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왠지 숙연해지는 달이다. 현충일(6일)을 비롯해 한국전쟁(25일), 연평해전(15일)과 제2연평해전(29일)이 발발한 달이기 때문. 이런 가운데 전쟁의 아픔을 딛고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탄생시킨 DMZ(비무장지대)로 떠나는 열차가 개통돼 눈길을 끈다. 지난 5월 4일 운행을 재개한 ‘평화열차 DMZ-train’이 그것이다.
화창한 6월, 평화열차를 타고 남한의 최북단역 도라산에서 분단의 아픔을 되새김과 동시에 평화와 화합과 사랑을 싣고 평양을 지나 유라시아 대륙철도를 달리는 유쾌한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5월 4일 운행을 재개한 ‘평화열차 DMZ-train’. ⓒ 권오경 기자
오전 8시 30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평화열차 DMZtrain’ 첫 열차에 탑승하기로 하고 플랫폼을 향해 가는데 저 멀리 보이는 알록달록한 열차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총 3량으로 이루어진 꼬마 기차는 통근용 디젤전동차를 개조해 만들었다. 1호차 평화실(48석)의 외관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증기기관차(미카 모델)를 모티브로 단장했고, 2호차 화합실(40석)과 3호차 사랑실(48석)의 외관은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화합과 평화를 상징한다. 기자가 탑승한 칸은 중간에 위치한 화합실로, 매점과 방송실이 위치한 칸 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매력은 창을 바라보고 놓인 좌석이었다. 알록달록 바람개비 문양이 새겨진 좌석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기차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빌딩 숲과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기차는 금세 푸른 들녘 사이로 달렸다.
창밖 풍경에 넋을 놓고 있을 즈음 친절한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도라산역 출입 신청서를 작성하라’는 안내였다.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출입 신청서를 작성하기란 꽤 난이도가 있는 미션이었지만 무사히 마치고 기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평화, 화합, 사랑을 의미하는 각국 언어, 연잎과 연꽃, 하트 등으로 꾸민 화려한 내부 장식에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했다. 양쪽 창 상단에는 전쟁, 생태, 기차를 테마로 150여 장의 사진이 전시돼 사진갤러리도 겸하고 있었다.
나눠주는 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시 기차에 올라 10분 정도 달리니 어느덧 기차는 민통선 철조망을 통과해 종착지인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 권오경 기자
열차 매점에선 건빵, 전투식량, 주먹밥도 팔아
기차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로는 달리는 열차 앞뒤의 풍경이 실시간으로 펼쳐졌다. 마치 내가 기관사가 되어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는 사이 사연과 신청곡을 받고 있으니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매점에 와서 신청하라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승객의 신청곡이라며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이문세 원곡의 ‘사랑이 지나가면’이 울려 퍼졌다.
매점에서 판매 중인 도시락이나 건빵, 전투식량, 주먹밥으로 요기를 하는 승객들도 있었다. 매점에서는 먹을거리 외에 끊어진 철조망, 등산컵, 병따개, 퍼즐 등의 기념품도 팔았다. 중간중간 두어 명의 승객을 더 태운 열차는 어느덧 임진강역에 도달했고 모두 하차해달라는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조금은 삼엄한 분위기 속에 헌병들의 신분 확인을 거치며 ‘이제 정말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으로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긴장했다. 나눠주는 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시 기차에 올라 10분 정도 달리니 어느덧 기차는 민통선 철조망을 통과해 종착지인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도라산역은 북쪽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이자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꼭 지켜 달라는 승무원과 헌병의 당부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라산역은 북쪽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이자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다. ⓒ 권오경 기자
평화공원 둘러보는 일반관광, 땅굴체험까지 해보는 안보관광
평화열차 DMZ-train을 이용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관광은 일반관광과 안보관광 총 두 가지이다. 이 중 기자가 선택한 관광은 일반관광으로 도라산역에서 내려 도라산역과 도라산평화공원 일대를 둘러보는 코스다. 이날 함께 기차에 오른 승객 중 일반관광을 선택한 사람은 기자 일행이 유일했다.
나머지 승객들은 모두 안보관광을 선택해 도라산역에 마련된 매표소에서 민북관광표를 구입한 뒤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떠났다. 이들은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를 둘러보고 온다고 승무원이 설명했다. 홀로 남겨진 듯한 쓸쓸함과 어디부터 가야 하나 막연함에 놓인 기자에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번엔 한 팀뿐이네~ 관광 해설하면서 한 팀만 안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흔치 않은 기회의 주인공이 됐음에 잠시 기뻐한 뒤 오순희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도라산평화공원으로 이동했다. 일반관광팀에게는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하며 도라산평화공원 일대를 안내해준다.
도라산평화공원은 부시 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라산역을 방문했던 2002년부터 구상을 시작, 2008년 6월 완공됐다. 특히 ‘통일의 숲’은 평화를 사랑하는 경기도민의 헌금과 헌수로 조성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도라산평화공원은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다양한 전시와 조형물로 이뤄져 있다. ⓒ 권오경 기자
스토리가 재밌는 체험 프로그램북
평화공원 내부로 들어서자 등 뒤로 ‘철컹’ 하고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감금되는 건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오 해설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나갈 때가 되면 다시 열어준다”고 말했다.
