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두 종류로 나뉜다. 가본 적이 있는 곳,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 전자는 추억 여행이고, 후자는 미지(未知) 여행이다. 당연히 그 맛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자가용과 대중교통의 느낌도 그 차이가 확연하다. 구속과 자유, 즉 불편함과 편함의 경계 탓이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봄 여행은 자유분방한 ‘누림’이 최고다. 그 중 경춘선 준(準)고속 열차 ‘ITX-청춘’을 권하고 싶다. <편집자 주>
색다른 여행 분위기를 안겨 주는 ‘ITX-청춘’ 2층 열차. ⓒ G뉴스플러스 허선량
지난 14일 주말 ‘ITX-청춘’을 타고 오랜만에 경춘선을 달려 봤다. 경기관광공사와 코레일이 공동 개발한 여행상품「‘ITX-청춘’ 타고 떠나는 상상나라 남이섬·세미원·양평 레일바이크 기차여행」의 코스를 따라간 것. 남이섬은 추억여행인 데 반해 나머지는 미지여행이다.
여행상품을 출시한 이후 첫출발에 동참한 41명 여행객들의 면모는 각양각색이다. 각자 입고 온 옷의 색깔이, 이상기온으로 예년과 달리 한꺼번에 서둘러 피어난 개나리·진달래·목련·벚꽃처럼 화사하다.
초등학생처럼 가슴에 노란 여행사 표찰을 단 연령층도 다양하다. 나이가 지긋한 노년 부부가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부도 서너 쌍이다. 과년한 두 딸과 함께 온 장년 여인, 머리가 희끗한 노인부터 소녀까지 식구가 제법 많은 가족, 고소한 추억을 담으려는 연인들의 얼굴이 봄 햇살처럼 따스하고 정겹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여행길에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엄마가 아이를 구속(?)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 G뉴스플러스 박관식
경춘선 준고속 열차 ‘ITX-청춘’이 청량리역에서 9시 45분에 출발한 후 얼마 안 돼 ‘코레일투어’ 가이드인 최원주 씨가 여행 일정을 설명한다.
“경춘선을 오고가는 ‘ITX-청춘’은 KTX의 동생뻘로 우리나라 유일의 2층 열차입니다. 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훌륭한 시설의 열차를 처음 타보는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준고속열차로 빨리 달릴 수도 있지만 구간이 짧아 그럴 필요가 없어 천천히 가는 편입니다. 중간에 고속으로 갈 때도 있으므로, 좀 어지러우신 분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남이섬의 명물인 꼬마열차는 곳곳에 정거장이 있다. ⓒ G뉴스플러스 박관식
처음 타보는 2층 열차 탓인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그런 쏠쏠한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가평역에 정차한다.
역전에 대기하고 있던 연계버스에 오르자 최원주 씨가 여행지 소개에 앞서 딱딱한 분위기를 북돋우려 서로 인사를 시킨다.
“저기 무표정하게 앉아 계신 남편 분들, 스마일~ 미소 지으세요. 오늘 함께 여행하면서 자주 마주칠 테니까, 앞뒤 사람 보면서 서로 인사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가이드 덕분에 화기애애해진 버스는 10분도 안 돼 남이섬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제부터는 자유 시간이다. 10년 만에 온 남이섬은 그간의 명성답게 보다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다. 다수의 관광객이 찾는 만큼 남이섬에 시설이나 볼거리를 늘이는 게 당연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가의 ‘수유 모자상’은 행인의 발길을 잠시 묶어둔다. ⓒ G뉴스플러스 허선량
여행객들은 남이섬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자칫 남미 음악인들의 연주에 몰입했다가는 100분의 자유가 흠집나기 십상이다. 게다가 남이섬의 진수로 통하는 진입로는 인파로 넘친다. 중간마다 볼 만한 구경거리가 부지기수다. 점심 식사로 옛날 도시락을 맛보는 일까지 감안하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특히 외국인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대다수가 동양인으로 그 중 태국인이 유독 많다. 태국의 설날인 ‘물의 축제’ 송크란(4월 13~15일) 기간을 맞아 한류의 근원지를 찾은 것이다.
