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모 한국땅이름학회 부회장은 화성시에 거주하며 지명 연구를 하고 있다. ⓒ 경기뉴스광장
“처음 우리 지역 이름에 관심 갖게 된 건 1983년 ‘신협운동’에 참여할 당시 지역에 대해 홍보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역사 공부를 하다가 지역과 그 지명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들을 회복시켜야겠다고 생각해서 1985년도부터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정찬모 한국땅이름학회 부회장은 원래부터 우리 고유 지명에 대해 조사하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축산업에 종사했다. 그는 1983년도 지역 부흥을 위해 시작한 신협운동을 통해 지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현재 한국땅이름학회에서 활동하며 화성지역학이라는 주제로 시(市) 홈페이지에 글도 연재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명 변경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고 시·군 위원회에서도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지명 변경이 쉽지 않다”며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만큼 지명과 관련한 연구가 진전되도록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일제가 없앤 우리 고유 지명
경기문화재단에서 발행한 ‘조선지지자료- 경기도편’의 내용. ⓒ 경기뉴스광장
그가 활동하는 한국땅이름학회는 1984년 11월에 창립한 단체로, 우리나라 땅이름을 조사·연구 정리해 역사, 지리, 언어, 민속 등의 연구자료를 제공하고, 국토 애호심을 기름으로써 겨레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회에서는 ▲땅이름 연혁에 관한 조사 연구 ▲땅이름의 제정, 변경에 자료 제공 ▲땅이름에 관한 발표회 개최 ▲회지 및 연구 간행물 발간 등 연구와 ▲땅이름 전문가 육성 ▲길 이름 짓기 사업 참여 ▲마을 유래비 설치 등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현재 정찬모 한국땅이름학회 부회장은 경기도 화성시에 머물며 지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지명 관련해 연구 자료들이 부족합니다만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라고 전국 지명에 대해 정리해 놓은 책이 있어 큰 도움을 받았죠. 저는 주로 지명의 어원이나 유래 등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는데 1985년도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35년이 돼가네요.”
정 부회장은 우리나라 지명들이 일제에 의해 이유 없이 이름과 이름이 합쳐지거나 장난식으로 변경되는 등 임의적으로 변경된 사례들이 많다고 말했다.
“보통 지명의 변천은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나타나는데 기존의 마을들을 통폐합할 때 본래 지명의 한 글자씩 떼어 합성지명으로 만드는 일이 대표적입니다. 합성지명은 고유지명의 순수성을 외면하고 본래의 특성을 무시한다는 점과 옛 지명 본래의 의미를 잊는 경우가 생기는 문제가 있지요.”
정 부회장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역사상 많은 지명 변경이 있었으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1914년 일제 강점기 당시에 진행된 지명 개편이다. 당시 일제는 대륙 침략의 길잡이와 토지 수탈을 목적으로 한국의 지형도를 간행코자 본격적인 땅이름 조사에 착수했고 그중 경기도 소재 모든 면(面)의 명칭과 구역의 통폐합을 통한 일대 개편을 단행했다.
또한 일제는 조선의 땅을 조사한다는 구실로, 이른바 ‘조선토지조사사업’을 착수, 땅을 측량함과 함께 지도를 새로이 작성하면서 전국의 땅이름을 자기들 장부에 올려놓았다. 이때 채집된 땅이름은 약 180만 개로서 상당수가 일본제국 참모본부 간행의 지형도에 기입됐다.
당시 변경된 지명들을 보면 주로 일본 사람들의 사용에 편리한 땅이름으로 변질된 것이 많았으며, 또 지형도에는 일본 글인 가타카나를 병기해 여기에서 파생된 혼란이 심했다. 오늘날 지도 등에 나타난 땅이름들이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지지>와 서로 다른 것이 많은 것은 지형도 간행 때 일본군이 저질러 놓은 결과다.
정 부회장은 “이 당시 행정구역을 크게 줄임으로써 지명이 많이 소멸됐다. 군(郡)이 377개에서 220개로 줄었고, 면은 4,322개에서 2,521개로, 동리(洞里)는 6만2,532개에서 2만8,366개로 줄었다”며 “행정지명의 수가 줄어든 만큼 지명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우리 고유 지명 찾기, 그 방법은?
정찬모 한국땅이름학회 부회장은 “사람들에게 지명 문제가 일제강점기 때 생긴 폐해라는 점을 인식시킨다면 당시의 역사와 더불어 지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해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뉴스광장
정 부회장은 올해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지명 찾기 운동을 실시한다면 좋겠지만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향토사학자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온 분들에다가 그 지역의 전문가들과 협업도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소규모 활동밖에 할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우리 지명 찾기 운동은 지자체 내에서는 공무원들의 보직이동도 있고 재단에서는 예산 문제가 있는 만큼 서로 협업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사람들에게 지명 문제가 일제강점기 때 생긴 폐해라는 점을 인식시킨다면 당시의 역사와 더불어 지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해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랜 세월 지명 연구에 몰두해 온 정 부회장은 지자체 담당자들도 몰랐던 정보를 알려줬을 때가 가장 보람차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정조 때 이옥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분의 자손들이 없다는 주장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들이 생존하고 있음을 발견, 그 근거로 학술발표회 때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담당자들은 이론적인 부분은 잘 알고 있어도 현장을 직접 가는 경우가 적다 보니 한계가 있습니다. 당시 이옥의 자손들을 찾은 다음 그때 조사한 근거들로 학술발표를 진행했었는데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죠. 아마 그 이후로 제 자료를 근거로 새로운 연구들이 진행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 부회장은 향토사학자들의 지명 연구가 우리 고유 지명에 대해 무관심한 지자체와 도민들을 깨우는 역할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명을 연구할 때 마냥 한자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어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명 자체가 역사인 만큼 향토사를 다루려면 지명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지명 연구를 통해 옛 역사를 알게 되면 올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도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어 “최근 도로명주소로 지명들이 개편되고 있는데 한 개의 이름으로 숫자를 나열해놔 마을의 특색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면 고유지명이 사라지는 동시에 역사도 사라지는 것”이라며 “되도록 작은 마을에라도 고유 지명을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