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은 경기도 DMZ 접경 지역 4개 시군(김포, 고양, 파주, 연천)을 잇는 최북단 도보 여행길이다. DMZ 인근 철책선을 따라 걸으면서 분단 현실을 체감하는 것은 물론 뛰어난 자연경관과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길로도 유명하다. 2010년 개장한 평화누리길은 총 12개 코스(김포 3, 고양 2, 파주 4, 연천 3)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길이는 약 189km 안팎이다.
DMZ와 인접한 평화누리길은 사계절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계절별 색깔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는다.” 점에서 경기도는 ‘DMZ 사색(四色)하다’라는 주제로 10월의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코스를 소개한다.
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평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과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가을, 역사와 평화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보고 싶다면 평화누리길 8코스 `반구정길`을 추천한다.
■ 갈매기와 벗하는 정자 황희정승의 ‘반구정’
파주에 위치한 평화누리길 8코스 반구정길은 총 13km 구간으로, 약 4시간 동안 임진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지금의 임진강 주변은 군사 경계를 위한 철책이 이어져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강변의 풍경을 즐기며 시와 학문을 나누던 공간으로 그 흔적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8코스에도 황희정승이 여생을 보냈던 반구정과 율곡 이이 선생의 화석정이 남아있다.
길의 시작은 코스의 이름이 된 ‘반구정’이다. 조선 세종대의 명재상 황희 정승이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90세까지 인생의 마무리를 했던 곳이다. ‘갈매기와 벗하는 정자’라는 뜻의 반구정은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고즈넉한 모습이 청백리로 이름난 황희 정승의 삶과 닮아있다. 정자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바라보면, 갈매기를 벗 삼아 풍류를 즐겼던 노(老) 재상의 여유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 평화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는 곳, ‘임진각과 평화누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임진각에 다다른다. 임진각은 1972년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1번 국도 끝자락에 조성되었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며 차례를 지내는 곳인 ‘망배단’,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독개다리와 증기기관차`,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의 종’ 등의 시설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오늘날 DMZ를 대표하는 평화․통일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은 DMZ 평화관광의 출발지점도 임진각이다.
임진각을 지나면 탁 트인 잔디밭이 펼쳐진 평화누리와 만난다. 특히 10월에는 K-드라마와 영화 OST를 주제로 펼쳐지는 음악축제 2026 GHOST(경기 한류 OST) 페스티벌(10.9.~11.), 지역 특산물을 만날 수 있는 파주개성인삼축제(10.17.~18.)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평화누리와 인접한 곳에 자리한 평화누리 캠핑장은 임진강과 건너편 민통선을 마주하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 캠핑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임진각과 평화누리를 지나면 길은 한층 한적해진다.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과 추수를 앞둔 농촌 풍경이 길동무가 된다. 그렇게 평탄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임진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장산전망대에 이른다.
■ 임진강 풍경에 깃든 율곡의 지혜, 장산전망대와 화석정
장산전망대는 임진강 너머 초평도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사진찍기 좋은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초평도는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된 지역으로,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길의 마지막에는 임진강을 굽어보는 화석정이 기다린다.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 선생이 학문을 닦고 후학들과 교류했던 곳으로, 이 곳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한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율곡 선생이 생전에 주변의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했는데, 훗날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 나무들로 정자에 불을 밝혀 선조가 임진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십만양병설과 함께 훗날의 전란을 내다본 율곡 선생의 예지와 우국충정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화석정을 지나 율곡습지공원에 도착하면 반구정길의 여정도 마무리된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습지는 도심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여유를 선물한다.
일평생 청렴한 삶을 보여준 황희 정승의 이야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던 율곡 이이 선생의 지혜,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넘어 평화를 꿈꾸는 임진각 평화누리까지 오늘의 염원이 평화누리길 8코스 반구정길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