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 쪽에서 바라본 운길산 전경. ⓒ 최영환(산악인)
운길산은 구름이 쉬었다 가는 산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쉼 없이 내려오다 두물머리 합수에 만나면 구름들이 멈추어서 그 반가운 생명의 해후를 지켜본다.
운길산 아래는 물도 쉬었다 간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춘천, 가평, 대성리를 거쳐 내려오는 북한강의 거친 물결은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정선, 영월, 단양, 충주, 여주로 흘러온 남한강의 강물과 살을 섞기 위해 쉬었다 간다.
왕건의 고려 건국과 조선 세조의 수종사에 얽힌 전설에서부터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수많은 선사와 묵객들이 머무르고 올랐던 운길산은 이제 운길산역이 개통되어 수도권 주민에게 더욱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운길산은 휴일 오전 늦은 아침밥을 먹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들이할 수 있는 산이다. 이른바 다산능선이라 불리는 운길산-예봉산 코스(6~7시간)로 산행을 잡지 않는다면, 운길산을 오르고 근처의 다산유적지와 실학박물관 탐방을 한나절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경기도 실학박물관 입구. ⓒ 최영환(산악인)
운길산(610m)은 서울에서 팔당을 지나고 양수리에서 청평 방향으로 4km 거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강에서 오르니 정상까지 오르막이지만, 산 중턱 윗부분에 있는 수종사까지 가파른 시멘트도로가 나 있어 걸어가거나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수종사에서 운길산 정상까지는 30분(1km) 정도 오르면 되나, 정상 부근까지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다소 불편하다. 차량보다는 걸어서 여유롭게 구불구불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뒤편으로 시원한 강물이 흐르고 있어 즐겁다.
다산은 그의 시문집 제1권에서 운길산에 오르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산 위를 바라보니 달리고 싶어 솔바람이 이누나
겨드랑이에 들녘 나무 다정해 곱기도 한데 산중 길 드높아라
바위투성이 중도中道에서 지칠까 염려스러워 아이들도 지팡이 짚게 하였네
차츰 높이 오르자 뜻이 호방해 옷과 띠를 모두 다 풀어버렸네
구불구불 우거진 숲을 뚫으며 아련한 산등성이 끝내 오르니
숲이 트여 저 멀리 내려다보고 바람 불어 고개를 들어 쏘이네
마음에 맞는 곳을 만날 때마다 청아하게 앉았다 다시 오르니
길이 돌아 산 모습 다시 특이해 어서 빨리 푸른 벽 보고 싶어져
암자가 아스라이 흥미 끄는데 절문은 강을 향해 활짝 열렸고
돌탑은 산봉우리 놓여 있는 데 꼭대기 드높아서 하늘 닿을 듯
석양빛이 높은 산 내리깔리자 또렷하게 산줄기 드러나는데
겹겹산은 달리는 뱀이 서렸고 깎아지른 절벽은 시퍼런 창칼
올라올 때 그 길은 까마득한데 구름 노을 두껍게 이미 쌓였네
가을날 새털같이 작은 저 부암鳧巖 지난 날 내가 한 번 거쳐 갔던 곳
(다산 시문집 제 1권, 시)
가파른 산길을 올라 산마루에 오르면 고즈넉한 옛 절터가 나오는 데, 소나무 숲과 서어나무 군락이 어우러져 있고 산 아래 너른 강물이 보이는 이곳이 수종사(水鐘寺)다. 일주문 앞의 매점은 다소 어색하며 을씨년스런 해우소나 어수선한 절 주변은 정비가 필요한 듯하다. 허나, 조금 걸어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산신각과 북한강과 남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다선방, 지방문화재 제22호인 팔각 5층 석탑과 500년이 되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수종사는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고찰로 해동 제일의 사찰이라 옛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고려태조 왕건의 전설이 담긴 수종사(水鐘寺)
수종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상서로운 기운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세종 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정의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탑 수정사리함 (사리 13과)을 청자 항아리에 담아 부도 안에 모셨다. 1458(세조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 아닌 바위 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고 한다. 세조는 굴 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방백에 중창을 명하였으며,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때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다음해인 1459년에 수종사탑을 건립하였다. 이어 수종사는 조선 후기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께 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 곳이다.

조선 후기 이건필의 작품으로 다산의 고향 두물머리를 그린 풍경화. ⓒ 최영환(산악인)
다산은 그의 시문집 제1권에서 ‘수종사에서 잠을 자며’라는 시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감청색의 산빛이 높이 솟은 곳 누각이 이 산속에 붙여 있다네
문을 열면 강물이 들어오고요 바윗돌 곁에 닿아 서로 의지해
불교가 지난 옛날 전성하던 때 신선구역 마침내 빛이 났는데
신라 떄는 태자가 다녀갔고요 세조의 용의 깃발 거동했었지
성쇠는 시대 따라 같지 않은데 구경꾼 근년에는 드물게 오네
푸른 덩굴 나그네 길을 덮었고 메마른 전나무에 적막한 절간
텅빈 누각 북틀이 쓰러졌는데 긴 행랑엔 신틀이 누워있구나
벽화는 비에 젖어 빛이 바랬고 솥무늬는 녹슬어 부풀었는데
맑은 물은 천액天液이 흘러내리고 환한 꽃 저녁 비에 윤기가 난다
아련히 먼 곳까지 둘러보다가 눈길 돌려 향그런 초목 대하네
비탈 골짝 저물녘 서로 합하고 구름 노을 저 멀리 살짝 나누나
즐거움에 오히려 나 홀로 서서 한밤 더 자며 아니 돌아가고파
(다산 시문집 제 1권, 시)
수종사에서 서북능선을 따라 오르면 정상
운길산 산행의 묘미는 서북 능선을 타면서부터 맛보게 된다. 수종사에서 나와 북서 능선을 타고 쉬엄쉬엄 걸어 2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서 하산 길은 3가지로 올라온 길 따라 되돌아 내려가거나 수종사 지나 왼쪽으로 빠져 송촌리로 내려간다. 또는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타면 463m고지-새재고개-고대농장을 거쳐 덕소로 빠지는 종주코스를 밟게 된다.
