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태종은 1414년 1월 18일 관제를 고치면서 경기를 좌우도로 나누지 않고 ‘경기도’라 부르게 했다. 이에 따라 올해를 경기도 600년으로 잡았다. ⓒ 경기G뉴스
경기도가 수원 화성행궁에서 16일 오후 1시 30분부터 펼치는 경기도 600년 기념식에 도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2014년 갑오년이 왜 ‘경기도 600년’을 기념하는 해가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도민들이 많다. 이에 대해 도는 ‘경기’의 어원적 의미와 ‘왜 1414년인가’를 설명했다.
경기의 어원적 의미
‘경기(京畿)’란 ‘서울(京)’과 ‘서울 주변지역(畿)’을 일컫는다. 원래 ‘경(京)’은 천자의 도읍을, ‘기(畿)’는 천자가 직접 관할하던 도성 주위 1천리의 땅을 의미했다. 경기제가 제도적으로 완비된 것은 당나라 때였으며,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고려 왕조였다.
수도의 외곽지역을 정식으로 ‘경기(京畿)’라고 한 것은 1018년(현종 9년)의 일이다. 이는 성종 14년에 시행했던 적기현제를 개편한 것이라고 「고려사」에 나온다. 「고려사」 지리지 왕경 개성부조에 따르면, 1069년(문종 23년)에 양광도·교주도·서해도의 39개 주현이 새로이 편입돼 기존의 개성부와 더불어 경기제가 확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 1414년인가?
경기제가 중앙에서 분리돼 지방제도로 자리 잡은 것은 고려후기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의 성립이었다. 고려는 1390년(공양왕 2) 경기를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나누고 각기 도관찰출척사(道觀察黜陟士)를 뒀다. 좌도에는 안산·철원·이천 등이 있었으며, 우도에는 개성·김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조선은 1402년(태종 2년) 경기 좌우도를 합쳐 ‘경기좌우도성(京畿左右道省)’이라 하고 관찰사와 도사를 뒀다. 1414년 1월 18일 태종은 관제를 고치면서 경기를 좌우도로 나누지 않고 그냥 ‘경기도’라 부르게 했다.
일부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을 근거로 1413년을 경기도 원년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제148권 지리지 중 ‘경기’에 의하면 1413년(태종 13년) “좌우도로 나누지 않고 다만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라 일컫고 사(司)를 수원에 두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도는 “「세종실록지리지」가 일종의 인문·지리책”이라며 “또 완성 시점이 1454년(단종 2년)으로 태종 재임기간에 기록된 「태종실록」보다 더 늦다는 점에서 실록에 기록된 1414년을 경기도의 시초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경기도의 한강 남쪽 군현은 좌도, 북쪽 군현은 우도에 편재시킨 경기도좌우주군총도(京畿道左右州郡摠圖). 경기도박물관 소장(보물 제1596호). ⓒ 경기G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