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정훈이가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에서 대여받은 보행보조기구를 이용해 걷기 연습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제공
우리 사회가 각박하다, 아니 냉혹하다는 말이 맞겠다. 아이들은 삐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힌 어른들의 표적이 돼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입고, 노인들은 자식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썩은 고목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그뿐인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여성, 외국인노동자, 결혼이민자들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며 음지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경기도의 손길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서강대 법학과 입학한 김영관 군…보조기구가 큰 힘
당신이 전신마비로 평생을 누워지낸다고 가정해보라. 계속 누워 지내 폐기능은 약해져 호흡기 질환을 자주 앓고, 입과 눈, 오른쪽 검지손가락, 팔목만 약간 움직일 수 있으며 그 외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면? 그런데 당신의 목표가 법조인이 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올해 초 한 중증장애인이 서강대 법학과에 진학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근육병이 진행돼 초등학교 3학년부터 누워 지낸 김영관(남·20·경기도 광주) 군. 부모 도움없이 생활이 불가능했던 김군은 재활학교 근처에 살면서 치료와 학업을 병행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전동휠체어에 누운 채 이를 조작하면서 학교생활을 해왔다. 당시 김군의 꿈은 법학을 공부한 후 부모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강의를 들으며 특수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일반교육과정을 습득한 김군은 고교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2등급을 유지할 정도로 학업성취도가 뛰어났다. 하지만 김군의 손발이 돼주는 어머니의 수고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더구나 김군의 여섯살 아래 동생 또한 김군과 같은 근육병을 앓아 부모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했다. 김군에겐 홀로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게 절실했다.
김군이 부모와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ATRAC)를 방문한 것은 지난 2007년. 상담, 평가서비스를 거쳐 센터는 김군의 상태에 맞게 4가지 보조기구를 지원했다. 먼저 전동휠체어 조작시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이스틱을 개조했다. 노트북 사용시 손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사용가능한 특수마우스와 개인위생 신변처리 보조기구, 수면방해의 원인이 되는 체위변경 문제를 해결할 다기능전동침대 등이 대여됐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헤쳐나가고 학업능률도 오르면서 김군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첫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김군의 두번째 목표는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법학과 정치의 성지인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제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멀지 않아 보인다.
장애인 보조기구 지원을 위해 경기도가 지자체 최초로 설립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내 전시·체험장에는 중증장애인들이 타인의 도움없이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유니버셜체험관이 마련돼있다. 센터 직원이 시연을 보이고 있다. ⓒ G뉴스플러스 임대호
비단 김군의 사례만이 아니다.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를 통해 6년간 5천500여명의 도내 장애인들이 보조기구를 지원받았다. 센터 이용자만도 1만2천700여명에 이른다. 그들의 삶에 ‘편리’를 부여해준 것이다.
오도영(남·43)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연구실장은 20일 “보통 복지서비스는 오래 시행돼야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는데 보조기구는 적용하는 순간부터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장애인들에게 보조기구는 생명입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휠체어를 주면 바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뇌성마비를 앓아 걷지 못하던 한 아이는 기립보조기구를 이용해 근력강화훈련기를 거쳐 6개월만에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닙니다. 감동 그 자체예요. 그렇지 않나요?”
현재 전국 등록 장애인수는 220여만명. 이 중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50%가 채 안 된다. 장애인 중 절반 이상이 보조기구가 필요함에도 비용이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도내 장애인수는 전국 광역지자체 중 가장 많은 40만7천명으로 이들에 대한 보조기구 지원이 시급하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지난 2004년 4월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설립한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다. 이 센터는 국내 최초의 재활공학서비스 전문기관으로서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구를 제공하고 보조공학 관련 연구 및 산업화 지원을 하고 있다.