입구에 비치된 스토리가 있는 재미있는 체험 프로그램북 ‘도도와 라라’를 집어 들고 스르륵 넘겨 보았다. 어린이들에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프로그램북의 속재미를 모두 체험하고 오면 소정의 기념품도 준다.‘우정의 벽 희망 채우기’ 체험장에서는 북한 어린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타일 꾸미기가 진행 중이었다. 11월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체험료 3000원을 내면 타일 한 장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나 메시지를 남길 수 있고 2000장의 타일을 모아 우정의 벽을 채우게 된다. 체험료로 낸 돈은 북한의 결핵퇴치사업 후원금으로 쓰인다. 체험장 옆에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소망 메시지를 적어 매달 수 있는 철조망이 있었다.
역사 지식이 풍부한 오 해설사의 설명과 각종 프로그램을 독점으로 청취 및 체험하며 공원 관광을 마치고 무인카페 ‘꽃사슴매점’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겼다. 오늘 아무도 찾지 않았을 매점 요금통에 2000원을 넣는 것으로 찻값을 치렀다.
오 해설사는 “평화열차를 타고 와서 안보관광을 하기에는 좀 바쁜 일정이고, 일반관광만 하기에는 한가한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보다 적극적인 안보체험을 원한다면 안보관광을, 여유 있게 휴식을 겸하고 싶다면 일반관광이 적합할 듯 보였다.
어린이들은 체험 프로그램북 ‘도도와 라라’를 통해 도라산평화공원을 더욱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다. 속재미를 모두체 험하면 소정의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 .‘우정의 벽 희망 채우기’ 체험장에서는 북한 어린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타일 꾸미기 행사가 11월까지 진행된다. ⓒ 권오경 기자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도라산역
어느덧 11시 50분, 출발 20분 전까지 도착하라는 승무원의 당부를 떠올리며 도라산역으로 향했다. 고요했던 오전과 달리 도라산역은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까? 다시 오른 DMZ-train은 오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다. DMZ-train 승무원도 “오전에는 출입 신청서 작성 안내 등으로 분주했지만 서울로 가는 기차에서는 훨씬 여유롭다”며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돼 있으니 기대해달라”는 말로 승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차창 밖으로 한국전쟁 때 파괴돼 교각만 남은 구 임진강 철교가 그날의 아픔을 증언하듯 폭격당한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1만2000여 명이 남으로 돌아올 때 건넜던 자유의 다리도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기차가 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뢰를 찾아달라는 승무원의 방송이 흘러나왔고 각 호차의 승객들은 지뢰찾기에 바빠졌다. 지뢰를 발견한 승객에게는 기념품이 전달됐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승객들의 사연과 신청곡은 이어졌다.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던 고향을 홀로 멀찍이서 바라보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한 승객의 절절한 사연에 기차 안은 잠시 숙연해졌다. 사연과 신청곡이 이어지는 동안 승객들의 기념촬영을 진행하고 포토제닉을 뽑아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돌아가는 기차 역시 활기로 가득했고 서울역에 도착하고 보니 시계는 오후 1시 15분을 갓 넘긴 상태였다. 5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꿈결처럼 흘러간 기분이었다.
지난 5월 4일 ‘평화열차 DMZ-train’의 첫 운행을 시작으로 중단되었던 도라산역 일반관광이 재개됐다. ⓒ 권오경 기자
● TIP 평화열차 DMZ-train의 어제와 오늘 2002년 첫개통했다 2010년 중단 후 올해 재개
지난 5월 4일 ‘평화열차 DMZ-train’의 첫 운행을 시작으로 중단되었던 도라산역 일반관광이 재개됐다. 도라산역 일반관광은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2002년 4월 도라산역을 개통하고 하루 6회 안보관광열차를 운행하면서 연간 5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용하는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안보관광지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2009년 관광객의 보안사고로 2010년 6월 4일 일반관광이 중단됨에 따라 관광객은 5000여 명 수준으로 급감하고 도라산평화공원은 잠정폐쇄됐던 것. 그간 경기도와 제1보병사단, 통일부(남북출입사무소), 파주시, 한국철도공사, 경기관광공사는 한반도 통일염원을 상징하는 장소인 도라산역의 일반관광 재개를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수십 차례의 협의 끝에 2012년 12월 28일 ‘도라산역 일반관광 추진 공동협약서’를 체결하였고, 이듬해인 2013년 3월 4일 각 기관별 협력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위하여 ‘도라산역 일반관광 재개 이행합의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한국철도공사의 관광전용열차(평화열차 DMZ-train)를 개조 완료함에 따라 1사단의 현장 확인을 거쳐 도라산역 일반관광 재개가 최종 확정되어 지난 5월 4일 첫 정식 운행을 갖게 됐다.
평화열차 DMZ-train은 하루 2회 서울역을 출발(08:30, 13:40)하여 능곡역, 문산역, 운천역, 임진강역을 거쳐 도라산역을 왕복 운행하며 주변 경관 설명 및 인근 관광지 홍보영상 상영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운임은 주말 기준 서울역→도라산역 편도 8900원, 임진강역→도라산역 편도 5000원이며, 1일간 자유롭게 열차를 왕복 이용할 수 있는 ‘DMZ플러스권’을 1만6000원에 판매한다. 평화열차 DMZ-train으로 도라산역을 방문하고자 할 때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DMZ-train에 탑승하면 민통선 출입을 위해 임진강역에서 관광객 전원에 대해 신분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신분 확인이 완료되면 도라산역과 도라산평화공원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도라산역에서 파주시 민북관광표를 구입하면 연계 버스를 통해 제3땅굴 및 도라전망대 등 기존 민북관광이 가능하다. 한편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관광객 맞이를 위해 도라산평화공원을 재단장하고 공원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북’과 ‘우정의 벽’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는 등 관광객 스스로가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