 않는 기자도 자주 보도된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의 이름 몇 명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게이머들의 보도가 화제가 되는 일은 주로 게임의 성적, 혹은 서포터와의 계약이다. 송유섭 팀장에게 “DUG에게도 프로게이머들과 같이 서포터가 생기지는 않았는지”를 물어 보았다.

“아직 결정사항은 없고요. 얼마 전 컴퓨터장비회사인 ‘스틸시리즈’에서 키보드, 마우스, 헤드셋 등이 후원돼 중국에서 아주 유용하게 썼죠. 대회 같은 경우에는 주최 측에서 식사 등 경기에 관련된 지원이 나오니까 크게 힘든 것은 없어요. 조만간 서포터가 생긴다면 저희 모두 게임에만 몰두할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은데, 아직 기대만큼 많은 연락은 없네요.”
송유섭 군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졌다.

게임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프로게이머가 꿈이 된 그들. 컴퓨터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만이 아니었던 기자에게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DUG였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타진했다.

“앞으로 꾸준히 호흡 맞춰 가면서 더 큰 대회에 도전해야죠. 팀원 모두 컴퓨터게임과 컴퓨터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에요. 대학도 관련과에 진학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최종적인 목표는 프로게이머로 잡고 있어요. ‘DUG’라는 팀명처럼 역동적이고, 재밌는 게임을 하면서 우리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거운 팀으로 기억되는 프로게이머요. 될 수 있겠죠?”

최근 뉴스를 보면 PC방에서 컴퓨터게임을 즐기다 사망에 이르는 사건도 종종 보도가 되고 있다. 그만큼 컴퓨터 게임중독, 인터넷 중독은 현대사회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무엇이든 적당함의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그 안에서 소신 있고 건전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는 청소년들도 있다.

한국에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그리고 그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도 무궁무진하다. 어른들의 제한된 시선에 그들을 가두기보다 믿고, 바른 길을 열어주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TV에서 ‘DUG’라는 팀이 다이내믹하게 세계 제패를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모두들, 파이팅이다!”



예비 프로게이머들, 꿈을 펼치다

◇손승익, 김한샘, 박학순, 송유섭, 이석원(왼쪽부터) 군. ⓒG뉴스플러스 유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