운길산 정상의 일출은 압권이다. 하지만 날이 스산하여 일출은커녕 구름에 걸린 정상은 이내 비를 뿌린다. 운길산에서 13km 정도 서쪽으로 달리면 예봉산이 나타난다. 여기서 보는 운길산에서 예봉산의 능선과 골짜기의 전경은 강원도의 깊은 산맥을 보듯 장쾌하다. 운길산 정상 주변은 약간의 암석들이 있으나 종주길은 수도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육산이다.
운길산에서 팔당역까지 가는 종주코스는 운길산-새재고개-적갑산-철문봉-예봉산을 거쳐 율리봉- 율리고개를 거쳐 팔당역까지 6~7시간이 소요되는 산꾼들의 인기코스다.
산행코스
1) 송촌리 → 수종사 → 정상 → 463봉 → 새재고개 → 고대농장 (10km, 3시간 40분)
2) 진중리 → 수종사 → 정상 → 송촌리 (6km, 2시간 20분)
운길산에 오른 바에야 다산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나는 작은 돈으로 배 하나를 사서 배 안에 고기그물 네댓 개와 낚싯대 한두 개를 갖추어놓고, 또 술과 잔과 소반 같은 여러 가지 식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며, 방 한 간을 만들어 온돌을 놓고 싶다. 그리고 두 아들에게 집을 지키게 하고, 늙은 아내와 어린 아이와 심부름하는 아이 하나를 이끌고 물에 떠다니면서 살아가는 배로 수종산과 소수(苕水) 사이를 왕래하면서 오늘은 어떤 곳에서 고기를 잡고, 내일은 어떤 곳에서 낚시질하며, 그 다음날은 또 어떤 곳의 여울에서 고기를 잡는다. 바람을 맞으면서 물 위에서 잠을 자고 마치 물결에 떠다니는 오리들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때때로 짤막한 시가(詩歌)를 지어 스스로 팔자가 사나워 불우하게 된 정회(情懷)를 읊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다산의 ‘초상연파조수지가기(苕上煙波釣之家記)’ 중에서-
[다산 유적지]
수종사 입구에서 운길산역을 거쳐 다산 정약용 생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다산 유적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란히 서 있는 유물관과 문화관을 만난다. 유물관에는 다산의 영정 및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 등 다산의 실학사상이 담긴 저서와 집필기록, 산수화 등을 비롯해 거중기와 녹로 등 그가 만들었던 역사적인 물건들까지 재현해 놓았을 뿐 아니라, 다산초당, 천일각 등 그가 유배살이 하던 곳을 섬세한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두었다. 또한 다산 문화관에서는 강당에서 다산 영상물 및 교육자료를 상영하며, 다산학 무료강좌와 최첨단 자료를 이용하여 다산에 관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유물관과 문학관을 나서면 뒤로 널찍한 광장을 사이에 두고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이 눈에 들어온다. 단아한 목조건물 여유당은 자료에 의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놓은 서른 세칸의 전통 양반집이다. 큰 나무 그늘과 나즈막하고 단아한 담장이 양반의 울타리를 넘어 아랫사람들을 허물없이 대했던 다산의 성품을 보여주듯 편하게 와 닿는다. 여유당 안은 무척이나 깨끗하고 검소하다. 규모도 작고 주변이 화려하지도 않다.
여유당(與猶堂)은 다산의 당호다. 다산의 당호이자 서재이던 여유당은 다산학의 보금자리였다. 여유당기(與猶堂記)에 따르면 여유(與猶)란 말은 노자 도덕경에서 따온 것으로서, ‘겨울의 냇물을 건너듯 사방이 두려운 듯,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에서 지었다는 것이다. 여(與)는 의심이 많은 동물, 유(猶)는 겁이 많은 원숭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역사의 서광이던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렇듯 끝없이 자신을 경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람안내]
위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85-2
시설내용: 다산 정약용선생의 묘, 생가, 문도사(사당), 기념관, 문화관, 문화의 거리
전시물품: 총58종 304점(동상, 영정, 목민심서 등 저서, 거중기, 녹로, 영상자료 및 조형물)
입장료 무료, 오전 9시 ~ 오후 6시(1월~12월)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 (전화 031) 590-2064, 2067)
다산유적지관리사무소 (전화 031) 590-2481, 2837)

경기도 실학박물관 천체관. ⓒ 최영환(산악인)
[실학박물관]
경기도 실학박물관은 2009년 10월에 개관하여 총 3개의 전시실과 특별전시실을 두고 있다.
제1전시실은 실학의 형성과정으로, 서양문물의 전래와 개혁의 전개와 조선사회의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2전시실은 실학의 전개과정으로, 경세치용학, 근대로의 가교, 이용후생학을 소개하고 있다. 제3전시실은 천문과 지리 공간으로서, 아스트로라베와 대동여지도 목판본 등을 볼 수 있으며 별자리를 천정과 벽면에 설치한 천체관은 천체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특별전시로서, 김육과 대동법 전시를 하고 있다.
[관람안내]
연중무휴 개관, 오전 9시~6시, 입장료 무료, 문의) 031-579-6000, www.silhakmuseum.or.kr