경기도는 재활공학센터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07년 11월 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보조기구 지원서비스사업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듬해인 2008년에는 수원시 오목천동에서 지금의 화성시 병점동으로 센터가 확대 이전했다. 도 지원액도 매년 증가해 2004년 2억8천만원에서 올해 5억7천6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센터는 보조기구가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전문상담, 평가, 기기적용을 통해 맞춤형 보조기구를 대여 또는 교부하고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주요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다. 또 재활공학 활성화 방안연구와 임상연구, 보조기구 개발, 보조기구 공모전 및 국제심포지엄 개최 등을 시행해왔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시행하는 장애인재활보조기구 무료교부사업과 관련해 도내 31개 시군의 자문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보조기구 지원사업은 대여와 교부로 나뉜다. 대여는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1년간 무상 실시하며, 외부후원을 받아 시행하는 교부는 타 시·도 장애인들도 서비스 대상자로 포함해 보조기구 사용이 필요없을 때까지 이용토록 했다.
현재 센터 내 100평 규모의 전시체험장에는 893개의 보조기구가 구비돼있다. 국내 유통되는 보조기구가 3~400가지 종류임을 감안할 때 국내 최다 규모다. 전동이동 기립 보조기구, 목욕 신변처리 보조기구, 착석 자세유지 보조기구, 리프트, 컴퓨터보조기구, 환경제어장치 등 다양하다. 장애인이 타인의 도움없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제품들을 설치한 체험관도 마련돼있다.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가 보유한 기립형 전동 휠체어 시연 모습. ⓒ G뉴스플러스 임대호
센터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총 1만2천777명이 센터를 이용했다. 올해만 254개 기구가 대여됐고 379개 기구가 후원으로 교부됐다. 매년 센터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이용자 만족도 조사결과 86~7%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오도영 실장은 “일반적으로 복지서비스 만족도가 6~70%를 넘기 힘든데 90% 가까운 만족도는 센터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보조기구 지원서비스를 받기위해 타 시·도에서 경기도로 이사오는 경우도 있다”고 귀뜸했다.
보조기구 지원방식은 두 종류다. 이동이 가능한 장애인은 의뢰 후 센터를 방문하면 된다. 상담, 평가서비스를 통해 신체유형에 맞는 보조기구를 찾는다. 부적절한 적용으로 불편을 초래하거나 장애에 따른 신체적 변형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공학적 평가와 신체적 평가를 병행 실시한다. 보통 한두 시간이 소요되거나 반나절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어 2주 또는 한달 정도 시험적용기간을 거친다. 안전사고나 신체적 불편을 미리 없애기 위한 조치다. 대여나 교부된 이후에도 사후관리를 실시한다. 이용자의 70%가 성장기 청소년들이다보니 신체적 변형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기구 조작이 미숙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수시로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특히 전동휠체어의 경우 길거리에서 조작을 잘못하면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어 사후관리가 무척 중요합니다.”
거동이 어려운 중증 와상장애인들의 경우 센터 직원들이 직접 찾아간다. 전화상담을 통해 이용자의 상태를 미리 파악한 후 적용할 수 있는 보조기구와 장비, 평가도구를 들고 도내 31개 시·군 전역으로 출동한다. 따라서 직원들의 노고가 만만치 않다.
각 시·군 장애인들에게 보다 빨리 보조기구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북부나 남부지역에 2,3개 분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오 실장의 바람에 수긍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조기구 지원서비스, 선진국보다 20년 뒤쳐져”
센터에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장애인용 재활보조기구들이 진열돼있다. ⓒ G뉴스플러스 임대호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는 국내 보조기구 지원사업의 씨앗이 됐다. 파급효과도 상당했다. 주요 언론에 소개됨은 물론, 센터를 벤치마킹한 보조기구 지원센터나 사업장이 전국에 걸쳐 43개소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열악한 인프라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우리나라 보조기기 관련 정부예산은 미국의 5%, 북유럽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유통되는 보조기기 종류를 보더라도 선진국과 간극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3~400가지 기구가 유통되고 있다. 열에 아홉은 외국제품이다. 반면 미국은 2만5천가지, 북유럽은 3만가지 종류의 보조기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원하는 기구를 지원받을 수 있다. 심지어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게끔 자동차를 개조해 제공하는 사례도 있다.
