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후의 자랑이자 특징이었던 뚜렷한 사계절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가을은 스치듯 잠시 왔다가 금방 겨울 사이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겨울역으로 향하는 간이역이 돼 버린 가을. 짧아서 더 아쉽고 애틋한 가을날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길을 소개한다.
칠면초와 나문재 등 염생식물의 색이 짙어지고 갈대와 억새가 우거지는 가을이 갯골길을 걷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 G-Life
소금처럼 맛깔나는 염전길 ‘시흥 늠내길과 갯골생태공원’
늠내길은 수도권에서 산·들·바다를 모두 품은 시흥시의 친환경 도보 길이다. 그중 갯골길은 경기도 유일의 내만갯벌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옛 염전의 풍광을 누리면서 걷는 길이다. 칠면초와 나문재 등 염생식물의 색이 짙어지고 갈대와 억새가 우거지는 가을이 갯골길을 걷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추천코스는 갯골생태공원에 주차를 하고 갈대밭과 부흥교를 거쳐 다시 공원으로 돌아오는 갯골길 하프코스로 2시간가량 소요된다. 갯골생태공원은 세계에서도 희귀한 내만갯골이 있는 곳이다. 내만갯골이란 내륙 안쪽으로 깊숙이 형성된 갯골을 가리킨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붉은발농게와 방게 등 개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도 만날 수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6층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갯골생태공원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주소 경기도 시흥시 동서로 287
문의 031-488-6900
독산성 성곽에 걸친 보적사에 오르면 우선 탁 트인 전망이 압권이다. ⓒ G-Life
가을날의 파노라마 ‘오산 독산성길’
경기도 삼남길 제7길인 독산성길은 우뚝 솟은 독산성에서 유적지인 산성과 발전된 도시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기지로 왜구를 물리친 세마대와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을 지나는 역사의 길이기도 하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면 독산성길 전체보다는 독산성에서 고인돌공원까지의 구간을 추천한다. 독산성을 오르는 구간은 꽤 긴 오르막이다. 특히 독산성 입구에서 보적사까지가 가장 가파른데, 다행히 숲이 우거지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걷기에 썩 괜찮은 길이다. 장거리 산행이 부담스러우면 독산성 동문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독산성 성곽에 걸친 보적사에 오르면 우선 탁 트인 전망이 압권이다. 멀리 동탄신도시와 수원 시내 등 주변 도시의 가을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아담한 경내와 굽이굽이 이어지는 성곽은 천천히 즐겨 보기를…. 세마대 산림욕장으로 내려올 때는 포장된 가파른 길을 내려와야 하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도 이곳에서 오산 고인돌공원까지는 야트막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 쉬운 길이다. 고인돌공원은 선사시대 고인돌이 아파트를 배경으로 늘어서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주소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55
남양성모성지는 천주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소풍 삼아 따스한 햇살 속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즐길 수 있어 좋다. ⓒ G-Life
포근한 가을의 축복 ‘화성 남양성모성지’
특별히 종교가 없더라도 무언가 절박하고 스스로 답을 찾기 어려울 때면 어디에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 남양성모성지는 따뜻한 위안이 돼 준다. 작은 촛불에 마음을 담고 숲으로 이어지는 기도의 길을 걸으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듯싶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 때 수많은 무명의 평신도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잊혔다. 그러다 1991년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모 순례지로 공표되며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게 됐다. 매일 많은 신도가 찾지만 부산하지는 않다. 나지막이 들리는 기도 소리에 절로 숙연해지고, 잘 가꿔진 정원과 숲이 성모의 품 같은 편안함을 줄 뿐이다. 천주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소풍 삼아 따스한 햇살 속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인근에 위치한 사강시장과 제부도 일대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문의 031-356-5880
홈페이지 www.namyangmaria.org
가을이 머무는 숲길을 걸어 경내에 접어들면 웅장한 크기의 용문사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 경기관광공사
은행나무의 전설 ‘양평 용문사’
산세가 수려하고 계곡이 깊은 용문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 일컬어졌다. 가을 단풍철이면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 장관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용문사 일주문에서 시작된다. 붉은 기둥 위에 용이 내려앉은 일주문은 속세와 절집을 나누는 문이 아니라 마치 현실과 꿈의 경계라도 되는 양 몽환적인 총천연색 절경을 뽐낸다.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가을이 머무는 숲길을 걸어 경내에 접어들면 비로소 웅장한 크기의 용문사 은행나무를 만나기 때문이다. 높이가 42m나 되는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다. 추정 수령이 1100년이 넘어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됐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많은 전설을 품고 있다. 의상대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이 나무로 자랐다는 이야기, 신라의 마지막 세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심었다는 이야기 등 다양하다. 이 영험한 은행나무에 작은 소망을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 1000년을 넘긴 용문산의 수호신이 각별히 보살펴 줄지 모를 일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휴식을 원한다면 고즈넉한 용문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다.
주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문의 031-773-03797
홈페이지 www.yongmunsa.biz
등산로와 성곽이 잘 보존된 남한산성은 가을 산행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 경기관광공사
가을 산행과 식도락 ‘광주 남한산성’
아름다운 풍경은 기본이고 등산로와 성곽이 잘 보존된 남한산성은 가을 산행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하고 출출한 속을 달래줄 맛있는 음식점이 많은 것 또한 장점이다. 성곽의 길이가 12km에 달하는 남한산성에는 총 5개의 등산로를 겸한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그중 1코스는 남한산성 성곽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길이다. 산성 종로로터리를 출발해서 북문과 서문을 거쳐 남문으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비교적 평이하므로 안전하게 산행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을에는 시작점인 종로로터리 바로 옆 침괘정 일대의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장관을 이룬다. 서문에서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은 굽이굽이 휘어지는 성벽 너머 풍경이 압권이다. 관악산·북한산·도봉산 등을 배경으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 4코스는 가을 단풍에 특화된 길이다. 남문에서 남장대터를 지나 동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화려한 남한산성 단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단풍이 지더라도 섭섭해 할 필요는 없다. 장판 무늬처럼 바닥에 떨어진 단풍을 보는 재미와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나뭇잎들이 늦가을 산행의 좋은 친구가 돼 줄 테니 말이다.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일원
북한산성에서 가을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은 고양누리길 1코스인 북한산누리길이다. ⓒ 경기관광공사
매력을 몰라봐서 미안 ‘고양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그동안 남한산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몰랐던 만큼 경관은 물론 역사·문화재적 볼거리도 풍부하다. 북한산성에서 가을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은 고양누리길 1코스인 북한산누리길이다. 멋진 바위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북한산의 절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을 향한 길이 아니라면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도 충분하다. 화강암 바위 봉우리들이 불끈불끈 솟아 있는 북한산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산이다. 북한산 누리길은 이토록 매력적인 북한산자락 아랫부분을 따라 산책하듯 걷는 코스다. 시작 지점은 북한산성 입구로 대부분이 북한산 둘레길과 겹쳐 있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나무다리인 둘레교를 건너야 누리길이다. 둘레교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원효봉·백운대·만경대의 가을 풍경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 코스는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을 선택하면 본격적인 산행이다. 1시간쯤 오르면 바위틈의 작은 암자인 원효암, 북한산에서도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원효봉이 나온다. 숨이 차지만 넓게 펼쳐지는 전망은 흘린 땀, 그 이상의 달콤한 보상을 안겨 준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