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산하의 고장, 연천.
산세 좋고 물 맑기로 소문난 이 고장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이 찾아 그 절경을 칭송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푸른 강과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 연천으로 향했다.
연천7경 중 으뜸인 재인폭포. 27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투명한 유리로 만든 스카이워크에서 발아래를 조망할 수 있다. ⓒ 임익순
조선 시대 문신 홍귀달은 연천을 두고 “산은 첩첩이 돌아오고 물은 구불구불 흐르는” 고장이라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책상머리에 문서 처리할 건 많은데, 산새 울음소리 정이 있는 듯하다”며 한눈을 팔기도 했다.
잔잔한[漣] 냇물[川]이 흐른다는 뜻의 연천은 그야말로 물의 고장이다. 북쪽에서는 임진강이, 동쪽에서는 한탄강이 흘러들어 드넓은 평야를 가로지른다. 게다가 울창한 산림 속에는 비취색 폭포와 수심 얕은 못도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푹푹 찌는 듯한 날이었지만 연천으로 향하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재인폭포
연천을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은 가는 곳마다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약 27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흘러나온 용암이 한탄강을 따라 흐르다 강 주변에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놓았다. 강원도 평강의 발원지부터 전곡읍 임진강 합류점까지 깎아놓은 듯한 수직 절벽과 협곡이 이어진다.
한탄강 서쪽에 자리한 재인폭포도 그 비경 중 하나다. 다른 폭포와 달리 평지가 내려앉아 지장봉에서 흘러내리던 계곡물이 폭포를 이루게 됐다. 너비 30m, 높이 18m.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절경에는 대개 슬픈 전설이 하나쯤 있기 마련.
옛날 재인폭포 인근 마을에 금슬 좋은 광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의 미모를 탐낸 원님이 남편에게 폭포 위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렸고, 그가 줄을 타자 줄을 끊어 떨어져 죽게 했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했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코를 깨문 여인이 살았다 하여 ‘코문리’(지금의 고문리)라 불렀다. 또 광대 남편이 떨어져 죽은 폭포는 ‘재주 부리는 광대’의 한이 서렸다 하여 재인(才人)이라고 불렀다.
동막계곡은 규모나 경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 임익순
수심이 얕아 어린이도 놀기 좋은 동막계곡. ⓒ 임익순
물놀이하기 좋은 동막계곡과 한탄강관광지
연천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물놀이하기 좋은 물가가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막계곡은 규모나 경치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아 북적이지 않아 좋다. 재인폭포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동막계곡을 찾았다.
동막계곡은 수심이 낮아 어린이도 물놀이를 즐기기 좋은 곳으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추천하는 장소다. 아직 휴가철 전이라 물놀이를 즐기는 이는 없었지만,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니 조만간 이곳에서 신나게 물장구질할 아이들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내리쬐는 햇빛에 달아오른 발이라도 식힐까 싶어 물속에 담갔다. 차가운 계곡물이 발끝에 닿자마자 감탄이 새어나왔다.
매콤 달콤한 맛이 일품인 비빔국수. ⓒ 임익순
연천의 고즈넉한 풍경을 곁에 두고 20분쯤 달렸을까,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비빔국수 전문점. 1968년 문을 연 이곳은 연천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은 모두 다녀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커다란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저마다 빨간 입으로 호로록 마시듯 국수를 먹고 있다. 국수 한 그릇과 만두 하나를 시켜 허기를 달랬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국수는 매콤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잃었던 여름 입맛을 되찾을 정도로 맛있었다. 자극적인 맛에 혀가 얼얼할 무렵 토실한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여름에는 국수만 한 보약도 없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릇을 비우고 배를 두들기며 식당을 나섰다.
한탄강관광지는 야영장과 물놀이장, 축구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여름 피서지로 제격이다. ⓒ 임익순
한탄강관광지는 야영장과 물놀이장, 축구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여름 피서지로 제격이다. ⓒ 임익순
하루 중 가장 덥다는 2시가 되어 한탄강관광지에 다다랐다. 한탄강관광지는 맑은 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을 배경으로 조성한 유원지로, 국내 최초로 국제 규격을 갖춘 야영장과 물놀이장 등 재미난 시설이 가득하다. 카라반이 죽 늘어선 오토캠핑장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온다.
생각보다 인적이 드물어 썰렁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놀이장에 다다르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얕은 수심에 대형 미끄럼틀과 분수 등 갖가지 놀이 기구까지 있으니 여름에 이보다 좋은 놀이터가 또 있을까 싶다. 이용 요금도 저렴하고, 캠핑장을 이용하면 할인도 되니 한탄강관광지에 왔다면 물놀이장은 필수 코스다.
선사 체험을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전곡선사박물관. ⓒ 임익순
자연의 경이로움, 한탄강지질공원
연천에서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에는 전곡리 유적도 빼놓을 수 없다. 1977년 봄, 동두천에 주둔한 미군이 한탄강에서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20여 회 발굴 조사를 거쳐 현재는 35만 평 대지에 대규모 선사 유적 공원이 조성돼 있다. 유적을 모아 전시하는 전곡선사박물관에서는 재미난 3D 영상을 상영하고, 장신구 만들기와 활쏘기, 물고기 잡기 등 선사 체험도 할 수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 봄과 여름에는 신록이 절벽을 뒤덮는다. ⓒ 임익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 봄과 여름에는 신록이 절벽을 뒤덮는다. ⓒ
사실 연천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지만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려면 임진강 변에 우뚝 선 주상절리를 둘러보아야 한다. 연천군 임진강은 지난 6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됐을 만큼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그 핵심에 임진강 주상절리가 있다. 주상절리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지점 인근으로, 동이대교를 기억하면 찾기 쉽다.
27만 년 전, 한탄강을 따라 흐르던 용암 일부가 임진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거대한 용암대지를 형성했다. 용암대지는 영겁의 세월 동안 강의 침식을 받아 높이 25m, 길이 2km에 이르는 지금과 같은 절벽이 됐다. 봄과 여름에는 신록이 절벽을 뒤덮고, 가을에는 적벽에 단풍까지 더해져 장관을 이룬다. 겨울에는 찾는 이가 드물어 적막이 감돌지만 이마저도 매력적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때로는 위압감을, 때로는 위안을 준다. 연천은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자연이 준 선물 같은 곳이었다. 한여름에 더위를 잊게 해준 차가운 물줄기도 좋았지만, 자연이 빚어놓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누릴 수 있어 실로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