오도영 실장은 “우리나라 보조기구 지원서비스는 선진국에 비해 20년 정도 뒤쳐졌다”며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는 이제 출발선상에 서있는 셈”이라고 단적으로 지적했다.
선진국으로 꼽히는 북유럽국가들의 경우 광역시마다 장애인보조기구 지원센터가 1~2개소 설치돼있고 한 개소마다 예산만 100억원에 달한다. 직원수도 5~60명이 기본이다. 미국은 50개주에 130여개의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보조기구 지원서비스는 필연적으로 경제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서비스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장애인 재활복지서비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인력을 투여해 장애인을 돌보는 서비스에서 보조기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보조기구를 활용하면 노동력과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국가가 장애인에게 연금이나 수당 등 공적급여를 지급하는 지출비용보다 보조기구를 지원해 장애인에게 직업을 갖게 하고 납세자로 만듦으로써 국가가 걷을 수 있는 세수(稅收)가 6~20배 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적급여를 무턱대고 지급하기 보다 일정금액을 들여 보조기구를 지원해 장애인의 사회활동을 보장하면 그에 따른 국가 수입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같은 차원에서 1980년 이후 선진국 중심으로 보조기구 보급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초기비용은 들지만 지원 이후 전체적인 국가예산은 절감됐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 보조기구산업시장은 1천억달러 규모다. 이는 전세계 의료기기 시장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수준이며, 전세계 온라인게임시장의 2배 규모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보조기구산업시장이 전무하지만, 경제소득과 증가와 맞물려 복지서비스 패러다임의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오도영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연구실장. ⓒ G뉴스플러스 임대호
장애인 지원 인프라가 잘 구축돼있던 북유럽국가들은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터 보조기구 지원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인프라가 허약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기부터 시작하면 충분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2~3년새 보조기구 지원서비스는 사회적 반향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2006년말 500억원이었던 정부의 보조기기 관련 공적급여도 불과 2년만에 1천억원 규모로 2배나 증가했다. 지난 3월에는 ‘보조기기 지원 및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서 발의된 상태다.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장애인 보조기기 지원서비스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구축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오 실장은 “이전에는 정부의 장애인 보조기기 관련 공적급여가 워낙 없었으니까 증가폭도 큰 것”이라며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장애인특수교육법,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보조기구 지원항목이 포함돼있기 때문에 보조기기 지원서비스가 더욱 약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중앙정부의 의지다. 장애인 보조기기 지원을 경기도가 선도하고 있지만 광역단위로 사업을 진행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오 실장은 “지자체가 훌륭한 사업을 추진하면 중앙정부 입장에서 정책을 세워야하는데 중앙정부 정책결정자들의 인식과 열정이 부족한 것 같다”며 “광역단위 사업으로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정책과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기도, 장애인 자립 강화 및 장애인 편의시설 확대에 주력 |
화성시 병점동에 위치한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 G뉴스플러스 임대호
경기도는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와 더불어 장애아 재활치료교육센터 19개소를 설치 운영중이다.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해 내년까지 전 시군에 1개소 이상 설치할 계획이다. 지난 2005년부터는 저소득 장애인에게 가사, 외출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도우미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 최초로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24시간 통신중계서비스센터를 설치해 연간 9만5천430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영상전화기도 1천486대를 보급했다.
장애인의 문화활동 기회를 제공하고자 장애인 최적관람석 설치·운영 조례를 제정해 도내 문화의 전당 등 61개 시설에 최적관람석 1천916석을 설치하고 공연관람권을 2천500명에게 제공한 것도 눈에 띄는 성과다.
노완호 도 장애인복지과장은 “앞으로 도입되는 장애인수당, 장애인아동수당, 장애인연금제도 등을 통해 도내 장애인들의 생활안정을 확고히 다져나가고, 도내 직업재활시설 및 자립장업장 92개소에서 장애인 일자리창출에 주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도는 장애인일자리를 1차 영농산업에서 찾고자 농촌진흥청과 연계해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확충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 과장은 또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를 통해 보조기구 지급을 늘려 장애인들의 자립을 강화하는 한편, 장애인편의시설을 확대해 장애인들이 민간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토록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