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도립극단이 제작, 공연하는 ‘제 12회 G-mind 정신건강연극제’의 연극 <럭키데이>가 수원시 장안구민회관 한누리 아트홀에서 펼쳐졌다. ⓒ 정영진 기자
여러분의 삶은 행복한가요? 살만한가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저는 아프지 않게만 죽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분들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리라 봅니다. 가볍게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분들도 있겠지만, 정말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해본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은 고(苦)’라고 하는 불교의 말처럼 사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부터 미래에 대한 두려움, 커다란 좌절과 실패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도 조심스럽고 내 뜻대로 잘 안 되어 어렵습니다. 이밖에도 이곳에 다 나열하지 못할 만큼의 다양한 이유와 사연들이 있겠지요.
제가 지금 소개하려는 연극 <럭키데이>에도 다양한 이유와 사연을 가진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들이 죽고 싶어 하는 사연과 이유도 사실상 하나의 공통된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렇게 수없이 입 밖으로 내뱉고 머릿속으로 생각해오던 ‘죽음’을 실현할 기회가 정말로, 너무나도 쉽게,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살 거야.”
“음,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죽고 싶어.”
평소 삶을 비관하며 죽고 싶어 하던 여섯 명의 인물이 버스를 타고 가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 정영진 기자
보통 이러한 주제의 연극이 ‘다시 한번 도전해봐라’, ‘용기를 내고 희망을 가져라’ 등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진부한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대중이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이번 연극 <럭키데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소중함,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말하며 ‘주변 사람들의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삶의 의지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대해줘야겠다는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양면으로 도움이 되는 연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보며 주변 관람객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정신건강’이라는 주제가 어찌 보면 그리 흥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삶을 비관해오던 사람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이야기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극 <럭키데이>는 나와 비슷한 인물, 혹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 그리고 공감 가는 사건과 소재를 통해 저를 포함한 여러 관객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여섯 영혼 앞에 신의 대리인 ‘신대리’가 나타나 살지 죽을지 결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 정영진 기자
학창시절 따돌림을 받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현재는 취직도 안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중년 남성.
힘들게 자식들을 키워놨는데 그 자식들의 자식까지 맡아 키우게 되어 스스로를 ‘할마(할머니+엄마)’라고 칭하는 노년의 여성.
대학 입시를 삼년 째 치르고 있어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형, 누나와 비교 받고, 부모님으로부터 매일 잔소리를 듣는 삼수생.
치매에 걸렸지만 장성한 자식들이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아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끼는 노인.
고아로 외롭게 자라왔는데, 학교 친구들이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따돌림을 당하는, 그리고 오늘 자살하러 가기 위해 이 버스에 탄 여학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홀로 애지중지 키워온 딸을 세월호 참사로 한순간에 잃어버린 아버지까지.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자신의 사연을 말하며 삶을 선택할지 죽음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다. ⓒ 정영진 기자
여섯 인물의 하소연을 들으며 그들의 아픔을 느끼고, 그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이지만 아빠 생각을 하던 착한 딸을, 홀로 정말 힘들게 키워온 예쁜 딸을 억울하게 잃은 아버지가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모든 관객이 다 같은 마음으로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아서 마음에 더욱 은은하게 다가왔고, 국민 모두가 알고 있고 공감하는 사건이기에 관객들의 마음을 더욱 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도 크지만, 아버지를 더욱 힘들게 한 건 보상금을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뭘 더 얻어내려고 하느냐, 왜 세월호 관련 기사가 아직까지도 올라오느냐 등을 지적하는 몇몇 따가운 시선이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저도 많이 공감하며, 화나고 씁쓸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외에도 요즘에는 정말 다양하고 무수히 많은 사건이 기사로 대중에게 알려지는데, 댓글들을 살펴보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심사숙고해보지 않고, 편협한 관점과 감정에 치우쳐 휘갈기듯 내지른 무성의한 글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런 댓글은 당사자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나아가 인간 불신을 양산하고 우리 사회의 화합을 저해합니다. 이러한 현 세태를 볼 때마다 저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비단 딸을 잃은 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연극에 등장하는 다른 다섯 명의 인물들도 사실상 전부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어 죽음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들여다보면 다 하나의 공통된 이유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취직이 안 되고, 대학 입시를 삼 년째 치르고 있고, 고아라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비난하고 무시하는 타인의 시선이 더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가족, 친구로부터 상처를 받고 허탈감을 느끼며 죽음을 생각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오열하며 딸을 잃은 슬픔과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장면. ⓒ 정영진 기자
이번 연극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는 ‘삶의 소중함, 나를 사랑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살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숨어있는 주제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자’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입장에 무조건 동조하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함부로 말을 내뱉기 전에 정확한 사실을 알아보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정도의 노력을 한 뒤 내 언행을 어떻게 취할지 판단하자는 것입니다. 말을 하든, 댓글을 달든, 무엇을 하든 간에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남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기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이 더욱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연극의 끝에서 여섯 명의 인물들이 모두 살기로 결정한 데에는 서로간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 더 나아가 사랑이 큰 몫을 했습니다. 자신의 사연을 말하며 괴로워하는 인물에게 나머지 인물들이 ‘우리가 가족이 되어주겠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등의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삶의 의지를 되살려주었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서로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모습, 그래서 결국 힘을 내어 함께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용기를 내라’라고 그 사람에게만 모든 짐을 맡기는 것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봅니다. 지금 시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극 <럭키데이>는 현재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전해주는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꼭 보아야 할 연극 <럭키데이>! 다음번 공연은 5월 25일에 부천 오정아트홀에서 열리고, 이외에도 앞으로 10월 30일까지 9차례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공연 일정표를 잘 살핀 뒤, 시간 내어 연극을 꼭 보길 추천합니다.
‘제12회 G-mind 정신건강연극제’는 연극 <럭키데이>로 경기도 내 16개 지역에서 총 16회 순회공연을 펼친다. ⓒ 정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