남이섬 관광안내센터 가이드는 “태국인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 오늘 입장 예상 인원은 1만명 정도 될 듯하다”며 “최근 300인승 여객선을 새로 들여와 배를 타는 데 그전처럼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귀띔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위에서 팔짝 뛰어올라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의 비상이 시원스럽다. ⓒ G뉴스플러스 박관식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용준과 최지우가 걸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마치 태국의 한 지역 같다. 훗날 「겨울연가」가 남이섬을 먹여 살릴 줄 아무도 몰랐다는 데 묘한 ‘부침(浮沈)의 아이러니’가 엿보인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연출한 데 비해 무료한 가로수길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주변에 크고 작은 조각상을 조성해놓은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미소가 인색하다는 것. 경기도의 여행지를 알리는 데 부드러운 미소만큼 훌륭한 호객 서비스는 없기 때문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신기했던지 무심코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이 신비롭다. ⓒ G뉴스플러스 허선량
시간에 쫓겨 남이섬을 빠져나온 일행은 가평 양수리 세미원으로 향한다. 물과 꽃의 정원으로 한여름이라야 화려한 연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항아리 모양의 분수대인 한강 청정 기원제단,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이는 관란대, 화가 모네의 흔적을 담은 모네의 정원, 전통 정원이 아름다운 유상곡수(流觴曲水), 수표(水標)를 복원한 분수대, 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풍기대 등이 볼거리다.
비록 연꽃은 없지만 때마침 피어난 흐드러진 봄꽃의 향연과 양수리 한강 풍광이 화려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쉽게 보기 힘든 세미원만의 그림이다. 가족과 동행한 중년 여인은 딸들과 함께 논둑에 쭈그려 앉아 버릇처럼 쑥을 뜯는다. 성남에서 온 아이 준영(5)은 아빠의 품에서 빠져나와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이이들의 엄마도 소풍 나온 듯 즐겁다. 모두가 세미원의 일부로 녹아든다.
바람을 가르며 강가를 달리는 양평 레일바이크 시승 체험 여행객들. ⓒ G뉴스플러스 허선량
세미원에서 1시간 동안 눈요기한 후 버스를 타고 양평 레일바이크 탑승대로 간다. 예전의 철로를 이용한 왕복 6.4km의 레일바이크 탑승은 색다른 체험이다. 남이섬과 세미원이 정적이었다면 이곳은 동적이다. 시속 15~20km의 속도로 철로 위에서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레일바이크는 정선, 문경, 곡성 섬진강 등에서 운행하지만 수도권에서는 양평이 유일하다.
레일을 따라 달리는 강가의 시원한 바람이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준다. 두 명 혹은 네 명이 서로 합심해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협동심이 가족과 연인의 의미를 새삼 ‘되새김질’시켜 준다. 평소 운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리가 뻐근할 만큼 힘들긴 해도, 그래서 도전해 볼 만하다.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가는 스릴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래선지 여행을 마친 이들의 얼굴이 뭔가 얻은 듯 평화롭다.
레일바이크 시승을 마치고 지척에 있는 용문역에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를 탄다. 즐거운 여행이라도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즐긴 탓에 피로가 금세 몰려온다. 행복한 여행에 따른 권태감이다. 다행히 ‘코레일여행’답게 기차 좌석이 있어 편하게 앉아서 출발지로 귀착했다.
세미원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소녀의 비상이 위태롭지만 사뿐히 안착한다. ⓒ G뉴스플러스 박관식
이번에 처음 여행상품으로 선보인 ‘ITX 타고 떠나는 남이섬·세미원·양평 레일바이크 기차여행’은 전화(1544-4590)나 인터넷(www.korailtour.com)으로 예약할 수 있다.
‘ITX-청춘 타고 떠나는 상상나라 남이섬·세미원·양평 레일바이크 기차여행’은 매주 화·토·일요일에 청량리역에서 오전 9시 20분부터 시작한다. 1인 상품요금은 대인 5만5천원, 소인 4만5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