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일본 육군 참모본부가 간행한 군용 지형도. 1914년 일본이 행정구역 폐합 때 6만여 개의 마을 이름(법정 지명)을 반 정도로 줄여서 이 지도에 표기했다. ⓒ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장 제공
최근 전국 방방곡곡에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일제강점기 시절 비롯된 친일의 잔재가 남아 있다.
경기도에서는 창씨개명과 더불어 대표적인 친일 잔재인 ‘창지개명(創地改名)’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못 쓰게 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했다. 아울러 우리 땅의 고유 명칭까지 일본식으로 변경함으로써 민족 정기를 말살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없애려 했다.
3.1운동 100주년이 된 지금, 일제강점기 때 쓰던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지만 창지개명(創地改名) 된 지명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오랜 세월 그 지역의 역사를 담아냈던 고유 지명은 창지개명 아래 하나둘 사라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 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무관심 속에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사는 곳의 지명이 일본식 지명이고 고유 지명은 무엇이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와 민족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사는 국민으로서의 기본 책무가 아닐까.
■ 창지개명 목적은 식민 통치와 수탈
1914년 경기도의 군현 통합 그림. 경기도뿐만 아니라 전국은 1914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통폐합 과정을 겪는데, 전국적으로 332개 군이 220개 군으로 개편됐다. 이때 경기도의 36개 군은 20개 군으로 줄어들었다. 흔히 ‘구읍’이라 불리는 것이 이때 폐합돼 없어진 군을 일컫는다. ⓒ 경기문화재단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910년에서 1915년에 이르는 기간에 한반도 지도 제작을 완료했다. 그 과정에서 지명을 전부 한자로 기재했다. 순한글 지명도 한자 지명으로 바뀌었고 일부 지명은 일본인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됐다.
특히 1914년에는 ‘행정구역 폐합 정리’라는 명분하에 행정구역 명칭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군은 97개, 30.6%가 폐합됐고, 면은 1,834개, 42.2%, 리·동은 3만4,233개, 54.7%가 폐합됐다. 전체적으로 3만6,134개, 53.8%의 행정구역 명칭이 사라졌다. 이때 경기도의 36개 군도 20개 군으로 줄어들었다.
일제가 시행한 지명 개편의 목적은 수탈을 수월히 하는 데 있었다.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은 식민지 통치 입장에서는 성공했으나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성과 그 지역적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놨다.
당시 일제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기호자나 쓰기 쉬운 글자, 비슷한 음의 다른 글자로 지명을 만들거나 원래 지명과는 전혀 관계없이 두 지명 중에서 한 글자씩 취해 지명을 만드는 식으로 창지개명을 했다. 일본에 존재하는 지명을 가져다 쓰기도 했고, 특히 민족 정기를 말살하고자 지명에 쓰인 한자를 오염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서울 인왕산을 들 수 있다. 기존 인왕산(仁王山) 글자에서 ‘왕(王)’ 자에 일본이 조선 왕을 누른다는 의미로 ‘일(日)’ 자를 붙여 ‘인왕산(仁旺山)’이라 교묘하게 바꿨으나 광복 이후 제자리를 찾았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은 ‘창지개명’을 실시했는데 순수 우리말로 된 땅 이름을 없애버리고자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구실로 진행됐다”며 “그 결과 많은 지명이 사라졌고 아직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사연 있는 지역에서 지자체와 전문가 등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일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 지명에 대해 고칠 건 고치고 털어버릴 건 털어버리는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도로명 주소도 옛 이름을 부여해서 다시 재편성하거나 세분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